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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함께 신간] 《동유럽 근현대사》 _오승은 : 네이버 블로그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사 좋아하는 사람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함

백인은 강대국에 지배자고 유색인종은 약소국에 피지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읽어볼 가치 있음

한국 역사가 주변국에 털리기만 한 찌질한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읽어볼 가치 있음

피해의식이 가득 찬 민족주의 역사관을 고수하면 어떻게 되는지 교훈도 얻을 수 있음



일단 책 내용이 엄청 짜릿하고 재밌거나 그런건 아님. 그냥 담백한 재미 정도는 있음.

그럼에도 추천하는 이유는 일단 필체가 깔끔, 현학적으로 글 꼬아서 쓰는 지랄같은거 안함

지도를 집어넣어놔서 생판 모르는 역사도 이해하기 쉬움

자기 맘대로 한쪽으로 치우친 내용 없음. 특정 국가 치켜올리거나 깎아내리지 않음. 

정보량은 많은데 읽고 나면 크게 빠트리는 내용 없이 머리에 잘 남음. 



작가는 쓸데없는 평가질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읽고 느낀 점을 좀 써보자면

첫번째로 동유럽 민족의 역사에 비하면 한국이 당한 건 좆도 안되는 엄살이구나 싶음.

동유럽은 문명의 발원지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서 제대로 된 국가 형태를 기원후 천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야 겨우 완성할 수 있었음

한반도에서는 고려가 전성기를 맞은 시점임. 그제서야 겨우 국가다운 국가가 들어섬.

그 이전에도 슬라브족이라 불리는 명칭 정도는 있었지만 고대 내내 오랑캐, 노예 취급 당함. 영어 slave 어원이 '슬라브족' 에서 나옴


얘네는 하필 왼쪽에 서유럽, 아래쪽에 이슬람, 오른쪽에 러시아 몽골, 위쪽에 바이킹 있는 최악의 위치에 자리를 잡아서 기껏 세운 국가들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함

스웨덴에 침략당하고 몽골에 털리고 러시아랑 싸우고 하다가 

오스만 제국이랑 합스부르크 왕가가 동유럽을 둘로 정확히 쪼개서 몇백년간 나눠먹음

그 와중에 저 두 강대국이 민족 이주 정책을 펴서 동유럽 내의 온갖 민족들을 다 뒤섞어버림

국가 없는 2등 시민 생활을 몇백년간 하다 보니 대항해시대나 산업 혁명의 물결도 제대로 못따라감


근대로 와서도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오스만에 사방으로 뜯어먹히는 와중에 19세기가 되어서야 그 안에서 민족주의가 자라남.

민족주의로 정치를 하려면 국뽕을 강조해야 되는데, 아픈 역사에서 국뽕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기를 침략한 세력이나 이웃 국가에 대한 반감으로 이루어진, 굉장히 배타적인 역사관이 형성됨.

이렇게 되면 근대 이전에 민족이주정책으로 섞여버린 민족들끼리 서로 적대하며 싸우는 현상이 발생함


그런 와중에 동유럽의 극우 세르비아 청년이 오헝제국 황태자를 쏴죽이면서 세계대전이 터지고, 승전한 서유럽 강대국에 의해 운명이 결정나버린다던지

전간기 대공황 경제불황을 직격으로 맞고 극우 민족주의자들끼리 동유럽 내에서 전쟁질이나 하다가

2차대전에서 독소전쟁의 사이에 새우처럼 끼어서 수백만이 뒤지는 비극을 맛봄. 


2차대전이 끝나자마자 별로 원하지도 않았던 소련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 흡수돼서 쫄쫄 굶으면서도 피해의식 가득한 민족주의를 손에서 놓지 못하다 보니

소련 붕괴와 동시에 또 뒤섞인 민족끼리 전쟁이 터지는 참극이 벌어짐

거기에다 90년대 유럽연합 가입은 서유럽과의 불평등한 경제관계를 만들고, 교역이라고 읽고 착취라고 쓰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완성됨


지금까지도 러시아가 우크라를 침공한다던지 하는 지정학적 위협을 그대로 맛보고 있으니

국가 내에서 민족갈등, 동유럽 내에서 국가갈등, 동유럽 외에서 경제착취, 주변 강대국에게 침공 위협이라는 4중으로 피냄새나는 화약고가 되어버림

대충 축약한건데 이거만 읽어봐도 한국은 명함도 못 내민다는걸 알 수 있음.




느낀 점 두번째는 피해자적 민족주의의 위험성임.

저런 환경에서 자란 민족주의이니 당연히 역사책이 존나 슬퍼질수밖에 없음. 

이 책과 한국 역사 교과서를 비교하면 한국 역사책은 아름다운 희극에 가까움

피로 얼룩진 역사에서 국뽕으로 써먹을 거리를 열심히 뒤져서 교과서에 적고, 외세에 당한 피해만 무조건 강조하다 보니

국민들 마음속에서 외세에 대한 적개심이 자라난다던지, 아니면 환멸을 느끼고 국까로 변신한다던지 극단적인 행보를 보이게 됨


저런 식으로 민족주의를 다루면 주변 국가들이 전부 개새끼로 보이기 시작하고, 극우 정치인들이 활동하기 딱 좋은 환경이 만들어짐

진짜 가해자인 서유럽과 러시아는 건들기가 힘드니, 정치인들은 그 화살을 같은 피해자인 동유럽 국가, 국가 내 소수민족에게 돌림

또 분쟁이 터지는건 당연한 일이고 엉뚱한데 화살을 돌리니 경제는 회복이 될리가 만무함

이 지역은 여러모로 민족주의가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음


얘네에 비하면 엄살 수준이지만 한국도 비슷한 토양에서 민족주의가 자라남. 

아무리 빨리 잡아도 한국식 민족주의의 형성은 조선 후기 열강 침탈 시점이고

일제 강점기 - 미소군정 - 전쟁 - 개발독재를 거쳤으니 피해의식이 안생길 수가 없음


다른 나라도 국뽕은 다 있다지만 우리나라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국뽕이 너무 많음. 

자존심에 상처가 될 법한 역사적 사실은 무시해버리고 좋은 점만 갖다 쓴다던지

쳐들어온 애들은 다 개새끼들이고 우리나라는 선량하고 무고한 피해자라던지

피해의식 가득한 역사를 배우니까 국뽕 일뽕같은 극단적인 인간들이 쉽게 양성되는거임

이런 역사관은 지난 세기 내내 자존심이 짓밟혔던 구세대들을 위로하는데나 필요한 역사관이 아닐까 싶음


동유럽의 국가들이 자기 발에 민족주의라는 족쇄를 채워놓고 서로 내 족쇄가 더 크니 니 족쇄가 더 크니 싸워대는걸 구경하면서

우리 마음속의 족쇄를 풀어내는 작업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결론 : 글 깔끔함, 내용 좋음, 교훈 있음 - 별 다섯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