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에서 학생들에게 문예창작을 가르치던 어느 날, 김영하는 문득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예술가가 죽어가는 것을 느꼈다.
명문대 교수직, 평탄한 가정, 넉넉한 통장 잔고⋯. 손에 넣은 모든 것에 익숙해지면서 설렘에 무뎌진 순간, 작가는 모든 걸 내려놓고 아내와 함께 시칠리아로 떠났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김영하가 시칠리아를 다녀온 경험을 담은 시칠리아 여행기다.
김영하는 시칠리아로 떠나기로 결심하면서 휴대폰 요금, 인터넷 요금, 아파트 관리비, 각종 공과금 등 자신의 이름으로 얽힌 모든 것들을 끊었다. 한예종 교수직도 내려놓았다. 자신에게 얽매인 모든 것들과 단절하고 하루아침에 지구 반대편으로 훌쩍 떠나는 그의 모습이 내 눈에는 조금 기이해 보일 정도였다.
나 역시 일종의 예술을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김영하의 이런 결단력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세상에는 예술가에 관한 기이한 일화로 가득하다. 사람이 예술을 하면 기이한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 애초에 기이한 사람이 예술을 하는 걸까. 시칠리아로 떠나기 위해 김영하가 벌인 일 역시 누군가의 눈에는 충분히 기이해 보일만한 것들이다.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행과 고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나는 <여행의 이유>를 이미 재밌게 읽었던 터라 같은 작가의 여행 에세이를 또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우연히 집어든 나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그의 시칠리아 여행기에 금세 깊이 빠져들었다. 계획 없이 떠난 시칠리아 여행으로 만들어진 그의 여행기는 다음 일을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꼭 그가 쓴 소설 같았다.
김영하는 모든 걸 끊고 떠난 시칠리아에서 무얼 안고 돌아왔을까. 여행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일부분임을 밝힌 바 있는 그는 언젠가 여행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 나는 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에만 여섯 번의 전학을 갈 정도였다. 당시 나는 언제나 전학생이자 이방인이었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혼자 배낭을 꾸려서 여행을 다녔다. 여행지에서 짐을 풀고 내가 오늘 하루 이곳에서 무사할 거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면 다른 무언가로는 느낄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김영하는 내면에 있는 예술가를 되찾기 위해 시칠리아로 향했다. 시칠리아에서 그는 비로소 온전함을 느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홀린 듯이 이 책을 썼다.
김영하는 평생에 걸쳐서 다닌 여행에 비해 여행에 관한 글을 많이 쓰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그가 시칠리아 여행을 통해서는 글을 집필할 마음을 자연스럽게 가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행다운 여행은 언제나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기에.
감동의 첫참여 글이군요. 두근두근....잘 읽겠습니다.
두근두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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