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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나는 애트우드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애트우드는 제인 오스틴, 샬롯 브론테처럼 내가 평생 개인적으로도 친해지지 못하고, 이를 좋아하는 사람과도 그리 책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을 듯한 작가들의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 가치만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도 여기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눈먼 암살자>를 읽어보라는 말을 들었다. 이미 목록에 들어간 작가를 굳이 부활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구성 자체가 흥미로웠던 탓에 언젠가 한 번은 읽어보기는 해야겠다고 기억해두었고, 이번 기회에 읽어보았다. 과연, 그렇게 추천해줄 만한 글이기는 했다.
기본적으로 꽤나 복잡한 구성을 띠고 있는 소설이다. 이야기의 최외곽에는 아이리스 체이스라는 노인이 자신의 가문의 몰락과 결혼 생활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회고록이 있다. 그 속에는 아이리스의 여동생 로라가 쓴, 당시의 상황들을 각색해서 써낸 로맨스 소설 <눈먼 암살자>가 있다. 그리고 <눈먼 암살자>에 나오는 남주인공, '그'는 '그녀'에게 눈먼 암살자가 나오는 외계 행성의 기묘한 문명과 몰락에 대한 판타지 소설을 들려준다. 당연하게도 내부의 글은 외부의 글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어, 판타지에는 로맨스 소설의 '그녀'에 대한 완곡한 비유나 '그녀'의 요구에 대한 수용 및 아이러니가 들어가고, 로맨스 소설은 회고록에 나오는 로라의 일화나 모습으로부터 그녀가 이 빈 시간 동안에 무엇을 했을지에 대한 보완적/대안적 설명을 만들어내 회고록의 빈 자리를 채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할 이야기가 많지만, 스포일러를 깊게 하고 싶지는 않은 탓에 줄인다.)
사실 회고록 속의 이야기는 그리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로맨스도 그렇다.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기본적으로 상류층 식 삶의 애매한 '몰락'과 거기에 부여하는 여러 가지 심리적인 의미들에서 자기 연민 이상을 느끼진 못했다. 내가 감정적으로 메마른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사실 로라도 아이리스도, 그리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가장 솔직하게 말하면, 로라의 자살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을 읽어나가며 그 예정된 운명을 얼마나 기꺼이 여겼는지.) 아마 이런 부분이 매력인 사람에게는 좋겠지만, 내게는 아니다, 확실히.
다만 그 내부의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예상보다 애트우드가 이런 판타지를 느낌 있게 잘 쓴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 흐름 자체는 그리 참신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인신공양을 포함한 도시의 괴상하게 발전된 문화와 그 몰락을 다루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덕분에 나중에 <미친 아담> 삼부작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이 삼중으로 싸인 글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도 참 매력적이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에 콧방귀를 뀌는 듯한 외부의 냉소적인 물림이란. 그리고 외부에서는 차마 표현하지 못한 진실된 감정들, 미묘한 아이러니의 은근한 표출이란.
종합적으로, 애트우드는 계속 읽어볼 만한 작가가 맞다고 생각을 바꿨다. 일전 다자이에게도 비슷한 기회를 주며 <사양>을 읽었다가 평을 그대로 뒀던 걸 감안하면 <눈먼 암살자>는 확실히 굉장히 힘 있는 소설이지 않을까. 그리고 나보다 좀 더 외부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이 책을 즐거이 읽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 사람들에겐 판타지 소설의 설정과 내용이 너무 불필요하게 냉소적이고 잔혹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