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 일본 지식인에게 듣는 한일관계와 역사문제

 

동북아역사재단은 갈수록 악화되는 한일 역사 갈등을 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 중 하나로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오랜 시간 힘써 온 일본의 역사, 정치, 언론, 문화 분야 전문가 13인을 선정하여 개별 인터뷰를 하였다.

 

정치 관련 전문가는 오구라 기조, 간 히데키, 히라이와 슌지, 시라이 사토시, 기미야 다다시, 언론&문화 관련 전문가는 우에무라 다카시, 마쓰바라 가즈유키 그리고 한일 역사 문제 관련 전문가는 나카쓰카 아키라, 우쓰미 아이코, 다와라 요시후미, 와다 하루키, 기미지마 가즈히코, 미쓰하시 하로오이다.

 

인터뷰는 201810월 초 ~ 12월 초순에 걸쳐 진행하였다. 관련 외부 전문가와 함께 하였다.

역사 부분은 정재정 시립대 명예교수에게 전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언론&문화 부분은 심규선 전 동아일보대기자, 정치 부분은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인터뷰는 일본 지식인들의 답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거나 반론을 제기하기 보다는, 대체로 그들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는 방식을 취하였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실었다. 사족일 수도 있지만 이들 일본 지식인들의 의견을 동북아역사재단이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정치 전문가편

 

오구라 기조.

195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83년 도쿄대학 문학부 독일문학과 졸업 후 기업의 카피라이터로 입사하여 1988년 퇴직 후 서울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23월까지 교토대학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조교수, 준교수 역임. 2005년 한일 우정의 해 실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저서로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조성환 역, 2017, 모시는사람들) 등이 있다.

 

유학의 동기: 19876월 항쟁의 충격

1986년 무렵 아무 예비 지식도 없이 한국에 놀러 갔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마침 민주화 운동이 치열하던 시기였어요. 6월 민주항쟁을 직접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도대체 한국이란 나라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어요. 당시 일본에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서 라디오 강좌를 들었어요.

 





양기호

특별히 철학을 선택하신 이유는?

 

오구라.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시위, 투쟁과 같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을 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정치학이나 사회학도 중요하지만 한국인의 심리에 좀 더 접근해보고, 도대체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샤머니즘을 연구했습니다. 시위 방법이나 투쟁하는 모습, 구호와 같은 것들이 샤머니즘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실제로 도쿄대학의 마나베 유코라는 여성 연구자가 5.18 민주화 운동의 열사는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연구한 것이 있어요. 누군가 시위 중에 죽었을 때 거기에 사람들이 감정을 불어넣고 열사로 추대해가는 과정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였는데, 그때 마나베 선생님이 사용한 것이 샤머니즘이었습니다. 서울대 대학원 면접에서 어떤 것을 공부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샤머니즘이라고 대답했더니 교수님께서 샤머니즘에 철학이 있느냐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한국인을 알려면 유학을 공부하라고 하셨죠. 그래서 주자학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5, 10년 한다고 끝날 공부가 아니었어요. 그렇게 해서 저의 주요 연구 테마는 주자학입니다.

 

양기호

그렇다면 현실 사회와 유교는 결론적으로 어떤 관계인가요?

 

오구라

한국인들은 일본에게는 이중성이 있다고 말하죠. 혼네와 다테마에가 있다고요. 그 말은 이해가 갑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러니까요. 한편, 한국인들은 우리는 이중성이 없다고 하지만 외국인이 보기에는 이중성이 있어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양기호

어떤 부분에서 그런 이중성을 느끼시는지요?

 

오구라.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입니다만, 예를 들어 역사 문제에 대하여 회의를 할 때 한국인들은 일본이 나쁘다며 강경한 자세로 일관하면서 전혀 타협하려고 들지 않아요. 그러면 일본인들은 , 이 사람들과는 영원히 서로 화해할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밤이 되면 술자리에서 갑자기 친하게 다가옵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지금은 지금이라며 친하게 대하죠. 그런 부분이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밤의 한국인과 낮의 한국인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갑자기 달라지는 모습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이게 뭐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밤에 그렇게 친하게 지내다가도 다음날 낮에 다시 역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대는 다시 돌변합니다. 적을 대하듯이 경직된 자세로 토론하죠. 그런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일본인들은 말해요.

 

양기호

선생님은 한국인의 그러한 행동에 대해 이해하고 있나요?

 

오구라

지금은 이해합니다. 한국인들이 주자학에 근거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_만 주자학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원리 원칙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감정의 세계도 중시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일본인의 경우, 원리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은 감정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아요. 감정을 억눌러 없애버리고 말죠. 반대로 감정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원리 원칙이 없어요. 일본인은 그렇습니다만, 한국인은 원리 원칙의 세계를 잘 지키면서도 감정의 세계가 공존하는 겁니다. 문제는 그 둘 사이의 균형이죠. 낮에는 원리 원칙의 세계, 특히 역사 문제나 정치 사안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철저히 원리 원칙에 입각하면서도, 사람이 그것만으로 살 수는 없으니 감정의 세계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인들은 그것을 이중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둘 다 필요하니까 둘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한류 열풍과 혐한은 동전의 양면

 

2003년 경 한국의 이미지는 순수하다는 것과 사람들의 마음이 아름답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2005년에 한류 붐을 혐오하는 사람들, 혐한이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한국인들은 순수하지 않다.’ 등 한국인을 욕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런 식의 비난 가득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때부터 한류와 혐한, 이 두 개의 축이 일본에 계속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서로간에 접점이 없어요. 혐한 측은 한국의 안 좋은 면만 봅니다. 한류팬들은 한국의 좋은 면만 보고요.

 

양기호

최근 일본의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한국을 좋게 이야기하는 내용이나 중립적인 내용은 아예 없어요. 거의 한국에 대한 나쁜 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구라. 그것에 대해 정식으로 조사한 사람이 있습니다. 도대체 댓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봤더니, 많아 봤자 인구의 2%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 사람들이 댓글을 많이 쓰거나 퍼뜨리기 때문에, 마치 일본인 전체가 혐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과는 다르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혐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신감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혐한이라는 것은 한국인의 이런 부분이 틀렸다라고 비판하는 것인데, 물론 그런 골수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이란 곳을 잘 모르긴 해도 인터넷 정보 같은 것을 보면 뭔가 약속을 잘 안 지키거나 자기 주장만 하는 모양이야. 잘 모르겠지만 신뢰는 안 간다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래도 혐한적 기사나 코멘트를 보면 더욱 그쪽으로 기우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죠.

 

양기호

이번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응을 보면, <TV아사히>는 비교적 냉정한 태도를 보여주었지만 <후지TV>는 굉장히 공격적이었습니다. 또한 총리관저나 외무성도 상당히 반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부적으로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고 복잡하겠죠. 하지만 제가 볼 때 이것은 사실을 통째로 왜곡하는 것입니다. 마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듯한 느낌이랄까요?

 

아까도 잠깐 일본이 여유가 없어진 것 같다고 말씀드렸지만, 한국에서 무슨 말을 하면 일본은 그것을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오구라.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 일본인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중국도 그렇고, 싱가폴, 타이완, 홍콩 등의 나라가 모두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죠. 반면에 일본은 20년 이상 경제 성장이 거의 정체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일본은 풍요로운 나라라는 환상이 있었어요.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런 환상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일본은 침체되어 있어요. 일본 입장에서는 주변국들이 커지는 것이 무서운겁니다.

 

아시아에는 글로벌한 인재들이 많은데, 일본에는 글로벌한 인재들이 없어요. 예를 들어 저희 대학만해도 문부과학성으로부터 굉장히 압력을 많이 받습니다. 이를테면 개혁하라, 글로벌화 하라라는 것이죠. 일본 대학들은 보수적이라서 그것에 반대하는 대학들이 많아요.

 

오구라.

하지만 이공계 쪽에서는 일본은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일본의 오래된 대학들은 글로벌한 인재를 키우지 않아도 노벨상을 받아오니 그것으로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부과학성은 생각이 다릅니다. 무조건 인용되는 논문 수를 늘리라고 합니다. 예산도 적고 쉽지 않은 일이죠. 정부 예산은 고령자나 의료 쪽으로만 들어가고 있어요. 일본은 지금 1천조엔의 빚을 지면서까지 복지를 실시하고 있지만 아동 문제, 교육 문제, 빈곤 가정 문제까지는 관리가 안되고 있어요. 일본이 이래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양기호

앞으로 한일 관계는 구조적으로 악화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구라.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전후의 한일 관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의 기본적인 생각은 한일 관곈느 전후 70년간 마찰도 있었고 대립도 있었고 때로는 싸우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의 일본 정치가, 자민당 정치가들이 1965년 조약에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의 말은 넣지 않았지만, 시나 에쓰사부로나 오리하 마사요시 같은 사람들은 미안했다는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시 일본은 국력도 아직 그다지 충분하지 않았지만, 무상&유상 합해서 5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결론지은 것이죠. 5억 달러가 한국에서 볼 때는 적을지 몰라도, 일본 입장에서는 적은 돈이 아니었어요. 물론 일본이 한국과 먼저 관계 구축을 하려고 한 것은 공산주의를 차단하기 위한 반공의 방파제가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시 노부스케와 관련된 유착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미안했다는 마음이 당시 자민당 내의 진보 인사들, 고치카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의 정치가들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습니다.

 

양기호

선생님은 유럽과 비교해도 한일 역사 화해 사례는 매우 선진적인 모델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면에서 그렇다고 보시는지요.

 

오구라.

유럽의 역사 화해를 이야기 하자면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를 봐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전쟁을 했던 사이에요. 그런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화해가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럽이 식민지 지배를 했던 아프리카, 아시아, 중근동과는 전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의 시리아 문제라든지 이란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유럽은 사죄를 하지 않았어요. 식민지 지배가 잘못이었다는 의식이 전혀 없어요. 프랑스는 프랑코포니라고 해서 지금도 예전의 식민지를 재편성하여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어요. 거기서 핵실험까지 한다고 하니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한국에 대해서는 1990년대까지 사죄는 없었지만 우선 관계를 구축하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한국 경제를 일본에 종속시키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결과론일지 모르겠지만 일본이 경제 협력을 하고 기술 공여를 함으로써 한국이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 올 수 있었어요. 특히 경제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제 서플라이 체인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일본과 한국을 나누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상표는 삼성이지만 부품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제공하니까요. 일본이냐 한국이냐를 따지며 국가 단위의 경제를 생각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것과는 별개로 좌익 역사학자들의 역할이 컸어요. 일본에서는 1970년대 무렵부터 좌익 역사학자들이 식민지 지배는 옳지 않았다.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청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내용에 대해 연구했어요. 보수 측에서는 비판도 합니다만, 학문이니까 결과물이 쌓여서 남습니다. 그것을 시작한 것이 일본의 좌익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저는 좌익 역사학자들에게 문제점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역사를 도덕화한 나머지 잘잘못을 구분짓는 단순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이에요.

 

양기호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강제징용 문제가 겹쳐 있고, 일본은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오구라.

이것은 근대에 일본이 했던 일들을 일본인이 다시 한번 공부할 기회입니다. 한국의 판결에 따르면 1910년의 한일병합조약 자체가 불법이고 무효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일본인의 일반적인 상식에서 볼 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한편으로는 역사라는 것을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런 판결이 성립할 수도 있겠다라는 식으로 역사를 한번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의 판결을 토대로 보면 이렇게도 보일 수 있고,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저렇게도 보일 수 있다는 식으로 양측의 시각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일본인의 시야를 넓히는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