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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정세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현실주의에 있어 모겐소나 월츠의 책보다 먼저 현실주의를 부각시켰다는 평을 듣는 <20년의 위기>를 읽어보고 싶었다. 다만 아무래도 상당히 고전적인 책이다보니, 그 사이의 두 사람의 저서를 먼저 읽어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두께도 그렇고, 그냥 순서대로 읽어보자는 생각에 빌릴 기회가 되자마자 빌려와서 읽어보았다.


생각보다는 흥미로운 내용이었는데, 일단 현실주의가 본격적으로 이론적으로 진지한 위치에 놓이기 이전의 저술이라 그런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의 대립과 어째서 현실주의적으로 바라봤을 때 이상주의가 무의미하면서 동시에 현실주의에 매몰되는 것 역시 무의미한지를 나름대로 균형 있게-물론, 현실주의 쪽에 치우쳐진 건 어쩔 수 없지만-서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전 읽었던 정치이론서들은 굳이 현실주의적인 관점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지, 반대로 현실주의적인 저서들도 구태여 여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재차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지, 서로 반대편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또한 약간 별개의 소득에 가까운 이야기인데, 전간기 시절 유럽인의 세계정세 및 정치에 대한 시각을 한 번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구태여 유럽 이외의 지역들을 지역적인 의미를 제외하면 논할 가치도 없다는 듯 넘기는 것도 그렇고, 국제도덕에 대해 (오직 유럽 내에서만) 암묵적으로 지켜지던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니 이를 근간으로 막연하게나마 기능할 수 있는 도덕이다, 하는 것 역시 그렇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사실 카의 전망 중 긍정적인 요소들은 대체로 현대를 비추어보았을 때 큰 도움은 안 되는 것들이리라. (책 말미에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는 <민족주의와 그 이후>에서 앞으로 지금(전간기)처럼 유럽과 세계에 이리 많은 국가들이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그런 한계점을 뺴고 본다면 확실히 현실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실제와 강단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있는지 볼 수 있어 꽤나 흥미롭다. 외교는 배우는 것보단 행동으로 터득하는 것이라는 예전 외교관들의 기본적인 가치관도 그렇고, 외교 관계가 정말로 시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을 계기로(1차 세계대전) 외교가 비교적 민주화되고 덕분에 외교 정책에 대해 시민들을 설득하거나 또는 시민들이 주장할 근거가 되어줄 학문이 필요했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리라. 아무래도 그런 이론에 칸트식 국제연맹 같은 순수히 이상적인 기치 주장만을 넣어둘 수는 없을 테니까.


특히 <20년>은 이상주의의 위선을 적극적으로 폭로하려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런 정치적인 의도가 드러난다. 더 이상의 분쟁을 원치 않는 강대국들이나, 자유시장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 모두의 이익이 되리라는 주장들이 기실 현상유지가 이득이 되거나 마찬가지로 자유시장에서 가장 경쟁력 있기에 이를 주장할 뿐이라는 식으로. 이를 발언자가 실제로 알고 있느냐는 사실 중요치 않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이런 이익과 함께 가는 주장에서 책임론을 떼어놓을 수는 없으니까. 골치 아픈 일이지만, 발언자와 발언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는 고질적인 문제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현실주의가 정작 이상주의의 대체재가 되어줄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이기도 하다. 카는 현실주의는 이상주의가 갖고 있는 도덕과 명분, 사람들을 이끄는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어 결국 그 자체만으로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은 채 사람들을 억압할 뿐이라는 분석을 하며, 공산주의가 흥미롭게도 그 시대에 유일하게 이런 이상주의적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한 정치사상이라는 언급을 한다. 그 유일한 유토피아가 어찌나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을까, 하는 말과 함께. 그리 생각해보면, 현대에는 그런 게 어디 남아 있기는 한 걸까?


좀 더 이상적인 책들을 더 읽어봐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란, 국제 체계에서 입법자가 존재할 수 없다는 뼈 아픈 지적에 퇴색되었음에도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사실 현실도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남아 있는 걸 보면, 현실주의의 세례는 꽤나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