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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2주간, 참 뭐에 홀린 듯이 책을 읽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최근 나를 사로잡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었다. 지난번에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큰 재미를 느꼈던 나는 자연스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작품에 손대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기사단장 죽이기>였다. 검은 양장 표지에 그려진 하얀 검. 제목도 1.현현하는 이데아에 2.전이하는 메타포. <노르웨이의 숲>과 마찬가지로 눈길을 끄는 디자인이나 유혹하는 광고문구는 일절 배제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도서관 사가에 꽂혀있는 그 모습에 서슴없이 손을 뻗을 수 있었다. 주인공이 기사단장의 이데아를 처음 만났을 때, 자연스레 현실이라고 인정할 때도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 필자는 <노르웨이의 숲>과 상반되는 재미를 느꼈다. <노르웨이의 숲>은 철저히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심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노르웨이의 숲>의 재미는 등장인물의 재미였고, 그 시대상 특유의 흑백 톤 같은 쓸쓸함과 20대 초반의 고뇌와 방황이 낳는 공감의 재미였다. 그러나 <기사단장 죽이기>는 철저하게 줄거리와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재미를 낳는다. 거의 반쯤은 추리소설이라고 봐도 된다. 베일 싸인 멘시키 씨와 어두운 과거를 지닌 채 병상에 누워있는 아마다 도모히코. 그 비밀들에 어쩌다 보니 다가가게 된 주인공. 마지막으로 존재 자체가 불가사의한 기사단장의 존재까지. 그들이 한데 모여 엮어나가는 스토리는 정말이지 흥미진진했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스토리의 큰 나무는 크게 다섯 개의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가지는 주인공과 아내 유즈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다. 잘 이어나가던 결혼생활이 한순간에 이혼으로 기울자 느끼는 주인공의 상실감과 유즈와 뱃속의 아이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주축이다. 두 번째 가지는 멘시키의 이야기다. 멘시키는 아마다 도모히코와 더불어 이 소설에서 제일 의문스러운 인물 중 하나다. 그런 그가 보이는 주인공의 그림에 대한 흥미와, 딸일지도 모르는 마리에라는 여자아이에 대한 집착이 주축이다. 세 번째 가지는 기사단장의 이데아다. 그것은 유령도, 주인공의 환상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라졌다가 어느 순간 나타나며, 주인공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네 번째 가지는 멘시키의 딸일지도 모르는 아이, 아키가와 마리에다. 그녀는 멘시키의 가지가 이끄는 이야기의 종착역이기도 하지만, 주인공과도 독립적인 이야기를 구축한다. 마지막 가지는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인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을 그린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다. 그의 과거 역시 멘시키처럼 베일에 싸여있다. 그는 소설의 시작부터 병상에 누워있지만, 시작점을 제공한 인물로서 그 역시 깊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이 책은 앞서 말했듯이 1권 현현하는 이데아와 2권 전이하는 메타포로 나뉘어있는데, 1권을 다 읽고 나면 이 가지들이 전부 어딘가 따로따로 독립된 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 가지들은 결국 하나의 나무이자 전부 이어져 있다는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의미 없어 보였던 소품과 자잘한 해프닝들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옴니버스 같던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거대한 에피소드를 구축한다. 읽다 보면 정말로 이게 이렇게 이어져?’ 같은 놀라움을 품게 된다.

 동시에 이 소설은 많은 맥거핀을 남긴다. 그것들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끼는 여운을 더 길게 해준다. 물론 자신의 자식에 대한 상반된 감정을 품는 멘시키와 주인공의 자세의 차이처럼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찝찝함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도 마지막에 유즈가 낳은 자식을 사랑했듯이, 이 세상에는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불확실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책은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