걍 번역하지 말고 주석으로 뜻풀이하는 게 나은 듯
어차피 3가지 번역어도 전부 주석달아야하는데
익명(222.109)2022-09-25 15:25
답글
위버멘쉬 마냥 그냥 트렌젠덴탈로
익명(222.109)2022-09-25 15:25
답글
굳이 번역할 거면 하이데거어 마냥 '경험에 앞서-경험을 가능하게하는' 아니면 '선성험'이라던가
익명(222.109)2022-09-25 15:26
답글
하이데거가 Wahrheit를 Wahr-heit로 쓰면서 "참-임"이라고 번역했지 멀쩡하게 있는 Wahrheit를 참-임 이라고 번역하지는 않았음.
익명(211.234)2022-09-25 15:28
답글
비유로 가져온 거고, 인문학 계는 용어들부터 안 뜯어고치면 인문학의 위기는 본인들이 자초한 거라 못 벗어날 듯
익명(222.109)2022-09-25 15:29
답글
지들 좆대로 개념 바꿔다 쓰니 걍 다 풀어쓰는 게 맞는 듯
익명(222.109)2022-09-2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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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같기도 함. 애초에 Transzendental을 학계에서부터 트란첸덴탈이라고 음역하기로 했었다면 후설 번역할 땐 저걸 선험적으로, 칸트 번역할 땐 초월적으로 하는 이지랄도 안 났을 듯
익명(211.234)2022-09-2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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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국언어 갖다쓰면서 병신된게 많아 한국은 한글전용화되면서 굳이 한자어 번역 쓸 이유도 사라짐 원어 그대로 읽는게 효율적이게 되어버림
익명(175.113)2022-09-2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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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란스첸덴탈인데 백종현 혼자 맛탱이가서 트란첸덴탈이라고 읽는거임
익명(223.62)2022-09-2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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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교수의 비판 보고 이해함
익명(211.234)2022-09-25 17:24
초절정
익명(14.138)2022-09-2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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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문트 후장의 초절정 현상학 ㄷㄷ
익명(211.234)2022-09-25 15:37
초월론적 선험적 이게 맞음
익명(175.113)2022-09-25 15:51
웃긴건 어차피 이 번역 논쟁이 전공자들끼리 탁상공론이라는거임.
익명(121.167)2022-09-25 16:35
답글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칸트적의미에서 "초월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런 말 쓰기나 하겠음? 선험적으로... 이런 말도 잘 안쓰는데
익명(121.167)2022-09-25 16:36
답글
그냥 자기들끼리 용어 통일 안되니까 학계 내 정치하는거지
익명(121.167)2022-09-25 16:37
답글
누구는 단순히 일본따라하는 게 싫어서, 누구는 권위자의 권위를 따르기 싫어서
익명(121.167)2022-09-25 16:38
초월론적, 선험적
익명(61.84)2022-09-25 17:14
초월론/선험
익명(223.62)2022-09-25 17:21
대체로 백종현 말이 더 설득력 있다고 본다. 칸트 자신이 저 비일상적 용어를 쓴 이유가 있고, 애초에 선험으로 번역될 게 아닌게 일본에서 선험으로 번역되었던 걸 최재희가 그냥 쓰면서 이 사단이 일어난거. 일본에서는 이제 안쓰는 번역어를 한국은 최재희가 썼으니 지켜야 한다고 하더만, 거의 코메디지.
졸려(59.7)2022-09-25 17:49
답글
나도 백종현의 "apriori"는 몰라도, "Transzendental"은 그의 번역이 맞다고 봄. 라이프니쯔-볼프 학파때 Transzendental을 "초월자"라는 의미로 사용했고 칸트가 실제로 그들을 "옛 사람들의 초월 철학"이라고 언급한 걸 보면
익명(211.234)2022-09-25 17:52
한국이 일본어 번역어를 따라갈 필요는 없는데, 그렇다고 선험을 써야할 이유가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가 없다. 누가 번역을 하랬지 용어 해석을 하랬냐.
졸려(59.7)2022-09-25 17:50
답글
일본에서는 Transzendental을 선험으로 번역한 논리가, "선천적(apriori)인 것 중에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인 한에서 그것을 선험적(Transzendental)이라고 부른다" 라는데, 애초에 apriori를 합리주의의 "생득" 처럼 "선천"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한 전제부터 잘못된 것 같음
'apriori'는 '경험독립적'이라 번역하기도 하더라.
걍 번역하지 말고 주석으로 뜻풀이하는 게 나은 듯 어차피 3가지 번역어도 전부 주석달아야하는데
위버멘쉬 마냥 그냥 트렌젠덴탈로
굳이 번역할 거면 하이데거어 마냥 '경험에 앞서-경험을 가능하게하는' 아니면 '선성험'이라던가
하이데거가 Wahrheit를 Wahr-heit로 쓰면서 "참-임"이라고 번역했지 멀쩡하게 있는 Wahrheit를 참-임 이라고 번역하지는 않았음.
비유로 가져온 거고, 인문학 계는 용어들부터 안 뜯어고치면 인문학의 위기는 본인들이 자초한 거라 못 벗어날 듯
지들 좆대로 개념 바꿔다 쓰니 걍 다 풀어쓰는 게 맞는 듯
그런 것 같기도 함. 애초에 Transzendental을 학계에서부터 트란첸덴탈이라고 음역하기로 했었다면 후설 번역할 땐 저걸 선험적으로, 칸트 번역할 땐 초월적으로 하는 이지랄도 안 났을 듯
쪽국언어 갖다쓰면서 병신된게 많아 한국은 한글전용화되면서 굳이 한자어 번역 쓸 이유도 사라짐 원어 그대로 읽는게 효율적이게 되어버림
트란스첸덴탈인데 백종현 혼자 맛탱이가서 트란첸덴탈이라고 읽는거임
김상봉 교수의 비판 보고 이해함
초절정
에드문트 후장의 초절정 현상학 ㄷㄷ
초월론적 선험적 이게 맞음
웃긴건 어차피 이 번역 논쟁이 전공자들끼리 탁상공론이라는거임.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칸트적의미에서 "초월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런 말 쓰기나 하겠음? 선험적으로... 이런 말도 잘 안쓰는데
그냥 자기들끼리 용어 통일 안되니까 학계 내 정치하는거지
누구는 단순히 일본따라하는 게 싫어서, 누구는 권위자의 권위를 따르기 싫어서
초월론적, 선험적
초월론/선험
대체로 백종현 말이 더 설득력 있다고 본다. 칸트 자신이 저 비일상적 용어를 쓴 이유가 있고, 애초에 선험으로 번역될 게 아닌게 일본에서 선험으로 번역되었던 걸 최재희가 그냥 쓰면서 이 사단이 일어난거. 일본에서는 이제 안쓰는 번역어를 한국은 최재희가 썼으니 지켜야 한다고 하더만, 거의 코메디지.
나도 백종현의 "apriori"는 몰라도, "Transzendental"은 그의 번역이 맞다고 봄. 라이프니쯔-볼프 학파때 Transzendental을 "초월자"라는 의미로 사용했고 칸트가 실제로 그들을 "옛 사람들의 초월 철학"이라고 언급한 걸 보면
한국이 일본어 번역어를 따라갈 필요는 없는데, 그렇다고 선험을 써야할 이유가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가 없다. 누가 번역을 하랬지 용어 해석을 하랬냐.
일본에서는 Transzendental을 선험으로 번역한 논리가, "선천적(apriori)인 것 중에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인 한에서 그것을 선험적(Transzendental)이라고 부른다" 라는데, 애초에 apriori를 합리주의의 "생득" 처럼 "선천"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한 전제부터 잘못된 것 같음
그리고 apriori 아프리오리라고 쓰면 그게 번역이냐 음차지.
영역본에서도 칸트가 라틴어로 쓴거는 번역 안하고 그대로 냅둔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