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자신이 아이스스케이팅을 못하거나
첼로를 잘 연주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시도나 연습을 하지 않을텐데
독서는 못하는 걸 알면서도 하게 됩니다.
못한다고 낙담하는게 아니라
이해한 척 하면서 어거지로 읽어나갑니다.
도덕경을 예로 들어보죠.
말할 수 있는 도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도가 아니요,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을 때에는 우주의 근원이요, 이름이 있을 때는 만물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항상 무위무욕함으로써 그 미묘한 본체를 살펴보고 항상 유위유욕함으로써 그 순환하는 현상을 살펴본다
이 두 가지는 다 같은 근원에서 나오고서도 이름을 달리 부르지만, 둘 다 현묘한 것이라고 한다. 현묘한 가운데 또 현묘한 도는 모든 사물의 묘리가 거기서 나오는 문호가 된다.
과연 이걸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굳이 도덕경이 아니라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책들은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텍스트를 읽어나가죠.
이해를 하고 말고를 떠나 그 책에 적혀있는 텍스트를 물리적으로 다 읽어내고야 말죠.
도대체 왜 포기하지 않는걸까요?
읽어는 봤지. 근데 도덕경을 아냐고 하면 대답 못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