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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붕괴하고 있다(특히 최근의 전쟁을 기점으로 더욱 빠르게).


그런데 모든 자원을 피상적인 대학 입시 교육과 취직 시험, 스펙 축적에 쏟아붓는 사회에서 붕괴의 위기를 떠받칠 인재, 리더, 거인들이 나타날 수 있겠나.


한국은 한번도 제대로 된 능력주의를 해본 적이 없다고 봐야 한다. 한국에 제대로 된 능력주의가 있었더라면,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들은 대부분 해결되었을 듯하다.


공허한 학-벌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이제는 재생산 체계마저 완전히 망가뜨려서 국가를 무너뜨리고 있을 뿐.


인간은 정량적 점수나 스펙이 아니라 깊이와 신념과 정신력과 지혜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비정량적 요소들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나?


평가하기 어려운 것을 평가하는 것이 사회의 역량이라고 보아야 한다.


가장 깊은 평가는 말과 대화, 글쓰기와 행동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의 평가 체계가 그 사회와 문화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이고, 평가 기준에서 제외된 것들은 사회의 핵심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저질스러운 평가 기준을 가진 사회에서는 만인이 피상적이고 헛된 노력을 하게 될 뿐이고, 모든 자원과 시간이 이러한 저질스러운 경쟁 속에서 소모되며, 사회 전체가 점차 열화되어 간다.


때때로 필자는 인류 문명의 정수보다 토익 책 한 권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장하는 사회는 존속 불가능하다는 데 대한 근거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뻥스펙 엘리트들의 득세는 작게는 정치의 기능 부전을, 크게는 사회 전체의 기능 부전을 초래한다.


진정한 엘리트들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능력을 통해 평가되어야 하며, 그러한 사랑을 배양하기는커녕 멸시하도록 부추기는 사회는, 이제는 존속 불가능하다.


젊은 독갤러 여러분이 단순한 취미적 독서를 넘어서는,


자신의 신념과 정신을 벼리는 독서를 이어 나간다면, 그것이 미약하나마 이 사회의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


가장 멋진 독서는 금강석과 같은 정신을 만들어서 유리로 만든 세상의 상들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유리와 금강석은 겉보기에는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금강석이 결정체인 데 반해 유리는 비결정성 고체라는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