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20초부터.


"짐작컨대, 당신은 당신이 옳다고 믿고
잘못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이 얼마나 제멋대로이고, 오만하고, 덧없는 생각인가.
인생의 짧음은 축복입니다.

용을 제거하는 것은, 하면 좋은 행동으로 보이겠지만,
우리의 존엄을 훼손할 것입니다.

이 용을 죽이자는 집착은, 우리 삶이 자연적으로
갖게 되는 열망에서 빗나가게 만들며,

열심히 사는 것에서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용의 본질은 먹어치우는 것이며, 우리의 본질은 오로지
당당하게 먹히는 것으로만 성취할 수 있습니다."



CGP Grey라는 꽤나 좋은 과학 유튜버에서 나온 이 말.
이 말은 아주 명백하게 철학자를 겨냥한다.

용은 아주 당연하게도 죽음을 가리키는데, 과학자들이 용을 처단하려 하는 이 줄거리에서 이 "철학자"는 풍자의 대상으로 나온다.
이 철학자는 어이없고 근거가 전혀 없는 사변으로 죽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줄거리에서 이 철학자의 고고한 주장은 군중들의 본능적인 반대를 일으키고, 완전히 거부된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저 위에 나온 철학자의 이론은 적어도 우리가 죽음을 옹호한다고 알려진 메이저 철학자들의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렇다.
(오류가 있을 수 있음...)

현상학에서 원래 쓰인 지향성이라는 개념은, 하이데거에 의해 "마음씀, 염려 Sorge"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지향성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것에 대한 것"이라는 의미인데, 하이데거는 이를 극단적으로 발전시켜 어떤 것을 존재로, 대하다는 것을 이해로, 따라서 존재이해로서의 마음씀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여기서 존재이해를 추구하면서 존재에 의문을 추구하는 자, 현존재가 되게끔 하는 것을 본래성이라 하고, 존재이해를 추구하지 않거나 추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비본래성이라 한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마음씀을 본질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이 시간성이라고 말한다.
시간성은 여기서 시간만이 아니라 공간 또한 다루는 경우가 있다. 딱 지금 이 때라는 개념을 뜻한다 - 현사실성이라고도 하는데, 이 현재의 상황이란 편견을 통해서만 과거의 일어난 것들 - 정확히 말해 모든 의미에 대해 유한적으로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간성의 의미에서 다른 개념이 나온다. 유한적인 것의 극한, 이해가 불가능하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비본래성의 극한이다.
존재에 의문을 추구하는 자인 현존재는 이 비본래성의 극한을 마주치면서 어떤 기분을 느낀다고 하는데, 이것이 불안이다. 이 불안을 통해 현존재는 본래성을 찾아 다시 존재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것을 선구성이라고 한다.

여기서 비본래성의 극한을 죽음이라고 한다면, 이는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다. 하이데거의 죽음 개념은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이미 예전부터 이 죽음의 개념을 둘로 나누었다는 말도 있지만 의견이 갈라지는 것 같아 여기서 더이상 설명은 힘들다.
확실한 것은, 적어도 블랑쇼라는 철학자는 본래성으로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서의 죽음과 완전한 비본래성으로서의 죽음을 나눴다는 점이고, 하이데거가 블랑쇼의 이론에 대해 찬사를 표했다는 점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서 나오는 키릴로프는 인간 찬가를 위해 본래적이고 생물학적인 죽음을 스스로 일으킨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가 하고자 싶은 말은 그 이후에 다른 죽음이 또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을 쓴 이후로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이라는 강의록을 남겼는데, 여기서 그는 죽음이라는 개념보다 더 색다른 면에서 그의 이론을 다뤘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생물학적인 죽음을 없앨 수는 있을 것이나, 어쩌면 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비본래적인 것의 극한에 더 가깝게 몰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이데거의 철학은 이런 망상과 같은 상황에서도 의미를 가질 것이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훨씬 더 간단하다.
"인간 영혼의 시간적 불멸성, 즉 죽음 이후에도 인간 영혼이 영원한 삶을 계속한다는 가정은 어떤 방식으로도 보증되어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 가정은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늘 그런 가정으로 달성하고자 한 것을 전혀 성취하지 못한다. 내가 영원히 산다는 것에 의해 도대체 수수께끼가 풀리는가? 도대체 이 영원한 삶이란 현재의 삶과 똑같이 수수께끼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