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둘러보는데. 도덕의 계보 두 번째 논문 마지막 구절에 차라투스트라인지 위버멘쉬라는 이름이 적혀있긴 할 텐데... 그건 개념을 설명하지 않아서 넘어가는건가 아무튼
불안의책(artistrilke)2022-10-01 01:34
답글
두번째로, 위버멘쉬가 누군지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 보면 좀 이상한 걸 확인 할 수 있을 거임. 선악의 저편 200에서 카이사르 프리드리히 2세 다빈치가 뭐 수사학이 겸비된 위대한 사람 취급을 받고 있고, 괴테는 편지에서 분명 명시되고 있는데, 이것을 명백히 위버멘쉬라 부르지 않았음. 하지만 힘에의 의지에서는 명백하게 규정함.
불안의책(artistrilke)2022-10-01 01:41
답글
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한 율리우스 카이사르"... 라 언급하는데, 뭐...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아무튼 위버멘쉬가 참 복잡한 주제임.
불안의책(artistrilke)2022-10-01 01:42
답글
또한 힘에의 의지, 편집되지 않은 정본에서도 충분히 형이상학적인 말은 나옴. "세상의 원리는 힘에의 의지에 따른다" 는 원래 들어가 있는 문장일 뿐만 아니라, 힘에의 의지를 통해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해결하려는 철학적 탐구를 하려고 하기도 했음.
불안의책(artistrilke)2022-10-01 01:46
답글
그리고 푸코와 데리다... 푸코가 하는 일을 상대주의라 하는 것은 패러다임 이론을 상대주의라 하는 것과 비슷한 것임. 이성의 역사적 변화과정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성에서 쓰이는 개념들의 구조가 어떻게 연결되고 분절되는지를 설명하려는 거지.
불안의책(artistrilke)2022-10-01 01:52
답글
푸코가 역사를 분석하는 방식은 니체가 "반시대적 고찰"에서 2장인가 부분에 헤겔을 비판하는 것과 굉장히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음. 어떤 근원도 발전도 없고, 유명론nominal적이라는 것. 푸코가 이것임.
불안의책(artistrilke)2022-10-01 01:54
답글
데리다의 개념 또한 상대적인 것이 아님. 무엇이 사실인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 이것은 데리다도 똑같이 추구하는 것임. 그가 말하려는 것은 말하자면 문헌학이자 해석학에서 나오는 문제점인 것임. 언제나 해석은 둘로 나뉘고, 어떤 게 본질적이고 어떤 것이 비본질적인지 모르고, 무엇이 본질적이려면 다른 문서로 보충을 하는 악순환이 있고...
불안의책(artistrilke)2022-10-01 01:59
답글
번외로 "텍스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말을 설명하겠음. 데리다는 절대 이 말을 안했음. 그는 "텍스트의 바깥이란 없다"라고 했음. 기존 형이상학은 텍스트가 실재를 지칭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당시 철학자들에 대해 이것이 의문시되었고, 데리다는 이것을 받아들여 텍스트중심주의를 보인 것임. 우리가 아는 모든 존재가 텍스트면 본질이 당췌 뭐냔 거지.
불안의책(artistrilke)2022-10-01 02:08
나 저사람이랑 거래 해봤는데 중고로 구매하겠다는 알림 받으면 그때 구매해서 새책으로 배송 해주는거같던데
저게 말로 듣던 선반영인가
본문이랑 관련 없는 얘기긴 한데 분석철학의 이런 니체 독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함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443949
맨 처음 둘러보는데. 도덕의 계보 두 번째 논문 마지막 구절에 차라투스트라인지 위버멘쉬라는 이름이 적혀있긴 할 텐데... 그건 개념을 설명하지 않아서 넘어가는건가 아무튼
두번째로, 위버멘쉬가 누군지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 보면 좀 이상한 걸 확인 할 수 있을 거임. 선악의 저편 200에서 카이사르 프리드리히 2세 다빈치가 뭐 수사학이 겸비된 위대한 사람 취급을 받고 있고, 괴테는 편지에서 분명 명시되고 있는데, 이것을 명백히 위버멘쉬라 부르지 않았음. 하지만 힘에의 의지에서는 명백하게 규정함.
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한 율리우스 카이사르"... 라 언급하는데, 뭐...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아무튼 위버멘쉬가 참 복잡한 주제임.
또한 힘에의 의지, 편집되지 않은 정본에서도 충분히 형이상학적인 말은 나옴. "세상의 원리는 힘에의 의지에 따른다" 는 원래 들어가 있는 문장일 뿐만 아니라, 힘에의 의지를 통해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해결하려는 철학적 탐구를 하려고 하기도 했음.
그리고 푸코와 데리다... 푸코가 하는 일을 상대주의라 하는 것은 패러다임 이론을 상대주의라 하는 것과 비슷한 것임. 이성의 역사적 변화과정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성에서 쓰이는 개념들의 구조가 어떻게 연결되고 분절되는지를 설명하려는 거지.
푸코가 역사를 분석하는 방식은 니체가 "반시대적 고찰"에서 2장인가 부분에 헤겔을 비판하는 것과 굉장히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음. 어떤 근원도 발전도 없고, 유명론nominal적이라는 것. 푸코가 이것임.
데리다의 개념 또한 상대적인 것이 아님. 무엇이 사실인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 이것은 데리다도 똑같이 추구하는 것임. 그가 말하려는 것은 말하자면 문헌학이자 해석학에서 나오는 문제점인 것임. 언제나 해석은 둘로 나뉘고, 어떤 게 본질적이고 어떤 것이 비본질적인지 모르고, 무엇이 본질적이려면 다른 문서로 보충을 하는 악순환이 있고...
번외로 "텍스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말을 설명하겠음. 데리다는 절대 이 말을 안했음. 그는 "텍스트의 바깥이란 없다"라고 했음. 기존 형이상학은 텍스트가 실재를 지칭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당시 철학자들에 대해 이것이 의문시되었고, 데리다는 이것을 받아들여 텍스트중심주의를 보인 것임. 우리가 아는 모든 존재가 텍스트면 본질이 당췌 뭐냔 거지.
나 저사람이랑 거래 해봤는데 중고로 구매하겠다는 알림 받으면 그때 구매해서 새책으로 배송 해주는거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