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철학적 도구인 언어를 살펴보자>
언어철학자들을 아는가? 그들은 언어적 전환을 일으킨 획기적인 철학자들이다. 자, 언어적 전환이 무엇일까? 우리 대단하신 철학자들은 보편적인 문제들을 다뤄왔다. '선은 무엇인가?', '신이란 존재하는가?', '악은 있는가?', '절대자는 있는가?', 등등...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해서 많은 위대한 철학자들은 이러한 물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중 누가 속 시원하게 격파했을까? 다들 K.O정도는 아니지만 세월이 흘러 기권패를 당한 것 처럼 보인다. 그 때 등장하신 기라성 같은 철학자 세명. 러셀, 프레게, 비트겐슈타인 이 들이 언어적 전환을 일으킨 주역들이다. 우리는 이 세명중에 비트겐슈타인을 얘기해보자.
비트겐슈타인은 러셀과 프레게에게 많은 영감을 얻었다. 언어적전환에 일등공신 비트겐슈타인. 자, 그면 언어적전환을 얘기해보자. 비트겐슈타인은 과거 선배철학자들이 다루어온 철학적 문제들은 언어혼란 때문에 야기된 문제라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언어는 인간 사유의 도구이다. 우리는 그 도구로 '선'이라든가, '보편'과 같은 개념들을 만들고 다듬는다. 각 철학자 마다 다듬는 방식이 달라서 다양한 이론들이 난무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문제에 대해 결판이 안난다. 서로서로 언어로 만든 개념들이 다르니, 틀렸다고 싸우게 된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결과물인 개념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도구인 언어에 문제를 제기한다. 여기서 무릎을 그냥 탁!
……즉 철학이란 결코 생각하는 바에 관한 것이 될 수 없고,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에 관한 것이므로 언어와 그 논리에 대한 연군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82p
후기에 등장하는 '언어게임'이라는 개념이 나올 정도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중요시 했따. 대표적으로 그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그 이유는 전기에 집필한 <논리-철학 논고>를 출판 후 그는 "철학 문제 다 해결했다. 그럼 난 이만." 하고 떠난다. 선생질하러. 그러나 자신의 이론에 문제를 발견하고 다시 돌아온다. 이 때가 후기 비트겐슈타인이다. 이 때 그의 이론은 <철학적 탐구>에서 잘 나타난다. 아-아 정말 넌 천재야, 비트겐!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1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 1,1
전기 대표작 <논고>의 첫 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사실에 대응하는 사물이 있다고 보았다. 예를들어 "방안에 강아지가 있다." 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은 내가 방안을 확인해보니 강아지가 있어서 말 한 말이다. 이 문장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거니 의미가 있다. 마치 사실에 대해 그림을 그리듯이 문장을 표현했다. 이것이 그의 그림이론이다.
저자 박병철씨는 아주 쉽게 설명한다. 철학자들의 고질병 어려운 용어 남발하기를 하지 않고, 아주 쉽게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또 책의 전반부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생애를 간략하게 설명해서 흥미를 돋게 한다. 플라톤과 칸트에 지친 독서인들은 이제 언어철학자들의 빠져봄은 어떠한가?
중간에 '논리에대한 연군일 수 밖에' 에서 연군이 무슨말이야? 연구 오타인가?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재미있게 봤는데 이거 봐야겠다
아 연구임 오타 - dc App
맥락없이 난해한 개념을 던지는 것과 테크니컬한 철학 개념을 적확하게 사용하는 건 다른데 "철학자들의 고질병"이라고 하는 걸 봐서는 두 가지를 제대로 구분하고 있는지 의문.
그건 그거고 이 책은 좋은 책이니까 추천 박는다
철학이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데 발생하는 문제라면 이때 '철학' 이라는 말 자체도 철학자들 사이에 단일하게 통일된 뜻으로 규정되지 않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말 아닐까?
누구는 철학을 형이상학으로 누구는 현실과 명제의 분석으로누구는 윤리학으로 누구는 처세술로 보는데 무엇이 진짜 절대적인 철학의 뜻이라고 규정하는 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이것이 철학이므로 이렇게 하면 해결된다' ?
마르쿠제가 '일차원적 인간'에서 비판한 말인데 이를테면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저쪽 구석에 빗자루가 놓여있다' 를 정밀하게 분석한들 우리의 삶이 나아지는게 무엇인가? 철학이 삶의 진실을 응시하고 좋은 삶, 가치있는 삶을 살게 하고 더 나아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학문이라면
가령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복지수준이 높으며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사회' 라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미래를 사유한다는게 분석철학에서 과연 가치있게 받아들여질런지? '없는 것'을 미리 생각해보고 개념을 잡아가고 실천해가는 것이 철학이 할 과제중 하나가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이 나중에 인정했듯 언어 용법의 문제는 절대 간단히 무시할 수 없다 철학자들이 대개 그렇듯 자기의 이론으로 세계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자기도취적이다 인간과 인간 사회는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분석철학이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게 해주고 그 바탕 위에서 현실을 개선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면 그정도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말 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말함으로써 이렇게 저렇게 실수도 하고 집단지성을 모아 더 나은 미래를 더듬어 가는게 낫다고 본다
어차피 언어게임이 아무리 정확하게 구사되고 소통되어도 인간의 총체적 인식에서 언어의 해상도는 매우 낮아서 언어가 촘촘한 그물처럼 짜여있어도 물은 새어나가게 마련이니까(이미지와 소리등은 언어로 완벽히 표현 할 수 없다) 여러 인식수단의 하나로서 인정되어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다른건 모르겠고 나중에 비트겐슈타인 전공자 만나서 "말할 수 없는 거에 침묵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말하자"같은 소리하면 굉장히 당황하는 얼굴을 볼 수 있을거다.
<철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논하기 이전에, 철학은 <학문>이 맞느냐? 어느 정도까지 <학문>이어야 하느냐? 에 대한 대답을 내놓아야 하고, 그걸 말하려면, <학문>은 어떤 것이고 그것을 이루는 <지식>은 무엇이냐를 말해야만 하겠죠. 그런 말함이 없이 철학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공허하다고 생각합니다.
분석철학이 20세기 초에 대두된 일은, 철학자들이 18-19세기에 걸쳐 대부분 교수사회에 편입되고 20세기에 들어서서 철학교수들이 주로 철학자로 받아들여지게 된 사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구입할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이어야만 했기 때문이죠. 그것을 우리는 흔히 <지식>이라고 부르고, 지식의 일정한 집합을 <학문>이라고 부릅니다.
철학자들은 생각합니다. 나는 내 지식을 남에게 팔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나의 말을 구입할 가치를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철학이라는 말이, 취기에 올라 쏟아졌다 취기가 가시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술집의 잡담과 다르려면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으로부터 분석철학적 접근이 태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상상입니다) 이 말은, 분석철학이 특정한 천재로 인하여 갑자기 태어나고 널리 받아들여진 측면 말고도, 그럴만한 사회적 환경이 분명 있었다는 뜻입니다.
과연 비트겐슈타인 전공자들은 참 황당하게 생각하겠죠 비트겐슈타인이 한 말의 뜻은 그게 아닌데...라고 할 수도. 하지만 어차피 철학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고(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고 또 그 전에 좋은 삶을 살아야 하니까) 언어는 미끄러지는데 굳이 '틀리지 않기', '남과의 대화에 지지않기' 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을 것 같네요
조금 틀리고 딱 맞아들지 않아도 어쨌든 분석철학늘 포함하여 여러 지식을 모아 더 좋은 삶,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게 의미있는 거라고 봅니다 저도 당시 상황이 꼭 비트겐슈타인이 아니어도 분석철학이 나올 수 있었다고 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와는 별개로 구도자와 같은 삶으로 좋은 삶의 한가지 방법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분석철학도들이 그의 철학에 충실한 것처럼 그의 삶까지 충실히 모방하려할까요? 말할수 없는 것은 그의 삶의 태도와 그 깊이가 아니었을까요? '숨결이 바람될때'의 폴 칼라니티는 '도덕적 명상보다 도덕적 실천이 낫다' 고 생각했다는데 음미할 만 합니다
철학사는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분석철학의 태동과 전개는 19 20세기의 수학의 발전과 그에따른 논리와 이성의 이상에대한 동경으로부터 출발한것 아닐까.
수학이 발전하면서 실용적, 공학적, 물리학적 필요에 의해 연구되던 수학에서 벗어나 고도로 추상적이고 순수한 수학으로 발전하게 된거지. 더 엄밀함을 추구하게 되고 수학과 논리의 근본 구조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거야. 갈루아나 리만, 칸토어. 그런 상황 속에서 힐베르트는 수학을 완전하게 만들려고 한거고, 프레게는 자연언어 서술의 애매모호함을 극복하기 위해 기호논
리를 개발하고.. 어쩌면 소쉬르와 마찬가지로 힐베르트도 프레게도 그 당시엔 구조주의를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동시에 미적분을 개발한것처럼. 그 시대에 이미 그런 사상이 등장할만한 배경이 형성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상들이 나타난게 아닌가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