아래 누가 까뮈 이방인의 첫 소절의 해석을 문제삼고 있더라고.
그래서 갑자기 생각나서 예전에 첫 소절이 유명한 소설들 모음 이런거 다시 찾아봤거든?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5263553)
근데 보면 다 각기 다른 이유로 여기 선정이 된 것 같단 말이지? 독서 내공이 깊은 독붕이들이 어떤 소절을 왜 꼽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이 포스팅에 댓글로 달아주면 흥미롭게 읽어볼게.
그래서 나는 내가 요 몇 년 새 읽은 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첫 소절을 고르고,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보기로 했어.
내 픽은 카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이야.
이 문장을 꼽은 이유는, 이 한 문장에서 얻어갈 수 있는 정보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지. 총 세 가지의 시제가 한 문장에서 드러나고 있어.
1) You would have searched a long time: '독자들은 화자가 발화하는 시점에서 winding lane이나 tranquil meadow같은 걸 찾고 있을텐데...' 즉 화자가 발화하는 시점의 현재 모습을 말하려고 하는거고,
2) for which England later became celebrated: 화자가 발화하는 시점보다 미래의 잉글랜드는 이런 것들로 유명해진다는 걸 알려줘.
3) There were instead: 그리고 지금 화자가 발화하는 시점보다 과거엔 winding lane/tranquil meadow 대신에 miles of desolate, uncultivated land라는게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
즉 요 한 문장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있고 그걸 통해서 이 소설이 가지려는 시대적, 역사적 아이덴티티까지 나타내고 있는거야.
노벨 문학상 받을만 하지? Call me Ishmael도 그 짧은 소절에서 담고 있는 정보의 양으로 유명해졌다고 생각해. 다른 문장들은 왜 뽑혔을까?
개인적으로는 설국 첫문장이 명문이라 생각해
왜?
뭐 구구절절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 문장을 '간결함' 이라는 이유로 명문으로 뽑았어 그러니까 문학적인 우아미가 느껴진다는 거지. 한 문장으로 이만큼이나 눈 덮인 풍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하면서 현장감을 느끼게 하는 문장은 명문으로 꼽을만 하다고 생각해. 물론 이건 문학 관련 공부도 전혀 안 한 학식따리인 내 개인적인 의견임
좋은 의견이야. 아 왠지 내가 "왜?" 라고만 적어서 좀 시비거는거처럼 보였을까? 방어적인 답변을 하는거같아서.. 그런 의도 전혀 아니었고 그냥 궁금했오
박사과정 밟는 사람들은 좀 경외심 느껴짐 ㅋㅋ
의외로 진짜 별거 없음....
님아 지금 어디에서 박사하고 있음? 거기서도 한국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후기구조주의비평이 짜세임??
독일. 글쎄? 교수마다, 사람마다 다 달라서.. 난 그리고 문학 이론쪽에 있어서 잘 몰라. 후기구조주의처럼 그 어떤 작품을 갖다놔도 통용되는 이론들은 계속 쓰이고있지 않을까?
넌 한국에서 박사하고 있어? 나 한국 영문학계 궁금해
님 옛날 글 좀 읽어봤는데 난 문학 전공인데 역으로 철학을 공부해야 하나 싶음. 인식론이나 관념철학 관련된 좋은 입문서 있으면 소개시켜줄 수 있을가??
나 아직 박사도 못 밟고 석사 하니 마니 하는 병신임. 내가 영문학계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엔 짬찌긴 한데 여전히 내가 보기엔 저런 포스트 비평담론들이 대세인거 같음
"인식론"에 대한 입문서라는건... 추천하기 어려운데.. 그냥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쭈우욱 이해해야되지 않을까??..;; 최소 칸트까지.. 관념철학이 정확히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한글로 공부를 안해봐서 ㅠㅠ 영문학 석사 할거면 잘 고민해보길 바라. 생각보다 쉬운 길은 아니고, 심지어 한국에서 한다고 하면 나는 조금 비추천하고싶긴 해.. 아무래도 영어 실력이 해외에서 하는 친구들만큼 올라오지 않을 것 같거든. 나는 그나마 영어라도 잘해서 지금 번역업체 하나 차려서 얼추 먹고는 산다만
조언 감사. 나도 그래서 고민 중임. 요즘은 비평이론 보는데 머리만 조낸 아프고 현타와서 걍 빨리 런칠까 생각도 듦 요즘은. 영어 실력은 좋다곤 말 못하겠는데 언어보다 뭘 연구할지 그게 가치가 있는지 판단을 못 내리겠음.
나는 개인적으로 영어가 완성되지 않은 사람이 영문학에 온다는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영어로 쓰여진 작품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그 언어에 embedded 되어있는 문화적인 것들까지 다 이해해야 하기에 영어를 기본적으로 원어민처럼 하긴 해야해. 비평 이론은 당연히 머리 많이 아파,,,,ㅋㅋ 나도 지금 봐도 이해 안되는게 많다. 그래서 여기 갤럼들이 비평 이론 운운하면 도대체 얘네는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나보다 저걸 잘 아나 싶기도 하고 ㅋㅋ. 연구 주제에 대한 선정은 교수님과 함께 하겠지만, 우선은 니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분야여야해. 좋아하는 작가를 더 깊게 판다던가, 한 문학적 시조를 깊게 판다던가, 아니면 이론적인 공부를 더 발전시킨다던가 하다못해 지적 허영심이라도 채우겠다던가.
어떤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박사는 고사하고 석사 학위도 너무 너무 힘든 길이 될거야. 독일이 특히 졸업 못하기로 유명하긴 하지만... 나랑 같이 입학한 친구들 중에 졸업 한 사람은 한 열 명도 안되거든? 그 친구들 대부분이 공부 자체를 너무 일 처럼 보고 했었던 것 같애. 기계적으로 분석하라면 분석하고 시키는 거 하고.. 그런게 아니라 니가 원하는 뚜렷한 연구 방향이 있어야하고, 그게 없으면 빠르게 다른 길이 맞아
전적으로 동감한다. 영어 회화 뿐 아니라 님이 말한 문화같은 것도 원어민처럼 구사해야 할텐데.. 개인적으로 관심 가는 분야가 있긴 한데 여전히 말마따나 불안불안하다. 여튼 자세히 갈쳐줘서 조낸 고마움. 우리 교수는 졸라 미국 암데나 갖다오면 교수된다 이런 식으로만 이야기해서 필드에 있는 사람 조언이 절실했었음.
우선 혹시라도 영문학과에 계속 남아있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비평 이론 먼저 읽지 말고 그냥 그런 이론을 사용해서 작품을 분석한 논문들 위주로 한번 살펴봐. 그게 원전 읽는거에 비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많이 될거야. 그런 후에 원전을 읽으면서 아~ 이건 이렇게 해석해서 아까 그 논문에서 그렇게 얘기한거겠구나? 라는 식으로 퍼즐을 맞춰가는게 특히나 학사레벨에서는 더 옳은 길이 아닐까 싶어. 물론 나는 그렇게 똑똑한 스타일은 아니라서 이런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는 이야긴데.. 사람마다 다르지 뭐. 워낙 공부하면서 괴물들을 많이 봐서..
그려.. 의외로 한국에서 영문학과 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서 반갑네. 여튼 즐거운 독서하고,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 없는 선택하길 바랄게 :D
그냥 임팩트 있으니까 그런거지 뭐 별 이유는 없을듯.. 전문적으로 선정한것도 아니고
뭐 공식적인 건 아니지만, 나도 교수님들이나 주변 동료들이랑 같이 이런 얘기 가끔 하긴 하는데. 전공자들도 각기 다른 이유로 각기 다른 문장을 뽑아오더라고. 재밌어 얘기해보면
The madness of an autumn prairie cold front coming through. You could feel it: something terrible was going to happen. The sun low in the sky, a minor light, a cooling star.
Gust after gust of disorder. Trees restless, temperatures falling, the whole northern religion of things coming to an end. No children in the yards here.
뒤에 더 있긴 한데 이거 처음에 이미지들이 너무 좋더라. 앞에 you could feel it으로 시작되는 점도 좋았고
첨보네.. 어디서 나온거야?
독일에서 어느 정도 평가받는 동양인 작가 있음? 지금 살아있는 애들 기준으로
나두 잘 모르겠다 ㅠㅠ 이런거는
다와다 요코 아닐까. 한국계는 안나 킴.
이미륵! 이미륵 모름?? 존나 충격이네..
인간실격의 첫문장은 엄밀히 말하면 작품 속 작품의 첫문장인데 유명해졌지. 이것도 들어있는 정보 때문일까?
난 카프카 변신 초1때 학교 도서관에서 그림책으로 처음 읽었는데 첫문장의 기묘함과 충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부조리를 잘 녹여내기도 했고,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도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뒤숭숭한 꿈'의 환상성이랑 '흉측한 갑충'의 임팩트가 커서..
나도 변신이 첫문장부터 나를 빨아들임과 동시에 이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 확 각인시켜줘서 중요한거 같음
금각사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비평적인 접근을 하자면 어떤 시점의 소설이 전개될건지 화자가 어떤 diegetic한 성격을 지니는지까지 볼수있지!
그거 독자들이 투표료 선정한거임.
이방인이랑 설국이 이 분야 원탑인거같음... 설국은 처음에는 호들갑 같았는데 읽다보니까 더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