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빅슬립 도입부다. 


  10월 중순 어느 날 오전 열한시경, 태양은 보이지 않고 한결 뚜렷해진 언덕들이 폭우를 예고했다. 

  나는 담청색 양복에 암청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넥타이를 매고, 장식용 손수건을 꽂고

  발목에 암청색 수를 놓은 검은색 모직 양말과 검은색 단화를 신고 있었다. 

  이렇게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새에 면도까지 한데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으니 누가 좀 알아줬으면 싶었다. 

  그야말로 말쑥한 사설탐정의 모범답안 아닌가. 사백만 달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 문학동네  김진준 역


  10월 중순 오전 열한시경이었다. 햇빛은 비치지 않았고 선명하게 드러난 산기슭에는 거센 비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진한 청색 와이셔츠와 넥타이에 담청색 양복을 입고 장식용 손수건을 꽂았으며 검은 단화와 짙푸른

  실로 수놓은 검정색 모직 양말을 신고 있었다. 단정하고 깨끗하고 말끔히 면도도 한 데다가 머리도 맑았지만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립탐정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400만 달러짜리를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다. 

  ...... 북하우스 박현주 역



  오래 전에 빅슬립을 무척 재밌게 읽어서(참고로 레이먼드 챈들러는 무라까미 하루끼가 무척 좋아하는 미국작가다. 묘사가 굉장히 독특함)

  이번에 다시 읽어보려고 하는데, 김진준 역은 '누가 좀 알아줬으면 싶었다'로 돼있다. 그런데 박현주 역은 이와는 반대로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로 돼있네. 누가 틀린 거야? 아마도 내 예상엔 북하우스가 틀리지 않았을까. 

  전에 북하우스 읽으면서도 번역문장이 무척 거칠다, 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위 번역만 봐도 폭우면 폭우이지 거센 비는 뭐야? 진한 청색 와이셔츠

  부분도 그냥 진청색 이라고 하면 될 것을... 


  대사 부문도 뉘앙스 차이가 많이 난다. 


  "키가 크시네?" 그녀가 말했다.

  "내 잘 못은 아니지."

  여자의 눈이 둥그래졌다. ......... 문학동네 판


  "키가 크시네요. 그렇죠?

  그녀가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오." 여자의 눈이 둥그래졌다........... 북하우스 판 


  번역상 뉘앙스 차이야 번역자의 개인적인 정서가 개입되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드보일드 문체의 개척자를 번역한다면 

  문학동네 판이 더 나은 것 같네. 다시 보니 김진준 이 사람은 문학동네 롤리타 번역한 사람이네. 내가 민음사 번역은 정말 읽을 때 짜증이 났는데

  문학동네는 너무 너무 재밌게 읽었거든. 


  아무튼 누가 알아줬으면, 이 맞는지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가 맞는지 누가 내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그래도 뉘앙스 차이는 나더라도 오역은 심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