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 책과 혁명
좋다고 느낀 부분들을 따로 필사를 했습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는 금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의 필사를 보고 흥미를 느끼셨다면
"책과 혁명"이라는 도서를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머리말.
독서의 역사는 책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인 동시에 독자적인 영역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책을 읽는 행위, 또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인쇄술, 제본술, 출판업과 광고 따위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지만, 전혀 다른 측면에서도 독서의 역사를 연구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책의 역사에서 책의 물질적 조건(종이, 활자, 인쇄소, 서점, 제본술 따위)과 함께 식자율이나 문해율, 검열 따위의 문화적 요소가 중요하다. 독서의 역사는 책이라는 공통의 요소를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전유하는 문제, 다시 말해서 독자가 내용을 전유하는 방식이 시대마다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똑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소비/사용하는 방식이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고, 사회적 차이를 낳기도 한다. 텔레비전을 최신형으로 갖춰놓고 주로 ‘종편’을 시청하면서 웃고 우는 시청자와 구닥다리 텔레비전으로 교육방송을 보는 시청자의 문화적 차이는 분명히 크다.
오늘날의 책을 보면 반드시 물질과 내용이 결합할 필요는 없다. 라디오를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누구나 라디오를 갖고 있지만, 독재국가가 아닌 이상 자기가 듣고 싶은 방송을 골라서 듣는다. 즉 라디오와 내용이 반드시 결합하지 않는다. 라디오 한 대만 있으면 여러 방송을 돌려가면서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라디오가 없던 시절의 책은 물질과 사상이 결합한 형태였다. 그러므로 이론적인 얘기지만, 책을 찢거나 불태우면 사상도 죽일 수 있었다. 금서를 압수하면 그 내용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자책은 내용을 저장하는 곳이 따로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이론적인 얘기지만, 종이책처럼 없애기는 어렵다. 물론 그것을 무력화하는 기술이 나오게 마련이므로, 여기서는 책 읽기의 조건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강조하려고 단순화해서 말했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종이책을 읽는 조건을 연구하는 것도 독서의 역사에서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독서는 명사 같지만, 사실상 행위이며 동사다. 그러므로 독서를 하면 정신만이 아니라 몸도 피곤하다. 게다가 귀족이나 부유한 평민이 촛불 아래서 편안하게 책을 읽는 것과, 같은 원본을 요약한 책을 읽거나, 그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한 사람이 읽어주는 것은 분명히 다른 효과를 낳는다. 특정 시대의 물질적 요쇼(책)가 얼마나 불평등하게 분포되었는지 연구한 사회사적 성과를 바탕으로 개인이 그 요소를 전유(내용을 파악)하는 방식까지 연구하는 역사라 하겠다. 더욱이 모든 시대의 책은 다른 책을 읽고 말하지 않는가. 그것이 독서의 결과가 아니면 무엇이랴. 독자는 능동적인 인간이고, 독서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무한히 확장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모든 것은 문화적 구축물이며 그 규약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그 범위는 한정된다.
어째서 당신은 200년이나 잊혀진 채로 있던 문학의 전집을 추적하느라 골머리를 썩이는가? 오늘날의 베스트셀러도 아주 평범해 보이는 마당에 18세기의 베스트셀러에 어째서 주목하는가? 이것이 학문적으로 어떤 중요성이 있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하련다.
첫째, 책의 역사는 ‘인문과학’의 새로운 분야로서 문학과 문화사 전반에 대해 좀더 넓은 안목을 마련해줄 수 있다. 사회 전체를 통해서 독자가 어떤 책을 손에 넣었는지, 그리고 (일정한 범위에서나마) 독자가 어떻게 그것을 이해했는지 알게 됨으로써 우리는 문학을 전반적인 문화체계의 일부로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유명한 저자가 쓴 위대한 책에 대한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사회학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와는 달리, 우리가 잊고 있던 과거의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오늘날에도 훌륭한 읽을거리가 된다.
둘째, 나는 서적의 역사가 어떻게 의사소통의 역사라는 좀더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는지 보여주고 싶다. 우리는 문학을 한 가지의 의사소통 체계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지은이와 펴낸이로부터 박은이와 파는이를 통해서 독자에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또 문학은 인쇄물,글,입말,시각자료 따위의 모든 매체가 교차하고 맞닿는 전반적인 문화에 속한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책은 라디오,텔레비전과 경쟁하지 않았지만 험담,소문,농담,노래,낙서,벽보,풍자시를 담은 광고,편지,신문 같은 것이 넘치는 사회에 유통되었다. 이러한 매체 가운데 다수가 책의 영향을 받았듯이, 책에 그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뜻을 전달하고 증폭사키는 과정을 통해서 프랑스는 말과 그림으로 넘쳐났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어떻게 작용했는가.
우리가 사실상 단일한 대중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해도 우리는 대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며, 18세기에 대중은 어떻게 여론을 형성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1장. 외투 밑의 철학
1770년대와 1780년대에는 해마다 책이나 소책자의 경우 4.5권꼴로 고발했고, 이 기간에 나온 인쇄물 가운데 겨우 19권만 공개적으로 소각했다.
수천 권의 다른 책은 지하유통망을 거쳐 은밀히 돌아다녔다. 그것들은 왕국 방방곡곡에 있는 굶주린 독자에게 불법 문학의 기본식단을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무슨 책이 그렇게 유통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행상인들이 ‘외투 밑에서sous le manteau’팔던 다양한 문학작품의 거대한 덩어리는 실제로 얼마나 컸으며 어떻게 생겼을까? 체제수호자들도 알지 못했다.
서적상은 도서목록을 보거나 심지어 비밀경로를 통해 전파되는 소문을 듣고 책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제목을 잘못 아는 수도 있었다. 베르사유의 푸앵소가 스위스에 있는 공급자에게 “속임수로 가득 찬 중편소설nouvelles des couvertes des ruse”을 25권 보내달라고 주문했을 때, 스위스인은 푸앵소가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새 소식Nouvells decouvertes des russes>이라는 여행서적을 원하는 줄 알았다.
이러한 실수는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서적상이 금서를 갖고 있다가 잡히면 감옥에 갇히거나 업계에서 추방당할 수 있었다. 운반하는 마차꾼은 벌금형을 받거나 짐마차의 짐을 모두 몰수당했다. 그것을 파는 행상인은 이마에 GAL이라는 글자를 새겨넣고 군선에 올라 사슬에 묶인 채 노를 저어야 했다. 실제로 이러한 형벌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금서를 구분하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언어의 문제로 보인다. 경찰은 바스티유에 수감된 랭스의 서적상 위베르 카쟁을 심문하면서 그의 편지에 종종 나타나는 ‘철학적 상품’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모든 종류의 금서와 의심스러운 문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체포된 카쟁은 그 말이 ‘업계에서 금지된 것을 표현하기 위한 관습상의 표현’이라고 규정했다. 상업상의 기호체계 속에서 이 말은 서적상을 곤궁에 빠뜨릴 수 있는 책, 다시 말해 조심해서 다뤄야 할 책을 일컫기 위한 암호로 쓰였다.
‘철학’은 위험을 나타냈다. 퇴샤텔출판사의 중역들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금서를 많이 쌓아놓지 않았고 업계의 결말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서적상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가끔 아주 부적절하게 ‘철학책’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작품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런 책을 취급하지 않습니다만, 어디서 그것을 찾을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요청하신다면 공급해드릴 수 있습니다.”
공급인은 당연히 어떤 책이 그 범주에 속하는지 알고 있다고 여겨졌으며, 어떤 경우에는 주문에 그 점을 분명히 밝혔다. 레뇨는 18가지 책의 주문서에서 ‘철학’책마다 덧셈표를 해놓고, 그 책들은 짐 속에 잘 숨겨야 한다는 토를 달았다. 그가 주문한 ‘철학책’은 <대부 마티외Le Compere Matthieu> <샤르트뢰 수도원의 문지기 동 부그르 이야기> <창녀La Fille de joie> <귀부인들의 아카데미L’Academie des dames> <정신론Del’Esprit> <2440년L’An 2440>의 여섯 가지였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외설서에서 철학책에 이르는 전형적인 섭집이었다.
교환
‘철학책’은 보통 책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따라서 금서를 포함한 교환은 특별한 비율을 필료오 했다. 이를테면 ‘철학책’의 전지 두 장을 보통 해적판의 석 장과 바꾸거나, 또는 한 장 대 두 장, 또는 석 장 대 넉 장의 비율로 바꾸었는데, 비율은 양측의 흥정 능력에 달려 있었다.
어떻게 거래가 진행되었는지 고문서에서 알아낼 길은 없지만, 흥정의 일반 성격은 뇌샤텔출판사가 주네브에 있는 가장 중요한 공급인 자크 뱅자맹 테롱이나 가브리엘 그라세와 주고 받은 편지를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테롱은 수학을 가르치고, 책을 팔고, 독서방caninet litteraire을 운영하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으면서 근근히 살아갔다. 현찰을 받고 금서를 몰래 팔았으며, 주네브의 그랑뤼에 있는 집의 2층 방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자기 책방에서 버젓이 팔 수 있는 합법 서적과 바꾸기도 했다.
테롱이 앞으로 중요한 공급원이 될 수 있음을 알아차린 퇴샤텔출판사는 1774년 4월 편지를 보냈다. “우리도 역시 ‘철학책’이라는 종류를 부탁받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귀하가 우리에게 그러한 책을 공급할 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우리는 기꺼이 귀하에게 물건을 공급 받겠으며, 우리의 거래는 확실히 귀하에게 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테롱은 다음과 같이 회신을 보냈다. “귀사의 상품 가운데 제가 원하는 책과 귀사가 제게 바라는 철학책을 넉 장 대 석 장의 비율로 바꾸고 싶습니다.” 아주 너그러운 조건이었다. 테롱은 앞서 투기를 해놓고 돈을 갚지 못한 상태에서 뇌샤텔출판사의 호의를 얻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그라세는 직접 인쇄와 서적판매사업을 할 때까지 몇 년 동안 크라메의 인쇄소에서 작업을 감독했다. 그는 금서를 찍어내어 은밀히 팔면서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났다. 그는 경계를 소홀히 하여 투옥된 적도 있었으나 책을 은밀히 쌓아두는 일은 쉽사리 그만두지 않았다. 1780년 8월 그라세는 <예수 그리도의 비판적 역사> 100권을 교환하겠다고 내놓았다. 그는 1782년 2월 죽을 때까지 은밀한 거래를 계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라세가 편지에 동봉한 목록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철학책’을 특별히 취급하던 방식 한 가지를 더 알 수 있다. 따로 은밀히 만든 목록에 철학책을 수록했던 것이다. 그라세는 자기가 작성한 목록을 “철학책에 관한 짧은 설명”이라는 제목을 단 작은 종이에 인쇄했다. 거기에는 75개 제목이 알파벳 순으로 수록되어 있지만, 어디에서 그것들을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도서목록은 비록 위험한 것이었지만 마케팅에는 꼭 필요했고, 출판업자들은 정기적인 우편물로 목록을 보냈다. 프랑스 서적상들은 자신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우편물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가끔 암호를 사용하고 경찰이 비밀리에 봉인을 깨뜨리는 일을 언급하면서도, 그들은 스스럼없이 철학책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프랑스 독자는 권당 2, 3리브르짜리 금서를 사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숙련노동자는 하루에 그 정도, 아니면 그 이상도 벌었기 때문이다.
서적상은 주문서를 작성하면서 모든 종류의 합법, 불법, 거의 불법에 가까운 서적을 뒤섞어서 기입했다. 때때로 그들은 주문서에는 해롭지 않은 제목들을 올리고, 금서의 제목은 쪽지에 따로 적어서 슬쩍 끼워넣어 보냈다. 물론 쪽지에는 서명을 하지 않았고, 주문서가 도착한 뒤에는 버리게 되어 있다.
디종의 뉘블라는 모든 불법 서적을 하나로 꾸려서 짐의 맨 위에 넣어주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조합 사무실에서 짐을 검사하기 전에 몰래 빼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리옹의 자크노는 철학책을 가짜 송장과 함께 짐의 밑바닥에 넣어주는 편을 좋아했다. 그리고 파리의 바루아는 자기 책을 포장지 속에 감춰주기를 바랐다.
만일 어떤 서적상이 모든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면, 그는 유통망의 합법적인 통로를 통해서 불법 서적을 몰래 들여오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밀수꾼 또는 업계에서 ‘보증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고용했다. 그 체제는 성가시고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일부 서적상이 가장 원하는 성과를 안겨주었다. 그들은 뭐니뭐니해도 안전을 바랐다.
1789년, 프랑스 정부의 모든 체계는 대참사를 맞이했다. 출판업의 ‘철학’ 분야에서 시작된 이념적 침식작용이 이처럼 전반적인 붕괴를 가져오기 위한 필요조건이었던가? 이 문제에 덤벼들기 전에 우리는 금서의 전체를 파악하고, 그 내용을 검토하고, 그것을 독자가 어떻게 수용했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지하유통망을 돌아다니던 ‘철학’은 보통 계몽주의와 연관된 사상체계와 아주 다르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우리는 18세기에 대한 표준 역사에서 쌓아놓은 평범한 관념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계몽주의는 프랑스혁명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러한 고전적인 질문은 이제 그릇된 질문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런 식으로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첫째, 계몽주의를 마치 18세기 문화 속에서 다른 요소와 구별할 수 있는 요소처럼 구체화하고, 둘째, 그것을 마치 피의 흐름 속에서 감지할 수 있는 물질과 마찬가지로 1789~1800년의 모든 사건을 통해서 추적할 수 있는 것처럼 혁명을 분석하는 데 집어넣음으로써 그 문제를 왜곡시키기 쉽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라스 인쇄물의 세계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계몽주의’라든가 ‘혁명’이라든가 하는 범주로 분류하기 어렵다. 우리는 <사회계약론>을 정치이론으로, 그리고 어딘가 너무 거칠어서 문학으로 취급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동부그르 이야기>를 음란서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18세기의 책세상 사람들은 두 가지 책을 한데 묶어 ‘철학책’으로 생각했다. 만일 우리가 그들의 자료를 그들 방식대로 본다면, 음란서적과 철학 사이에 자명한 것으로 보이는 구분은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1789년의 정신을 구현한 미라보가 10년 전에는 가장 저급한 외설서와 가장 대담한 정치논문을 썼다는 사실은 더 이상 그다지 어리둥절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자유와 난봉은 함께 연관된 것으로 보이고, 그래서 우리는 은밀한 도서목록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들이 모두 닮았음을 볼 수 있다. 일단 우리가 외투 밑에서 철학을 찾는 방법을 배운다면, 그 어떤 것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프랑스혁명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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