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도 병 인양 하여'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파하는 사람은 관계에서 패배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감정을 숨기고 아픔을 참죠. 결국엔 어지간한 자극엔 끄떡도 없는 무감각상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들의 두꺼워진 외피에는 더이상 쉽사리 상처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편에는 아무리 아파해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처음인것처럼 사랑하고 상처받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속절없이 아파합니다. 다정도 병이라면 그들은 중증환자죠. 그들의 이름은 시인입니다.
시인들은 감각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사랑하고, 분노하고, 슬퍼합니다. 강풍이 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시인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윤동주-서시) 괴로워 합니다. 무감각해져서 더이상 아픔을 아픔이라 생각지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 (이성복-그날) 다고 진단을 내리는 의사 역시 시인입니다. 물론 이런 지나친 민감성은 원만한 사회생활을 곤란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들 외투를 껴입고 애써 무뎌지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아프게하는 자극의 역치는 높아지고 세상은 조금 견딜만해집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내미는 손길은 점점 더 투박하고 거칠어집니다. 펄펄 끓는 찌개를 아무렇지않게 맨손으로 들고오는 식당 아주머니의 손처럼 말이죠. 내가 견딜만하다면 남들에게 똑같이 해도 그들도 견딜만하겠지 라는 생각은 점점 쉬워집니다. 내 거칠어진 손길은 예민한 사람들에겐 폭력이 되기 쉽고, 타인과의 깊은 공감이란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시인들은 통각이 가장 잘 발달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우리들의 눈으로 그들은 바라보면 가끔은 너무 오바하는것 같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걸 감정과잉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그럴때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감각의 최전선에서 외롭게 고통받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요. 그 고통은 우리가 너무도 쉽게 남에게 가하는 폭력일수도 있고, 우리가 고통임을 잊어버린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깊히 이해를 못한다해도 헤아려보려는 마음을 갖는거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시를 읽으때면 시인의 눈에는 내 마음이 얼마나 가난하고 삭막해 보일까 생각이 들며 부끄러워집니다. 그럴때 저는 내가 참 못난 사람이었구나 느낍니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순간들이 쌓이면 제가 조금더 아름다운 사람이 될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시는 폭력이 없는 세상, 모두가 서로 공감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시차가 없는 세상. 사랑하면 사랑받는 세상. 목적과 결과가 같은 세상. 그렇기에 만약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시를 읽으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더 아름다워 질거라는 유치한 생각을 저는 아직 버리지 못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파하는 사람은 관계에서 패배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감정을 숨기고 아픔을 참죠. 결국엔 어지간한 자극엔 끄떡도 없는 무감각상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들의 두꺼워진 외피에는 더이상 쉽사리 상처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편에는 아무리 아파해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처음인것처럼 사랑하고 상처받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속절없이 아파합니다. 다정도 병이라면 그들은 중증환자죠. 그들의 이름은 시인입니다.
시인들은 감각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사랑하고, 분노하고, 슬퍼합니다. 강풍이 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시인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윤동주-서시) 괴로워 합니다. 무감각해져서 더이상 아픔을 아픔이라 생각지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 (이성복-그날) 다고 진단을 내리는 의사 역시 시인입니다. 물론 이런 지나친 민감성은 원만한 사회생활을 곤란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들 외투를 껴입고 애써 무뎌지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아프게하는 자극의 역치는 높아지고 세상은 조금 견딜만해집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내미는 손길은 점점 더 투박하고 거칠어집니다. 펄펄 끓는 찌개를 아무렇지않게 맨손으로 들고오는 식당 아주머니의 손처럼 말이죠. 내가 견딜만하다면 남들에게 똑같이 해도 그들도 견딜만하겠지 라는 생각은 점점 쉬워집니다. 내 거칠어진 손길은 예민한 사람들에겐 폭력이 되기 쉽고, 타인과의 깊은 공감이란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시인들은 통각이 가장 잘 발달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우리들의 눈으로 그들은 바라보면 가끔은 너무 오바하는것 같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걸 감정과잉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그럴때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감각의 최전선에서 외롭게 고통받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요. 그 고통은 우리가 너무도 쉽게 남에게 가하는 폭력일수도 있고, 우리가 고통임을 잊어버린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깊히 이해를 못한다해도 헤아려보려는 마음을 갖는거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시를 읽으때면 시인의 눈에는 내 마음이 얼마나 가난하고 삭막해 보일까 생각이 들며 부끄러워집니다. 그럴때 저는 내가 참 못난 사람이었구나 느낍니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순간들이 쌓이면 제가 조금더 아름다운 사람이 될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시는 폭력이 없는 세상, 모두가 서로 공감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시차가 없는 세상. 사랑하면 사랑받는 세상. 목적과 결과가 같은 세상. 그렇기에 만약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시를 읽으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더 아름다워 질거라는 유치한 생각을 저는 아직 버리지 못합니다.
- dc official App
잘 읽었습니다. 님 글 참 잘 쓰시네요.
이 쓰레기통 같은 독갤에서 오래간만에 읽는 읽을 만한 글
좋다
추천 - dc App
필력오지네 닉값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