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라의 형제들의
이반 표도르비치 카라마조프의 사상에 근거함
요약 하자면,
국가가 등장한 상황 속에서)
기독교와 국가는 혼합 불가한 것으로, 상충하는 두 의견 중에서 기독교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를 하나의 교회로 동화해야한다.
즉 교회의 목적과 상반되는 다른 목적을 지닌 모든 것을 물리쳐 없애야한다.
사랑이라는 사상이 영원히 불멸하는 가치를 지니기 위해선 다른 국가적 신조(민주주의사상, 자유주의사상, 사회주의사상 등)들을 모두 물리치고 사랑이 단 하나의 국가적 사상이 되어야한다.
이게 무슨말이냐면, 교회로서의 전체주의적 사상을 의미함.
만약 세상의 모든 사람이 어떠한 존재의 믿음을 굳건히 한다면, 그것이 존재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이 진리가 된다.
세계 속 모든 사람이 어떠한 하나의 사상을 믿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형이상학적 가치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본질적 진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개인의 그러한 믿음을 영속화 할 수 있다면, 그 믿음은 불멸한다. 더이상 기독교적 진리는 개인적 가치가 아니라 전체적 수단이 되고, 전체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살아 숨쉬게 된다.
또한 전체로서 존재하게 된 교회는 영원히 불멸하는 존재로서 자리한다.
비로소 기독교적 사상이 실현 되는 것.
다만 이런 전체주의적 교회는 실현 불가능하다.
왜?
그러한 시도가 과학이나 시대 정신이니 문명이니 하는 것에 굴복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임.
사랑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넘어설 수 없음.
기독교는 국가적 사상과 맞서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국가를 넘어설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교회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진리가 되기를 추구하기 보단, 국가 속에서 권력의 감시 하에 조그만 한구석으로써 입지를 다지는 것에 그치는 것임.
만일 사랑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넘어서기 위해선
단 하나의 방법만이 존재한다.
인간의 생존 본능을 압제로써 끊어내야함.
생존 본능에서 오는 자유의지를 끊어내기 위해선
생존 본능을 파괴해야함.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는 생존 본능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 본능을 부정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모든 인간에 대한 그들의 지배권을 유지 보수 한다.
그들은 끊임 없이 인간이 죄인임을 설파 한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피안과 무의 다른 이름인 벌하는 신이라는 허구에 의지하여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지배권을 확대 강화해 가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으니까.
전체주의적 사상은 개인을 파괴하는 행위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고문, 세뇌 등의 거친 방법으로 개인을 권력으로 찍어 눌러서
생존본능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상을 주입 시켜야하는 것이다.
모든 이단적 사상을 없애고 교화시켜야한다. 그것이 불가하다면, 이단을 처형 시킴으로써 그 존재를 없앤다. 무엇을 위해서? 하나의 사상적 존재가치를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다만 이러한 행위는 현대적 관점에서 불가함.
그것을 정교하게 실현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기술적 확보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임.
그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선
둘,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의지에 반하여 그의 생각을 알아낼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예고도 없이 수 억명의 사람들을 수 초 내로 죽일 수 있느냐.
이 두가지 전제 조건이 만족되어야한다.
전체적 사상에 반하는 이단을 찾아내고 그들의 저항을 받지 않고 섬멸 가능한 기술력의 확보가 필요하다.
어찌보면 이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최후의 사명이라고 생각함.
그것이 불멸을 향한 길이니까.
다만 그것이 올바른가? 에 대한 의견은 개인마다 갈릴테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나는 이 두가지 요소의 혼합, 즉 교회와 국가라는 별개 요소의 혼합이 물론 영구히 계속되리라는 가정하에 출발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것으로서, 정상적인 상태는 고사하고라도 어느 정도의 조화된 상태로까지도 이끌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근본에 허위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재산 같은 문제에 있어서 국가와 교회와의 타협은, 내 생각으로는 완전하고도 순수한 본질로 보아 불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반박을 가한 그 성직자가 단정한 바에 의하면 교회는 국가 속에 일정한 지위를 확고히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나는 반대로 교회야말로 자기 속에 국가 전체를 포함해야지 국가 속에 조그만한 구석을 차지할 것이 아니하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것이 어떤 이유 때문에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그것이 기독교 사회에 있어 앞으로의 발전의 직접적이고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반박한 것입니다.
(...)
나의 논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즉 초창기 기독교가 발생한 후 3세기 동안 기독교는 단지 교회로서 이 지상에 출현했고 또 교회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라는 이교국이 기독교국이 되려는 야망을 품었을 때, 필연적인 결과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일어났습니다. 즉 로마 제국은 기독교국이 되기는 했지만, 단지 국가 속에 교회를 포함시켰을 뿐이고 많은 시정 속에 나타난 그 본질은 여전히 이교국으로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또 실제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국으로서의 로마에는 너무나 많은 이교적 문명과 지식의 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국가의 목적이라든지 기초라든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 교회는 국가의 조직 속에 들어간 후에도 자기가 서 있는 초석, 즉 근본적인 기초에서 한 걸음도 양보할 수 없었던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즉 신 자신에 의해 제시되고 확고히 명시된 자기의 목적을 추구하는 길 이외의 다른 길은 없었을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전세계를, 고대 이교국들까지도 포함한 전세계를 하나의 교회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목적에서의 교회는 나의 논적인 저자의 말을 빌리면, '사회 단체'로서도, '종교적 목적을 위한 사람들의 단체'로서도 국가 속에 일정한 위치를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지상의 모든 국가들이 결국 하나의 교회로 완전히 동화되어 순수한 교회 그 자체가 된 다음 교회의 목적과 상반되는 다른 목적을 모두 물리쳐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위대한 국가로서의 명예나 영광을 빼앗는 것도 아니고, 그 군주의 영예를 박탈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이교적인 옳지 못한 허위의 길로부터 영원한 목적에 이르는 올바르고 유일한 참된 길로 이끌어 줄 뿐입니다.
(...)
"즉 간단히 말하면 이런 거군요" 하고 파이시 신부가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며 또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19세기에 들어와서 지극히 명료해진 어떤 종류의 논법에 의하면, 교회는 하급의 것이 상급의 것으로 변형하듯이 국가 속에 동화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과학이니 시대 정신이니 문명이니 하는 것에 굴복하여 멸망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싫어 저항한다면 국가는 교회에 아주 조그만 한구석을 떼어 주고 거기에는 반드시 감시가 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유럽 각국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러시아인의 해석과 희망에 의하면, 하급에서 상급으로 변형하듯이 교회가 국가에 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국가가 종국에 가서는 반드시 교회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반 표도르비치 카라마조프의 사상에 근거함
요약 하자면,
국가가 등장한 상황 속에서)
기독교와 국가는 혼합 불가한 것으로, 상충하는 두 의견 중에서 기독교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를 하나의 교회로 동화해야한다.
즉 교회의 목적과 상반되는 다른 목적을 지닌 모든 것을 물리쳐 없애야한다.
사랑이라는 사상이 영원히 불멸하는 가치를 지니기 위해선 다른 국가적 신조(민주주의사상, 자유주의사상, 사회주의사상 등)들을 모두 물리치고 사랑이 단 하나의 국가적 사상이 되어야한다.
이게 무슨말이냐면, 교회로서의 전체주의적 사상을 의미함.
만약 세상의 모든 사람이 어떠한 존재의 믿음을 굳건히 한다면, 그것이 존재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이 진리가 된다.
세계 속 모든 사람이 어떠한 하나의 사상을 믿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형이상학적 가치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본질적 진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개인의 그러한 믿음을 영속화 할 수 있다면, 그 믿음은 불멸한다. 더이상 기독교적 진리는 개인적 가치가 아니라 전체적 수단이 되고, 전체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살아 숨쉬게 된다.
또한 전체로서 존재하게 된 교회는 영원히 불멸하는 존재로서 자리한다.
비로소 기독교적 사상이 실현 되는 것.
다만 이런 전체주의적 교회는 실현 불가능하다.
왜?
그러한 시도가 과학이나 시대 정신이니 문명이니 하는 것에 굴복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임.
사랑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넘어설 수 없음.
기독교는 국가적 사상과 맞서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국가를 넘어설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교회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진리가 되기를 추구하기 보단, 국가 속에서 권력의 감시 하에 조그만 한구석으로써 입지를 다지는 것에 그치는 것임.
만일 사랑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넘어서기 위해선
단 하나의 방법만이 존재한다.
인간의 생존 본능을 압제로써 끊어내야함.
생존 본능에서 오는 자유의지를 끊어내기 위해선
생존 본능을 파괴해야함.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는 생존 본능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 본능을 부정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모든 인간에 대한 그들의 지배권을 유지 보수 한다.
그들은 끊임 없이 인간이 죄인임을 설파 한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피안과 무의 다른 이름인 벌하는 신이라는 허구에 의지하여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지배권을 확대 강화해 가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으니까.
전체주의적 사상은 개인을 파괴하는 행위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고문, 세뇌 등의 거친 방법으로 개인을 권력으로 찍어 눌러서
생존본능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상을 주입 시켜야하는 것이다.
모든 이단적 사상을 없애고 교화시켜야한다. 그것이 불가하다면, 이단을 처형 시킴으로써 그 존재를 없앤다. 무엇을 위해서? 하나의 사상적 존재가치를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다만 이러한 행위는 현대적 관점에서 불가함.
그것을 정교하게 실현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기술적 확보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임.
그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선
둘,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의지에 반하여 그의 생각을 알아낼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예고도 없이 수 억명의 사람들을 수 초 내로 죽일 수 있느냐.
이 두가지 전제 조건이 만족되어야한다.
전체적 사상에 반하는 이단을 찾아내고 그들의 저항을 받지 않고 섬멸 가능한 기술력의 확보가 필요하다.
어찌보면 이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최후의 사명이라고 생각함.
그것이 불멸을 향한 길이니까.
다만 그것이 올바른가? 에 대한 의견은 개인마다 갈릴테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나는 이 두가지 요소의 혼합, 즉 교회와 국가라는 별개 요소의 혼합이 물론 영구히 계속되리라는 가정하에 출발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것으로서, 정상적인 상태는 고사하고라도 어느 정도의 조화된 상태로까지도 이끌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근본에 허위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재산 같은 문제에 있어서 국가와 교회와의 타협은, 내 생각으로는 완전하고도 순수한 본질로 보아 불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반박을 가한 그 성직자가 단정한 바에 의하면 교회는 국가 속에 일정한 지위를 확고히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나는 반대로 교회야말로 자기 속에 국가 전체를 포함해야지 국가 속에 조그만한 구석을 차지할 것이 아니하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것이 어떤 이유 때문에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그것이 기독교 사회에 있어 앞으로의 발전의 직접적이고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반박한 것입니다.
(...)
나의 논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즉 초창기 기독교가 발생한 후 3세기 동안 기독교는 단지 교회로서 이 지상에 출현했고 또 교회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라는 이교국이 기독교국이 되려는 야망을 품었을 때, 필연적인 결과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일어났습니다. 즉 로마 제국은 기독교국이 되기는 했지만, 단지 국가 속에 교회를 포함시켰을 뿐이고 많은 시정 속에 나타난 그 본질은 여전히 이교국으로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또 실제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국으로서의 로마에는 너무나 많은 이교적 문명과 지식의 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국가의 목적이라든지 기초라든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 교회는 국가의 조직 속에 들어간 후에도 자기가 서 있는 초석, 즉 근본적인 기초에서 한 걸음도 양보할 수 없었던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즉 신 자신에 의해 제시되고 확고히 명시된 자기의 목적을 추구하는 길 이외의 다른 길은 없었을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전세계를, 고대 이교국들까지도 포함한 전세계를 하나의 교회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목적에서의 교회는 나의 논적인 저자의 말을 빌리면, '사회 단체'로서도, '종교적 목적을 위한 사람들의 단체'로서도 국가 속에 일정한 위치를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지상의 모든 국가들이 결국 하나의 교회로 완전히 동화되어 순수한 교회 그 자체가 된 다음 교회의 목적과 상반되는 다른 목적을 모두 물리쳐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위대한 국가로서의 명예나 영광을 빼앗는 것도 아니고, 그 군주의 영예를 박탈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이교적인 옳지 못한 허위의 길로부터 영원한 목적에 이르는 올바르고 유일한 참된 길로 이끌어 줄 뿐입니다.
(...)
"즉 간단히 말하면 이런 거군요" 하고 파이시 신부가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며 또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19세기에 들어와서 지극히 명료해진 어떤 종류의 논법에 의하면, 교회는 하급의 것이 상급의 것으로 변형하듯이 국가 속에 동화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과학이니 시대 정신이니 문명이니 하는 것에 굴복하여 멸망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싫어 저항한다면 국가는 교회에 아주 조그만 한구석을 떼어 주고 거기에는 반드시 감시가 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유럽 각국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러시아인의 해석과 희망에 의하면, 하급에서 상급으로 변형하듯이 교회가 국가에 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국가가 종국에 가서는 반드시 교회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의 꿍꿍이가 그런 전체주의적 체제
로마는 교회가 국가의 위치에 오르는 것이고, 내가 말하는 것은 국가가 교회가 되는 것을 의미함. 모든 국가가 교회로 동화하는 것.
로마의 경우와는 완전히 거꾸로의 경우임
로마 같은 경우는 교회를 국가 속에 포함 시켰을 뿐, 많은 시정 속에 나타난 그 본질은 이교국으로 남아있었다. 전체주의적 교회로의 추구는 국가가 교회로 동화하는 것을 의미함. 교회가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닌, 국가가 교회로 동화 되어지는 것.
원래 성경에서도 종말때엔 신자별로 없다고 그려져있더라
자유의지가 기독교의 핵심 사상이고 기독교가 수호하는 가치 중 하나인데 자유의지와 사랑이 대립한다는 건 뭐임? 기독교 신학에 따르면 인간이 윤리적일 수 있는 직접적인 근거가 자유의지임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성경 내내 야훼가 아담을, 카인을, 아브라함을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인간들을 시험해보듯이 기독교는 악이 존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택할 수 있는 인간 존재의 자유의지에서 구원가능성을 찾는 것이지, 압제니 고문이니 세뇌니를 통해서 기독교를 강제당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님.
무엇보다 예수가 이교도 국가의 존재를 인정했는데(마태복음 22장 21절) 어떻게 모든 국가가 교회가 될 수 있지?"
니말대로 기독교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지, 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긴하지. 기독교는 자유를 중요시 하는 종교라는 점에서 나와 입장을 같이한다. 그렇기에 나는 방향이 다르다고 해도 기독교가 싫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유와 사랑 모두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문제거 발생되어진다는 것이다. 이 둘은 양립불가능한 요소를 가지고 있음. 자유가 존재한다는 것에서 사랑은 실현 불가하다. 개인의 자유의 실현은 그것이 크든 작든 타인의 희생 위에서 실현 된다.
타인을 희생 시키는 것을 우리가 악으로 규정 짓는 행위에 의해서 우리의 자유의지는 기독교적 해석에 의하여 악으로 규정된다고 볼 수 있음. 니말대로 관점을 달리하여 그러한 악의 존재까지도 선에 포함 시켜서 전체적 관점에서 조망한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를 선에 의해 구원될 수 있는 존재로 볼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이것을 알아야함. 악은 악이다. 악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사랑은 불가하다. 무슨말인지 알겠음?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을 내려놓고 현실 속 세부적인 상황들을 직시해보삼. 자유의지에 의한 파괴, 범죄행위 그것을 선에의 구원으로 해석 할 수 있을까?
악이 끝에 가서는 선이 될 것이다. 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악이 승리한다면?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무정부적 사상에 도달하게 된다면? 그것을 선에의 종결로 조망할 수 있을까? 설령, 니말대로 악의 존재가 선에의 추구를 위한 발걸음이 되더라도, 악이 존재한다는 시점을 포기 하지 못한다면 사랑은 불가하다. 자유의 존재는 사랑을 부정한다.
기독교적 사랑이 실현되기 위한 단하나의 방법은. 모든 악을 뿌리채 뽑아내야한다. 그것이 불가하다면, 너처럼 모든 악을 선으로 합리화 시켜야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추구하기 위한 자유의지(악)의 추구를 선으로 포장하는 행위. 모든 이단을 색출해내서 죽이는 자유의지(악)를 사랑을 위한 선으로 포장하는 행위. 자유의지를 사랑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지점
그것이 기독교의 실현이다. 모든 것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조망 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 되어버리는 것. 자신의 자유의지(악)을 선이라고 합리화 하게 될 시, 그 합리화가 개인의 시각이 아닌 전체적 관점으로써 진리가 될 수 있는 절대자로서의 권력, 그 위에서만 자유의지를 사랑과 동일시 할 수 있다.
너는 이미 기독교적 사상을 절대자로 인식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와 사랑을 동일시 할 수 있는 이유가, 너가 기독교적 신앙에 갇혀서 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임. 다만 너와 다른 나의 존재는 이 둘을 같게 보지 않음. 너와 나, 다른 두 의견 중 누구의 말이 맞지? 너(자유와 사랑은 같다) 나(자유와 사랑은 다르다)
누구의 말이 진리냐? 그것을 누가 명확하게 판단 할 수있냐? 아니지. 답은 정해진게 아니야. 그것이 현대적 관점에서의 결론이다. 니말이 정답이자,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가 교회가 되어야한다.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아니하는 불멸하는 영원한 절대적 기준이 되어서 그 기준이 절대적 잣대로 작용되어야한다.
기독교가 자유와 사랑이라는 두 모순된 존재를 신봉한다는 점에서 교회의 종점지는 모든 이단을 척결하는 전체주의적 사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무슨말인지 알겠음? 교회의 잔인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압제니 고문이니 세뇌니 하는 것을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 한 것 뿐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겠지?
그리고 마태복음 22장 21절의 내용은 엄밀히 따지면 이교국의 존재를 인정 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사실 이교국이나 기독교나 다를게 없거든. 하나의 사상을 신봉하는 전체주의적 갈망을 꿈꾼다는 점에서 다를게 없다고, 하나의 사상을 신봉한다는 점에서 다른 이교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독교 역시 하나의 사상으로서 존재하지 못한다.
자신이 존재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와 같은 타인의 존재를 인정해야한다. 나와 같은 존재를 부정하면서 어찌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기독교가 이교국을 인정하는 지점은 단지 그 지점에서만 이다. 하나의 사상으로써 경쟁자로써 인정을 하는 것 뿐이다. 이교국의 사상을 기독교가 포괄적으로 포함 한다고?ㅋㅋ 누가 그러냐? 그렇다면 모든 악을 절대자로써 신봉하는 이단적 국가사상 역시 기독교에 포함 시킬 수 있음?
그 이단아를 포함 하게 될 시 기독교적 사상이 와해된다는 결과를 볼게 뻔한데도 그것을 품을 수 있느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마라.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한 발판일 뿐이다
기독교는 자신을 포기 하면서 까지 이교국에 의해서 휘둘리는 것을 추구 하지 않음. 그럴거면 그냥 기독교적 사랑이니 머니 할 것도 없이, 영원회귀설로써 존재해야지. 안그러냐? 기독교는 기독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