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말해서 언어란 개념을 담는 기호의 그릇인데
개념이란건 대상or추상적 대상의 측면과 특성들, 그 패턴들을 인식함으로써 생겨나는거잖아. 피아제 식으로 말하면 형성되는 스케마.
문제는 어디부터는 a고 어디부터가 b인지
원자적으로 해체하기 시작할수록 오히려 언어는 더 불분명해진다는거지.
사랑이 무엇인지 상식수준에서, 일상언어 수준에서 말하는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철학적으로 정의하는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거야.
그래서 우리는 비슷한 두 개념을 구분하기가 어려워.
자연수처럼 절단할수가 없다는거지.
왜 언어를 절단하는게 어렵냐면
개념은 본질적으로 비교되면서 생성되기때문임.
개념은 순수하게 인식하는 대상의 특징만으로 형성되는게 아니고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경험적이든,선천적이든) 지식과 인식능력의 틀 안에서 다른 개념들과 관계지어져서 형성된단말이지.
근본적인부분을 생각해보면 개념은 같음과 다름의 인식이라 할수 있음.
두번째 이유는 언어를 언어로 정의하는게 어렵기때문임.
말하자면 일종의 순환논리란거지. a가 뭐냐고? a는 b다 c한것니다. c는 뭐냐고? c는 d가 e하는것이다. 이런식으로 나가는게 언어를 이용한 언어의 정의야.
언어엔 (수학의 공리같은)가장 기본이 되는 토대가 없어.
그래서 언어 언어개념을 정의하는건 순환논증이고 상당히 불완전하다는거지.
그렇기때문에 1번의 이유(개념은 관계로 형성됨) 와도 엮여서 개념이란것은 더 많은 대상과 관계될수록 분명해지고 해체될수록 불분명해지는거지.
일상언어수준에선 모두가 개념의 명확힌 의미를 알고 공유하지만
개념을 소단위로 쪼개고 해체해 분석할수록 그 의미는 애매모호해지고 불분명해지지.
개념 자체가 다른 개념들과 관계되면서 그 의미를 지니기때문에.
좀 멋내서 말하면 이렇게 표현할수 있을까. 언어는 정의하지 않을때 가장 명확해진다
왜냐면 우리는 개념을 이해할때 다른 수많은 개념들과 연결지어 이해하거든. 근데 한 개념을 이해할때 연결짓는 다른 개념과 이해들은 수천개가 넘을거야. 아마 그중 대부분은 무의식중에 있을거같지만.
개념을 언어로 명시적으로 정의하려고 시도할때, 우리는 개념을 절단하려고 시도해. 개념은 수많은 다른 개념들과 얽히고 섥힌 그물망을 만들어. 그렇기때문에 이 개념은 구름처럼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형태와 존재는 명확해.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이 개념의 핵심을 디른 개념들로부터 절단하여 추출해 내려고 하는거야.
그순간부터 이 개념은 다른 개념들과의 관계를 잃어. 왜냐면 우리는 명확하게 개념의 핵심을 이해하려고 개념을 직시할때, 무의식 속의 수많은 연결들을 잃게되거든. 명확하게 분석하려다보니, 개념과 관계된 핵심적(이라고 생각되는) 몇몇 중요 개념들만 떠올려 관계지을뿐, 다른 수많은 개념과의 관계들은 놓쳐버리는거지.
비유하자면 한 사람의 인생을 설명하려고 하는것과 같아. 어떤 사람의 삶이란 그 사람이 겪고 경험해 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물들, 인간들과 관계맺어 만들어진거지. 그렇기때문에 아주 사소한 관계조차도 모두 중요해. 무수히 많은 사소한 관계들이 얽힌 망이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거지. 그러나 우리가 말로 사람의 인생을 설명하려 사도하는 순간 우리는 그런 사소한 연결
들은 잊어버리고 몇가지 키워드만을 떠올릴뿐이야. 경기고, 서울대, 사시차석, 검사, 변호사, ㅇㅇ아빠, ㅁㅁ남편, ㄷㄷ아들...얼마나 형편없는 서술이냐.
말하자면 사람의 인생이 말로는 다 표현할수 없는 무수히 많은 연결(정보)들로 구성되듯, 개념도 무수히 많은 다른 개념들과의 연결을 통해 형성된다는거지. 그렇기때문에 개념은 일상적일때 가장 분명하고, 정의될수록 경계가 불분명해지는거지. 정의하는 과정에서 연결은 망각되고 한정된 언어들로만 설명되게 되니까.
어떤 사람의 인생을 제대로 알려면 그 사람이 겪어온 시간을 그대로 겪는게 가장 좋은 방법일거야. 마찬가지로 개념도 그 개념이 형성되기 위해 관계하는 디른 개념들을 자유롭게 느끼는게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싶어. 언어를 언어로 정의하려 하지 말고, 자유로운 언어생활과 일상 속에서 느낀 그 인상대로 파악하라는거지.
그래서 난 지나친 원자적 언어 분석은 오히려 문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거라 생각해. 일상언어의 명확함과 철학적 언어의 엄격함 사이에서 적당한 지점이 학술 언어가 위치할 자리라고 생각.
해석학적 언어관.
잘 읽었습니다만.. 독서갤러리에 어울리는 글은 아닌 것 같네요 ^^ 철학글은 철학갤러리로, 독서갤에는 독서글을 올려봅시다. 철학적 발언을 하는 것은 좋은데, 책을 읽은 내용을 명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지는 독서갤의 탄생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동의하겠죠)
위의 말은 저의 아주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그건 그렇고, 위 글에 대한 저의 감상을 조금 말하겠습니다. 저는 일상적으로도, 언어로 표현하는 수많은 개념들은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개념을 만들어내는 개개인이 스스로 분명하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고, 철학적 탐구는 그러한 불분명함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큰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철학 어렵다
실제로는 그 뜻이 분명하지 않은 언어를 실생활에서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나는 a라는 말을 b라는 뜻으로 말했는데, 너는 왜 b가 아닌 c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느냐? 라는 충돌이 왕왕 있다는 점을 잘 생각해보시면 되겠습니다. 나에게는 b라는 뜻이 너무나 분명한데, 왜 너는 그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라는 불만을 가진 경험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누구나 있습니다. 정말로 일상생활에서도 어떤 언어의 뜻이 분명하다면, 이러한 문제는 생겨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한마디로 언어와 언어가 담은 개념은, 우리의 흔한 기대와는 달리 많은 경우, 분명하지도 않고 분명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굳이 어떤 개념에 대한 철학적 정의 과정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말이죠.
톨님이 말한거 누가 주장한거랑 비슷한데 누구더라 - dc App
오 맞말. 내가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건데 좀 더 확실하게 정리해 주네.
나는 언어를 정의하는 과정이 '한 언어를 한 사람이라고 가정 했을 때 그의 사지를 찢고 다시 이어붙이는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되면 분명 그의 구성요소는 그의 시체 속에 다 들어있지만 그의 생명을 유지해 주던 모든 흐름은 전부 끊기고 만 거지.
갤러리주제에서 벗어난 글인건 맞음 그냥 뜬금없이 싸갈긴건 아니고 밑에 비트겐슈타인 책 감상문 글에 달린 댓글 보고서 든 생각을 적은건데 밑도끝도없이 글로 써서그런듯 댓글로달걸..
물론 일상속에서 사람들끼리 가지는 개념이 일치하지 않을때가 있긴 하죠. 근데 이건 서로가 가진 개념이 일치하느냐의 문제이지, 각자가 가진 개념이 명확하고 분명하냐,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하냐의 문제랑은 좀 다른 문제라 생각함. 각자가 가진 개념이 명확하긴 한데, 그 의미가 조금 다를수도 있는거죠.
말하자면 제가 이 글에서 설명한것은 개념이 담는 의미의 핵심이 얼마나 분명하게 정의될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댓글 달아주신 일상에서의 충돌 문제는 언어의 사회적 측면에서의 문제거든요.
근데 저는 사회적 사용에서도, '언어를 통한 정의'보다는 '관계에대한 무의식적 인식'이 더 언어를 정확하게 만들거라고 생각해요. 말씀하신대로 서로가 가진 개념이 다소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불일치를 인식하고 어느 한쪽(혹은 둘 다) 의 개념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개념은 좀 더 강력해지고 사용자간의 차이도 줄어들게되는거죠.
말하자면 우리가 어떤 새 낱말이나 개념을 배울때, 그것을 몇마디 말로 정의한 언어를 통해 파악하는것보단 남들이 그 개념과 낱말을 사용하는 방식, 사회적 용법을 보고 자연스레 개념을 형성하는게 더 강력한 연결망을 구축할거란거죠. 왜냐면 언어적 정의는 명시적인 몇가지 언어만이 관계되지만, 실제 발화는 맥락과 상황을 포함한 수많은 다른 요소들이 관계되니까.
댓글을 달고 나서 제 말에 대한 반론을 아까 생각해보았는데, 정확히 그 지점을 지적하셨네요. 저도 반론에 수긍합니다. 그런데, 어떤 개념이 <분명>하다는게 대체 뭘까요? 나에게 어떤 개념이 또렷하게 다가오는 것에 불과한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어떤 개념이 분명한 것은 내가 겪었던 감각적 경험의 인상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과 똑같은 걸까요? 우리는 어떤 개념이 나에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정확히 이 개념은 나에게 주관적으로 또렷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라고 기대하고 있는 걸까요? 이것을 생각해보았는데,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라 그만두었습니다. 나는 <분명>하다는 말도 실은 잘 모르는게 아닐까 하고 말이죠..
작은언덕 ㅋ ㅋㅋ
나에게 어떤 개념이 또렷한데, 그 또렷함이 남에게 전달될 수 없다면, 즉 서로의 대화 혹은 다른 시도를 통하여, 남도 내가 느끼는 만큼 그 개념을 또렷하게 느끼게 만들지 못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은 <분명하다>라고 평가해도 되는 걸까요? (순수한 의문입니다) 사람 사이의 소통의 불일치는 개념의 분명성과는 완전히 무관한 걸까요? 특히 해소할 수 없는 소통의 불일치를 낳는 개념을 우리는 분명하다고 평가해도 되는 걸까요?
죽어 그냥 이 열등언덕아 ㅋㅋ
ㄴ누군가가 말하기를, 누가 죽었다고 해서 좀 걱정했었는데, 이렇게라도 살아있으니 반갑다(?)는 생각이 드네요. 소문의 본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반갑습니다 ^^ 그렇게라도 해서 사는게 나은 거죠. 앞으로도 죽지 말고 잘 살아가세요. (만약 그 사람이라면)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는 병먹금이라는 단어를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병먹금이 안되서 도갤이 망하는 바람에, 강제로 관리자가 병먹금을 시키는 독갤이 생겼죠. 이 댓글을 뻘글이므로, 삭제하여도 좋습니다.
분명함이란 존재함과 구분됨이라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요. 개념이 첫째론 심상속에 존재해야하고, 둘째론 다른 개념들과는 구분되어 독립되어야합니다. 저는 개념이 세계를 파악한 이미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세계는 절단하기 힘든 연속이죠. 그 세계에서 '핵심' 이라 생각되는 패턴을 다른 비핵심들로부터 구분한게 개념이 아닌가 합니다.
ㄴ너학교 어디나왔어?
저말인가요?
네
대학말인가요? 대학은 못나왔는데..
분명함이란 존재함과 구분됨이라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요. -> 위에 다른 부분에서, <한 개념은 다른 개념들과 연결되면서 분명해지고, 절단되면서 그렇지 못하게 된다>고 하셨는데, 방금 댓글은 <다른 개념과 구분되어 독립된 개념이 분명하다>고 하는데요. 어떤 개념이 다른 개념과 독립적으로 구분되는 것과, 절단되는 것의 차이는 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만..
본문과 이전 댓글에서는, 한 개념이 다른 개념들과 연결되어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개념은 다른 경우 절단되거나 구분되기도 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한 개념이 다른 개념과 연결되거나 분리되는 정도의 차이를 우리는 어떤 용어로 평가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그런 경우 흔히 <분명하다> 혹은 <애매모호하다>라는 식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요?
제가 실수했네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존재하는 개념의 분명함과, 이해되고 표현될때의 분명함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단어를 사용해 말한것 같습니다.
<한 개념은 다른 개념들과 연결되면서 분명해지고> 에서의 분명이 전자의 분명으로, <정의를 위해 절단되고 해체되어 분명해지는> 에서의 분명함은 후자의 분명함이요.
방금 댓글에 대한 부연설명 - 한 개념이 다른 개념과 연결되는 경우와 분리되는 경우가 각각 존재한다면, 우리는 개념이 존재하는 형태에 관하여, 두 가지 경우의 중간 형태도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습니다. 즉, 한 개념이 다른 개념과 분리되는 정도는 두 가지 극단이 아닌, 연속적인 형태로 존재할 것이고, 우리는 그 분리되는 정도를 각각 평가할 별도의 개념이 필요해진다는 거지요. 우리는 이 별도의 개념을 <분명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는 개념을 존재들의 관계로 파악했어요. 제가 이전에 썼던 글을 보시면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한것인지 알수있을거에요 아마도...이전에 썼던 닉은 ㅅㅅㄴ요. 비유하자면 개념은 전자같은것이라 할까요. 정확하게 관찰하려 할수록 오히려 불분명해지는. 한 전자 단일 입자의 상태를 관찰하려는 시도가 언어에대한 정의라면, 전자의 운동을 통계적으로 이해하고 구름 비슷한 형
태로 파악해 만족하는게 일상에서의 개념 이해라 할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죠. 분명함이란 개념은 그런 의미죠.
말하자면 우리가 언어를 분석, 해체, 정의하려 하지 않고, 개인적 경험을 통한 개념형성과 사회적 언어생활을 통한 조정으로 가지게 된 개념 그대로 둘때 그 개념은 우리 마음속에서 제법 분명해요. 그러나 그것을 언어적으로 분석하고 정의해 표현하려 할때 오히려 불분명해지는거죠
이건 동어반복이네요 이소리하려던게아니고
개념은 파악하고자 하는 대상이 다른대상과 가지는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고 봐요. 가장 기초에는 존재함에대한 인식이 있고 그 다음인 같음과 다름에대한 인식이 있죠. 선이란 개념은 악이란 개념과 관계될때만 의미있고, 본질적으로 그렇게 관계되어 형성된 개념이란거죠. 선과 악은 매우 명확한 '대비개념' 이지만, 모든 개념이 본질적으론 이런 관계를 가지고 있을거란거에
인간이 자신의 심상 속에 갖고 있는 개념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형성됩니다. 하나는 각 개인의 직접적 감각자료들이 합성되어 형성된 개념과, 각 개인이 심상에 입력한 기술구를 모아 형성된 개념이 있습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느낌을 모아 생겨난 관념이 있고, 들은 말을 모아 생겨난 관념이 있다는 겁니다. 이 두 가지 경우, 어떤 개념이 <분명하다>는 평가는 각각 다르게 적용되어야겠지요. 본문과 댓글에서 말씀하신 주장들은 아마 이런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저도 잘 모르는 것을 길게 말하려다 보니 엉망이므로, 이만 줄이겠습니다. (여태까지의 댓글은 올린 글을 반대하려는 의도로 작성된 것이 아닙니다)
요 비록 우리는 느끼진 못하지만. 그렇기때문에 개념은 관계를를 가짐으로써 독립하게 되는 역설이 생겨나는거죠. 말하자면, 규칙적이지 않은 수많은 선들이 모여서 어떤 형태를 이루게 될때, 그 형태의 경계는 선의 시점에서 보면 불분명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제법 어느정도 분명한 경계를 갖추고 있다는거죠.
그렇습니다 이렇게 서로 대화하면서 진리를 더듬어가는 것이 진짜 변증법 아닐까요? 누군가는 '모르는 놈들이 뭘 서로 물어보고 대답하나?' 하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바로 이런 것이 진짜 철학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론과 개념의 도구로 세계를 환원해서 그 틀로만 바라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삶의 태도와 괴리된 '철학사와 철학자들에 관한 훈고학'이 철학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를 모두 한 이론으로 해석하고 설명할 길이 없기에 모든 철학에는 훌륭한 부분도,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ㅅㅅㄴ 님이라면 따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옛말에 하루종일 혼자 고민하며 생각하는 것보다 잠깐 배우는 것이 더 나았다는 말이 있죠. 아무런 책도 읽지 않고 이런 생각을 하셨다면 머리가 좋은 분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근본적인 것을 느끼며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은 대부분, 앞서간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깊고 넓게 하였다는 걸, 책을 읽으면 알게 됩니다. 어떤 근본적인 것을 깊이 고민하고 그것을 자주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그럴 시간에 책을 더 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체계적으로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책을 읽으시면 앞으로 많이 발전하실 거 같네요.. 앞으로 더 훌륭한 사람 되시길 빕니다 ^^
하지만 여러 철학의 좋은 점, 지금 시대에 맞는 점들을 모아 좀 더 좋은 삶,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철학을 각자 세워가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님이 지금 나누었던 대화는 철학책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개념을 추적하고 그 개념을 굴리는 철학자와 나의 머리 속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 같은 것입니다. 저같은 하수와 백날 대련해봤자 고수가 되지는 않아요. 잘 싸우고 싶으면 고수와도 대련을 해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화를 좋아하고, 그 취미를 더 고도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결국 철학책 읽기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책 열심히 읽으세요 ^^
만약, 철학책 읽기가 단순히 지식의 수집에 불과하다고 여태까지 여기셨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신 겁니다. 제 말을 한 귀로 흘리지 말고, 앞으로 철학책을 붙들고 꼼꼼하게 읽으면서, 책 속의 철학자와 개념을 무기로 하는 전투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ㄴ주접을떠네 ㅋ 그런놈이 뇌과학이 프로이트 꿈이론 허구라고 증명했다고 나불대냐
빙신 꼴통
심갤 정신병자 새끼 아까부터 오지게 알짱대네. 개지랄 하지말고 꺼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