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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꽤 많은 SF를 읽었다.
얼마전엔 2000p에 달하는 삼체 시리즈를 읽었고,
좀 쉬어가자는 의미로 적당한 길이의 소설을 찾던 중
봉준호가 영화화하기로 결정했다는 '미키7'을 발견했다.

돈주고 읽긴 아까워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안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총점 : 5/10
한줄평: 그저그런 SF

19


소재는 나름 흥미롭다.



미래 인류는 머나먼 우주로 진출했고, 주인공 일행은 눈과 얼음으로 덮힌 행성에서 테라포밍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정착지를 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때론 목숨을 바쳐가며 해야하는 일들도 있다.
방사능 구역에서 수리를 하거나, 외계 대기성분으로 인체 실험을 하거나 등등...

그리고 그런 역할을 모두 짬처리 하기 위해 '익스펜더블' 이라는 직업이 생긴다.
익스펜더블은 죽게 되면 기존의 기억을 모두 간직한 채 기지에서 DNA를 바탕으로 한 복제품이 새로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번의 일곱번째 미키(주인공 이름)인 '미키7'도 죽을 위기에 처하는데, 이 행성에 원래 살고있던 외계동물이 도와줘서 어떻게든 가까스로 살아서 기지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기지로 돌아와보니 미키8이 침대에 누워있다...

미소

여기까지가 도입부이자 소재다.
뭐 적당히 '누가 진짜 미키인가'를 들먹이며 두 미키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 꽤 그럴싸한 SF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내용이 조금 뭔가 이상하다.
분명 소재만 봤을 때는 두 명의 미키간의 갈등과 위기상황들로 이야기를 풀어갈 것 같은데,

정작 도입부 이후부터 결말부분 직후까지는
'미키의 익스펜더블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심지어 미키8은 '복제되고 나면 좀 피곤해' 라는 핑계로 몇 번 나오지도 않는다.

그렇게 300p 가까이되는 "익스펜더블도 사람이야 사람!!" 이라는 하소연을 읽다보면 드디어 마지막 100p 남짓을 남겨놓게 된다.


두통

그런데 ㅅㅂ 결말부분은 또 다른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두명의 미키는 여친과 쓰리섬을 하다가 딱 걸리게 되는데(드립이 아니라 진짜임)

사령관은 두 미키를 불러모으곤 임무를 맡긴다.
그리고 미키가 중복되어버린거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ㅅㅂㅋㅋㅋㅋ
이러면 굳이 소재를 이렇게 잡을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


아무튼, 주인공 일행이 내려온 이 행성에는
원래 살고 있던 토착 생명체들이 있었는데,
작중 읽다보면 이 친구들 때문에 경비대원 몇명이 죽고 하면서 좀 고생을 한다.

임무는 이 원주민 생명체들을 반물질 폭탄으로 쓸어버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키8은 그냥 죽어버리는데,
주인공인 미키7은 '우린 이 친구들과 대화가 좀 부족했을 뿐이야' 라고 하더니 임무를 완수하지 않고 외계인 친구랑 노가리좀 까다가 그냥 돌아온다.

그리고 폭탄을 어디 깊숙한 곳에 묻어놓고 기지로 와서는
'내가 저 외계인 친구들한테 폭탄을 줬어. 그리고 나는 여기서 유일하게 저 외계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지.'
라는 반쯤 협박을 하고는 익스펜더블을 때려치며 소설은 끝이 난다...

말잇못

그렇다.
이 책은 '소재'와 '주 내용'과 '결말'이 모두 따로노는 기적의 작품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걸까 싶은데..
책을 읽고나서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운 작품은 또 처음이다.

소재를 잡았으면 보통은 그걸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나?
결말을 이렇게 낼거면 외계인들과의 갈등이 나오는 장면의 비중을 훨씬 늘렸어야한다.
그리고 미키8은 이 책에서 전혀 쓸모가 없다.
그리 길지도 않은 책이 왜 내용의 일관성이 없냐고..

34

뭐...사실 그렇게까지 노잼이거나 하는 책은 아니다.
소재와는 주제가 다르긴 해도
'익스펜더블' 이라는 설정 자체가 꽤 흥미로웠고,
개인적으로 설정딸을 좋아하는 만큼 세계관 설정들을 구경하는 맛도 꽤 있었다.

특히 중간중간 나오는 드립과 주인공의 귀여운 독백들은 마치 앤디 위어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앤디위어급으로 재밌는건 아니다. 앤디위어에 비하면 이 작품의 드립실력은 새발의 피다.)



야호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그냥저냥 읽을만한 SF'이다.
못 읽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막 흥미진진하게 읽었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 책을 굳이 읽으려는 사람에게는,
이 책보다 모든 면에서 한 수 위인
앤디 위어의 '아르테미스'를 추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