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내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임.




'소설이 현실에 도대체 무슨 영향을 주지?'


대다수의 독붕이들은 현실과 상상은 구분을 해야한다며 소설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이야기할 것.


그리고 나보코프 또한 소설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고 믿은 작가 중 한 명임.


정확히 이러한 지점때문에 나비가 소설은 윤리나 교훈이 들어가 있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한 것.


허구의 세계라... 나보코프는 이렇게 생각함. 그래 이왕 허구의 세계인데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내서 사람을 즐겁게 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현실의 세계를 왜곡, 조작하거나 아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면 얼마나 웃길까?




'발사. 이번에는 단단한 곳에 명중했다. 돌리 스킬러의 집에 있던 것을 때리자마자 의자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르고_ 힘차게 움직이는지 그 순간 누가 들어왔다면 동시에 두가지 기적을 보고 기절초풍했으리라. 흔들의자는 혼자서 미칠 듯이 흔들거리는데, 방금까지 거기 앉아 있던 자줏빛 표적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의자 위에 생명체 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퀼티는 두 손을 번쩍 들어 팔랑팔랑 흔들면서 바지런히 궁둥짝을 놀려 쏜살같이 음악실로 뛰어들었고, 다음 순간 우리는 문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밀고 당기며 헐떡거렸다. 내가 그 방 열쇠를 빠뜨린 탓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이겼지만 도무지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클레어가 또 엉뚱한 짓을 했다. 별안간 피아노에 앞에 앉더니 엄청나게 활기차면서 어마어마하게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화음을 연달아 두드렸다. 턱살이 부들부들 떨리고, 쫙 펼친 두 손이 힘차게 내려꽂히고, 콧구멍은 우리가 싸울 때도 들리지 않았던 콧바람 소리를 음향효과처럼 토해냈다. 그렇게 참을 수 없는 소음을 만들어내면서 한쪽 발로는 피아노 가까이 놓인 선원들의 트렁크 같은 상자를 열어젖히려고 애썼지만 실패만 거듭했다. 나는 다시 총을 쏘았다. 이번에는 총알이 그의 옆구리 어딘가에 박혔다.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몸을 길게 뻗어 점점 더 높이 솟구쳤는데, 마치 늙고 백발이 성성한 미치광이 니진스키처럼, 마치 '올드 페이스풀'처럼, 마치 내가 예전에 꾸었던 악몽처럼 허공을 가르며 - 여전히 우렁차고 불길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 놀랄 만큼 높이 날아올랐다. 어쨌든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생략)


퀼티가 갑자기 점잖아지더니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널찍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자리를 옮겼지만 그를 따라 계단을 오르는 대신에 속사로 서너 발을 연달아 쏘았다. 총구가 불을 뿜을 때마다 그의 상처도 하나씩 늘어났다. 내가 그를 명중시킬 때마다, 그렇게 끔찍한 짓을 할 때마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처럼 얼굴을 씰룩거려 마치 고통을 과장하는 듯했다. 걸음이 느려지더니 게슴츠레한 눈동자가 허공을 향해 떠올랐다. 총알이 박힐 때마다 그는 여성적인 목소리로 "아!"하고 외치면서 마치 간지럼을 타듯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느리고 서투르고 눈먼 총알을 얻어맞을 때마다 엉터리 영국식 발음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는데 - 줄곧 움찔거리고 떨면서도 억지웃음을 지었고, 목소리도 기이하게 초연할 뿐만 아니라 다정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아, 아프단 말이요, 선생. 그만 좀 하시오! 아, 지독하게 아파요, 형씨. 제발 그만해요. 아아-- 너무 아프다, 너무 아프다, 정말...... 맙소사! 하! 이렇게 끔찍한 짓을 하다니, 당신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층계참에 도착할 때쯤에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지만 그는 비대한 몸뚱이에 박힌 수많은 납덩이도 아랑곳 않고 거듭거듭 걸음을 옮겼다. 총알이 이 불쌍한 사내를 죽여버리기는 커녕 마치 강력한 특효약이 담긴 캡슐처럼 불끈불끈 원기를 복돋워준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실망스럽고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생략)


나는 퀼티의 머리통을 겨냥했고, 다음 순간 그는 귀가 있던 곳에서 진자주색 핏줄기를 왈칵 쏟아내면서 안방으로 도망쳤다.'





아니ㅋㅋㅋㅋㅋ 이게 뭐야? 수많은 총알이 한 사람에게 명중했지만 심지어 머리에도 관통 당했지만 오랫동안 죽지 않는 이 기괴하면서 웃긴 상황은 무엇?


사실 이러한 요소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어렸을때부터 많이 노출되었을 수도 있는 유머


고전 명작 슬랩스틱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를 연상시킴.



이러한 과장된 묘사때문에 소설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은 전부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음을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어필하고 현실과 명확한 대조를 이루어 오히려 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감상자에게 자유로운 즐거움을 주는 것('대가리에 총알을 맞으면 사람은 즉사한다'라는 절대불변의 논리가 깨지고, 그래도 얼마동안은 살아남는다는 나보코프만의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요소 등등)임.


그러므로 나비는 일부러 이러한 지나치게 과장된 묘사를 이용한 것이라고 봄.


현실과 환상은 다르다고, 소설은 세상의 규칙이 아닌 작가의 새로운 패턴과 논리로 전개해나가는 세계라고, 그래서 그냥 희열을 느끼라는...




여담으로 마치 동영상으로 찍은 듯한 생생한 공간 묘사는 나보코프 특인데, 그는 작 중 배경, 사물, 공간 설명하기를 매우 좋아했음.


'나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여러분 모두를 납득시키고 싶다. 불한당인 당신들을 강제로라도 믿게 만들고 싶다.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말 그자체의 본성 탓에 닮은 두 얼굴을 말로는 완전히 묘사할 수 없다는 점이 두렵다. 그러니까 말이 아니라 물감으로 그들을 나란히 그려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말하는 바가 관객에게 분명해지지 않을까? 독자를 관객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작가가 가장 바라는 바다. 언제 이를 성취할 수 있을까?'


그의 어느 소설에서는 이러한 시각적 묘사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언급한 바 있고.


또한 내가 봤을 때 나비가 레프 톨스토이,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안드레이 벨르이, 마르셀 프루스트같은 인물들을 극찬한 것 역시 작 중의 탁월한 배경묘사나 극도로 세밀한 시각적 표현법 때문이라고 봄. 이들이 시간을 다루는 방법 역시 의미심장하지만...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마침내 독자가 그의 작품 결말부에 다다르면 나비는 문학이 주는 즐거움의 한계와 절망을 가차없이 보여줌.


'이렇게 해서 우리는 결말에 다가가고 있다. 음미하듯 책을 읽다가 어느 정도의 분량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가볍게 만져 보곤 했던(그럴 때면 항상 조용하고 믿음직한 두께가 손가락을 기쁘게 했다), 펼쳐져 있는 소설의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오른쪽 부분이 갑자기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완전히 얇아져 있었다. 몇 분 동안 잠깐 읽어보았을 뿐인데 벌써 독서의 내리막길이라니...... 끔찍하다!'


결과적으로 소설을 완독하고 끝내면 시간이 지나 차츰 그 세계가 잊혀지고 사라지기 때문에 결국엔 무의미에 봉착한다는 것.


자신이 건설해낸 그 멋지고 사랑스러운 언어적인 세계의 붕괴가 그 두려움이 엔딩에 무자비하게 드러남. 이는 거의 모든 나비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공통점 중에 하나임.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바로 이 작품 롤리타의 결말에도 드러나는데




'독자여! 내가 들은 그 소리는 바로 아이들이 노는 소리, 그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가냘프면서도 장엄한 소리, 아득히 멀지만 신기하리만큼 가깝게 들리는 소리, 진솔하면서도 신비롭고 거룩한 소리 - 여러 안개를 뚫고 나온 듯 또렷하게 들려왔다. 꺄르르 터뜨리는 명랑한 웃음소리, 방망이로 공을 때리는 소리, 장난감 마차가 덜컹덜컹 굴러가는 소리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리가 너무 멀었으므로 실선처럼 좁다란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의 움직임을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렇게 높다란 산비탈에 서서 이 음악적인 진동에 귀를 기울이며 웅성거리는 듯한 배경음 속에서 산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외침 소리를 듣다가 문득 깨달았다. 무엇보다 절망적이고 가슴 아픈 것은 내 곁에 롤리타가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화음 속에 그녀의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렇게만 보면 참으로 슬픈 엔딩이지만 여기서 롤리타는 끝나지 않음.


나보코프는 이 아름다운 세계의 붕괴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고안하는데 바로 '독자 잡아두기'.


???: 독자야, 다시 읽으라고, 다시 읽었어? 그럼 또 읽어, 또또 읽어, 계속 읽어, 영원히 읽으라고.


프닌의 엔딩, 창불의 엔딩, 재능의 엔딩, 사형장의 엔딩, 나이트(어둠)의 엔딩 등등 그의 작품은 대게 독자들에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끔 인도함.


지금은 롤리타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롤리타를 보자면


따라서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쯤 우리 두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내 손의 맥박이 아직 뛰는 동안은 너도 나처럼 축복받은 생명체일 테니까. 나는 지금도 여기서 알래스카에 있는 너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 네 남편 딕에게 충실해라. 다른 남자가 네 몸을 만지지 못하게 해라.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마라. 네 아기를 사랑해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유령이 되어 검은 연기처럼, 혹은 미친 거인처럼 그 녀석을 찾아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말 테니까. 그리고 C.Q.를 동정하지 마라. 나는 그놈과 H.H.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H.H.가 그놈보다 두어 달이라도 오래 살기를 원했다. 그래야만 후세 사람들의 마음속에 네가 길이길이 살아남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들소와 천사를,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물감의 비밀을, 예언적인 소네트를, 그리고 예술이라는 피난처를 떠올린다. 너와 내가 함께 불멸을 누리는 길은 이것뿐이구나, 나의 롤리타.


마지막 부분은 거의 나비의 독백처럼 들리는데(험버트를 3인칭으로 지칭한 사실이나 선택이라는 단어선택 등등을 고려해볼 때) 동굴에서 구석기 시대를 견뎌낸 오록스(들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물감의 비밀, 예언적인 소네트 이 모든 것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보는 자만 있다면 불멸로서 남겨질 예술 작품임.


롤리타 역시 뛰어난 예술 작품들이 얻는 불멸성을 얻고자 하는 작품임을 알 수 있음, 즉 험버트 험버트 나아가 나보코프라는 한 인생은 사라지지만 그가 남긴 예술 작품은 여전히 불멸 속에서 거하는 것 그 자체가 이 책의 주제(사실 셰익스피어가 간단히 해낸)라는 것.


그가 정확히 이러한 이유때문에 재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라고 함(중요함을 넘어 재독만이 읽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니...), 그리고 이 작품의 결말을 읽으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바로 이런 장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봄.


한 사람에게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관찰하게 만드는 결말. 내 생각에 그것이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가 즐겨쓰는 결말이라고 봄.


두서 없는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