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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원전과 요약본에 대한 생각을 국부론을 중심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내 가만히 생각컨데, 국부론은 원전을 접하기 힘든 현실과, 고의 혹은 중과실에 따른 오독의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국부론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거의 이 수준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다 알아서 하는데 왜 정부가 깝치고 지랄이냐, 최대한 정부의 간섭을 막고 자유시장을 보장하는 것이 국부의 근거다.
실제로도 교과서는 ‘보이지 않는 손’ 수준에서 그칠 뿐이며, 심지어 한국에서는 ‘자유를 특별히 아끼면서도 근현대사의 독재자들을 숭앙’하는 분들이 국부론을 자유지상주의적 사익추구의 근거로 악용하고 있다(사실 이런 상황은 미국에서도 비슷하다).
하지만 국부론이 쓰여진 배경과 그 내용을 알게 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처짐을 알 수 있다. 우선, 애덤 스미스는 남해회사 거품이 폭발한 1720년으로부터 3년 후에 태어났다. 이 남해회사는 영국의 부실국채를 인수하는 댓가로 노예무역 특권을 인정받았었다.
애덤 스미스가 반대한 것은 이러한 종류의 특권이었다(물론 노예무역도 반대했으리라). 그가 원한 국가의 역활은 사회공동체 내에서 대등한 위치에 있는 구성원간에 교환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 이었다.
그는 경제주체들 사이에 경쟁과 균형을 주장했으며 민간의 독점도 거부했다. 분배적 정의에 의거한 온정주의적 개입은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필요성을 인정했으며, 부유층의 소득수준에 따른 과세도 찬성했다.
더군다나 사회후생 증진에 반드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임에도 시장실패로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거나 특별한 외부효과가 있다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세간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국부론을 고의 또는 중과실로 오독하는 이들이 안다면 애덤 스미스를 종북좌파라며 거품을 물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본론이 국부론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졌음을 알지 못하고 말이다.
선입견과 다른 이 저술은 모순을 일으키는 것 같으나, 애덤 스미스의 첫 작품인 도덕감정론을 읽어보면 이 괴리는 해소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본성에는 연민과 공감의 원리가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연민과 공감을 갖추지 못하고 오로지 이기적이기만 한 탐욕머신이라면, 애덤 스미스의 사상 전체를 깨닳자마자 알아서는 안될 지식을 깨닳은 러브크래프트 소설속 등장인물처럼 인지부조화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국부론의 요약본만으로는 국부론을 오롯이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국부론 원전만으로도 애덤 스미스를 오롯이 아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폭넓은 감상을 위해서라면 부조(浮彫)로만 느끼지 않고 환조(丸彫)로써 파악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원전 vs 요약본에 대한 생각은 지금까지 ‘지 꼴리는데로 해도 무방’ 하다는 생각이었고, 사실 앞으로도 그렇다. 막말로 노잼덩어리 시민케인을 졸지 않고 끝까지 본 수준높은 교양인에게 자격증을 발부하는 단체같은게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혹여나 ‘자기는 고생해서 시민케인을 다 봤는데, 어떤새끼가 유튜브 요약본을 보고 와’ 서 심기가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그거야 말로 불쌍한 일이다. 그 사람은 시민케인을 즐긴 것이 아니라 업적작을 위해 시민케인을 틀어놓은 것이다.
(다만, 시민케인이 즐길만한 훌륭한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확실한 건 예나 지금이나 가장 무서운 사람은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이다.
성공한 프로파간다라서 굳이 더 이상 손댈 이유가 없으니... 그에 비해 맑스는 역사가 그 실패를 증명했다고 생각하니 자꾸 뒤적거리면서 뭐라도 다른 걸 하나 더 건져낼려고 하는 사람들이 드글거리고
고전 경제학책 찍먹하면서 느낀건데. 성공한 프로파간다 수준이 아니라 할 필요도 없는 수준으로 경제학 혹은 경제라는 개념이 성공한것 같다. 애덤 스미스가 제시했던 가정 이상으로.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