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하루키의 소설 중 가장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책이 <기사단장 죽이기>일 것임. 하루키는 늘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아왔지만, 기사단장 처럼 노골적인 소설은 없었음.

난 그 이유를 하루키의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작가로서 본인 유년기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최초의 책임.

작중에서 하루키 아버지의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적인데, 하루키의 아버지는 군국주의 시절의 군인으로서 항상 마음 깊은 곳에 죄책감을 지니고 살아가신 것 같다는 언급을 했음. 중국에서의 전쟁 이후 평생 아침마다 예불을 드리며 참회하는 모습을..

하루키는 소설 쓰기를 우물에 비유한 적이 있음. 소설 쓰기는 우물과 같아서 작가의 깊은 무의식을 파고 들어가야 한다는 뜻임. 하루키는 역사의 대물림, 트라우마의 대물림을 아버지라는 그늘아래 뼈저리게 느낀 것. 우물 속의 하루키는 군국주의라는 일본의 이면을 마주하고선 (비록 자신이 겪지 않았음에도) 자신만이 써야만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음.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는 에세이 말미에 나오는 문장처럼, 하루키에게 <기사단장 죽이기>는 본인의 전작들과 일본의 과거를 상기시키고 새로운 챕터로 넘어간다는 다짐이 아닐까...

어쩌면, 조만간 하루키의 카라마조프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