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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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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에 따라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의 틀이 무너지면서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자들 뿐만 아니라 별볼일 없는 신분으로 자유가 제약되어 있던 자들도 자유를 누리게 된다. 불과 300년 전에 태어났다면 성도 없이 아무렇게나 불려지는 이름을 가지고, 마당쓸고 나무패고 풀떼기에 고봉밥만 먹고 있었을테지만, 지금은 책도 읽고 감히 내 생각을 이렇게 글로 표현하고 있다. 자유의 신성함이여!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좋아졌다한들 여전히 자유를 행사하는데 있어 어떤 방해도 배제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운명에서 아주 자유로울 순 없다. 우리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갖가지 변수들이 우리에게 운명이란 이름으로 다가오며 자유의 완전한 실현을 누리는 것을 방해한다. 하지만, 그 운명을 마주했을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인간의 모습에서 더 근원적 모습의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오히려 이 통제불가능한 요소로 인해 자유는 더 극적으로 다가오며, 오히려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아로새긴다. 가령,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지가 마비되는 운명이 닥친다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그 운명에 따라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이냐, 이 태도에 대한 자유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순수한 자유의 영역인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굉장히 심각하면서도 새로운 위협에 눈이 뜨인다. 바로 자유의지라는 것은 없다는 주장이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자유라는 것이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그런 의문과 회의감에 휩싸인 채로 이 책을 읽기로 '선택'했다.



과학계에서는 자유의지를 부정한다. 신경과학에서는 모든 결심은 무의식적이기에 자유로운 결심이 불가능하며, 사회심리학에서는 의식되지 않은 요인들이 우리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서 자유의지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고 한다.



신경과학에서는 우리의 결심이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닌지? 결심이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후 우리는 우리의 결심이라 가장된 무엇인가를 뒤늦게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자유롭게 결심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결심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결심이 이루어진다면 결심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사회심리학에서 주장하기를 우리의 행위는 의식적으로 알아차릴 수 없는 요인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기 때문에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 등이 우리가 하는 일을 지시한다. 따라서, 자유로운 선택 또는 자유의지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은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실험의 종류를 설명하고 자유의지 존재가능성에 불을 밝힌다.



책에는 다양한 주장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험이 있지만, 이걸 다 쓴다면 저자는 뭘먹고 살겠으며, 읽는 사람도 필히 지루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각 장의 신경과학계와 사회심리학계의 대표적 주장들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사실 이런식의 감상은 좋아하진 않지만 실험을 소개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나도 정리해서 기억할겸 정리 끼적거려본다.)



신경과학의 위협



벤저민 리벳의 실험 ㅡ 결심(일상적 의미론 결심한다해도 실제 행위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곤 몇달 째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만 읽고 있는 본인이 그 예이다.  하지만, 앞으로 사용하는 결심이란 단어는 실제 행위로 나아가도록 하는 결심이며, 행위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결심을 의미한다.)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며, 무의식적으로 하는 결정은 결코 자유의지를 거치는 것이 아니므로 결심에 있어 자유의지의 역할은 없으며, 실제 인간행동은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험 내용

손목을 구부리고 싶을 때 손목을 구부리고싶은 충동이나 의도를 의식한 때가 언제인지를 보고하는 실험인데, 그 의도나 충동을 느낄때 2.5초의 시간 동안 점이 시계 한바퀴를 도는 리벳시계를 보고 의식할때의 점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고하며 그 값의 의미를 도출하는 실험.


개인이 의도적 동작 수행이전에 두뇌 활성화가 점차적으로 증가. 이 경우 EEG(두뇌 속의 뉴런들의 활동량을 측정하는 장치)를 사용해 두뇌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데 이렇게 증가한 두뇌활동을 준비전위(RP)라 한다.


실험참가자들에게 미리 손목을 구부릴 계획을 세우지 말고 저절로 내키는대로 해야한다는 것을 주지시켰을 때 준비전위의 발생을 읽을 수 있는 유의미한 EEG결과를 얻었는데, 이는 근육 급활성화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시점보다 550밀리초가 앞섰다.


결국 이 실험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 손목을 구부리자는 결심은 리벳의 가정하에 두뇌활동(rp)이 시작될 때 생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의 결심을 처음으로 의식했다고 보고하는 평균 시점은 실제로는 두뇌활동이 시작되는 시점이 아니라 근육운동이 실제로 행해지는 약 0.5초 전에 일어났다.



결론

사람들은 손목을 구부리겠다는 결심을 두뇌활동이 일어난 이후에야 비로소 의식한다. 그리고 리벳은 자유의지에 의한 결심은 의식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실제 의식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행동 이전에야 인식하는 것이라면 자유의지의 개입은 없다고 생각했다



반론

1. 왜 EEG를 통해 두뇌활동 수치가 증가하는 시점을 결심한 시점으로 봐야하는가? 결심은 두뇌활동 수치 증가시점 이전에 이후에 발생할 수도 있다. 두뇌활동 수치 증가시점 = 결심시점이 아니다.


2. 리벳의 실험은 실제 행동이 일어난 경우에 한해 2초 동안의 두뇌활동을 측정한다. 따라서 손목을 구부리지 않은 사람의 데이터는 수집되지 않는다. 손목을 구부리지 않은 사람의 뇌에서도 손목을 구부린 사람과 동일한 두뇌활동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만약 구부리지 않은 사람의 뇌에서도 구부린 사람의 두뇌활동과 동일한 두뇌활동이 일어났다면 그 두뇌활동이 손목을 구부려야겠다는 의욕과, 손목을 구부린 것 행위의 충분한 원인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리벳의 실험에서 전제하는 두뇌활동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두뇌활동과 관련한 리벳의 자유의지부정은 타당하지 못하다.


3. 모든 결심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리벳의 일반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 무엇을 할지 의식적 추론을 하는 경우엔 의식적인 결심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책을 살 때를 가정해보자. 독붕이들이 책을 무의식적으로 아무책이나 무작위로 사지는 않지 않는가? 한정된 예산 안에서 구입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을 때 김초엽류의 베셀류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 피터린치의 투자서적, 노문상 수상자의 작품 중 어떤 것을 살지에 대해 자신의 취향과 최근 관심사,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는데 도움이 될만한 서적을 의식적으로 숙고한 끝에 '구매'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들은 설령 결정론에 의한 자유의지의 부정에 해당하는 사안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4. 결심을 실제로 내린 이후에야 우리가 결심을 인식한다는 것 역시 입증되지 않았다. (결심이 언제 이루어지는지가 정확히 입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스러운 결론) 설령 이것이 참이라 하더라도 실제 결심의 시기와 인식하는 시기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것이 결심을 위한 의식이 작용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시차가 있더라도 의식이 개입되었을 수 있고, 그렇다면 자유의지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사회심리학의 습격


사회심리학자 웨그너의 실험 ㅡ 의식적 의도가 그에 상응하는 행위를 야기하는 원인들 중 하나가 결코 아니며, 이것은 자유의지를 배격한다. (독붕이가 자기의 취향에 따라 자유의지와 과학이란 책을 구매한다고 가정해보자. 자유의지와 과학의 구매를 의욕하는 것은 사실 또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이다. 자유의지가 실제로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 글을 보고 궁금증이 일어나 살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궁금증은 지적 욕구에 따른 것일 수 있고, 지적 욕구는 어쩌면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유전정보에 입력된 것일수도 있다. 이 모든 점을 종합해본다면 자유의지와 과학을 사려고 의욕한 것은 사실 수많은 원인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근거
  
1. 리벳의 실험

2. 자동운동장치에 의한 실험

실험 내용

자동운동기록장치 위에 유리판을 깔고 거기에 실험 참가자가 손을 얹는다. 거기에 자동으로 소리를 내며 박자를 세주는 장치를 작동시키면 실험 참가자는 무의식적으로 미세하게 박자에 맞춰 손이 움직인다. 그리고 어떤 것을 암시하고 떠올리게 하면 그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해당 물체의 방향으로 손을 움직인다.


3. 촉진된 의사소통 기술(의사소통장애자를 돕는 기술)의 실험

실험내용
  
의사소통기술의 훈련된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타이핑하고 싶은 문장을 완성하도록 그저 키보드의 키를 누르는 것만을 돕도록 한다. 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들은 장애자들의 타이핑을 조종하고 있었다.


4. 사용행동의 예

전두엽에서 일정손상이 발생하면 자극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사용행동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이런 손상을 입은 자에게 안경을 쥐어주면 자동적으로 착용한다는 것이다.


결론
  
인간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의도하지 않은 행위를 수행한다. 자동적 행위를 할때 사람들은 일정한 종류의 실수를 하며 이 실수는 곧 자유의지가 행위에 개입되지 않음을 증명한다. 일반적으로 일상에선 의식적 행위가 발생한다. 그리고 예외적으로 자동적 행위가 발생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일부 의식적 행위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모든 행동은 자동적 행위에 의한 것이며 여기엔 의도나 의식이 개입되지 않으므로 자유의지가 필수적이라고 간주하는 일은 결코 발생할 수 없다.


반론

행동은 의식적 계획을 반드시 동반하지는 않는다. 말그대로 무의식적으로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 행동이 존재함을 근거로 이를 인간 행동 전반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무리다.



우리의 행위가 의식적 이유 아닌 다른 것들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하는 실험(요 실험들은 대단히 유명함)


뉴욕시의 방관자 실험

실험내용
  
칼에 찔린 사람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음에도 그가 칼에 찔리지 않도록 돕거나 신고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례에 착안해, 실험 참가자에게 삶에 관한 문제를 대화하도록함으로써 각자 방에 한 명씩 두고 마이크로폰으로 각 1명, 2명, 5명과 대화중인 것으로 여기도록 암시하고 대화 상대방 중 1인이 도움을 요청했을때 자신의 방에서 벗어나 돕는 비율을 관찰한 실험이다.
  
결과

자기가 1명과 대화한다고 믿은 사람의 도움비율 85%
자기가 2명과 대화한다고 믿은 사람의 도움비율 62%
자기가 5명과 대화한다고 믿은 사람의 도움비율 31%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감옥실험

실험내용

수감자역과 간수역을 맡게하고 2주 동안 그들의 주어진 상황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관찰하여 행동변화를 지켜보는 실험

결과

간수들은 3유형으로 나뉜다.
엄근진, 공정한 유형
죄수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유형
학대마니아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실험

실험내용

실험 참가자들에게 선생역을 맡기고 전기의자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오답을 말하면 전기의 강도를 조정하여 전류를 흐르게 하는 실험. 실험 참가자들이 망설인다면 실험 수행자가 개입해 전류의 강도를 올리도록 심적 압박을 준다.


결론

그리고 40명중 26명이 학생에게 최고강도의 전류를 선사했다.


이 실험들의 총 결론

이런 실험들을 통해 인간은 행동에 있어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처해있는 상황과 그 상황에 따른 무의식적 자동행위 유발에 의해 이루어진다.


반론


1. 세계무역센터를 테러한 사건 이후 테러의 일환으로 테러범들에게 항공기 내에서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반항하다 테러범들의 목적에 이르지 못하고 추락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등의 사례로 보아 주어진 상황에 따르지 않고 다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


2. 방관자실험에서도, 감옥 실험에서도, 권위복종실험에서도 모든 실험 참가자들이 상황에 순응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실험들의 결론으로 도출되는 일반화가 가능하려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행동했어야 할 것인데, 자유의지에 따라 남을 돕는 사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자유의지가 없다는 입증을 해내지 못했음에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여전히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유의지란 단어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서로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의 자유의지는 너무나도 기준이 높다.



자유의지의 의미를 가장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방법은 현실에 접목하여 도덕적 책임과 연관짓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있으면 그로 인한 행동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있는 것이고 비난가능성이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일반적 범위의 자유의지는 온전한 자유의지, 야심찬 자유의지 두 종류다. 온전한 자유의지란 도가 지나친 강제하에 놓여있지 않다면 정보에 근거해 합리적 결심을 할 수 있고, 그러한 결심에 기초하여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을, 야심찬 자유의지란 그에 더해 자연법칙과 양립가능한 대안적 결심들이 자유의지를 지닌 행위자에게 열려있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욕망을 비우는 불교 서적을 구매할지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니체의 서적을 구매할지 동일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선택이 가능한가?)



야심찬 자유의지가 입증되기 위해서는 심오한 열려있음(deep openness) 상태가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느낌만으론 구별이 불가능하며 단지 그 존재에 대한 근거로만 밝힐 수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미립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인과적 결정은 비결정론적이고 확률적으로 발생한다. 인간 두뇌를 구성하는 뉴런들을 이루는 미립자들의 비결정론적 운동에 따라 의식이 형성되는지는 확실히 밝혀진게 없지만, 야심찬 자유의지가 존재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고 본다. 또한, 시간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자체로 자유의지의 존재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며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한다.



과학적으로 자유의지의 존재근거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바, 확실히 자유의지의 존재를 입증할 순 없지만 현재 자유의지에 대한 부정에 대한 과학계의 입증은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여전히 자유의지의 존재의 가능성은 열려있다는게 저자의 최종적인 주장이고, 철학적, 과학적 방법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주장으로 보였다.



이 책을 읽고 과학적으로 자유의지가 무너진 것은 아님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자유의지와 과학에 등장한 과학적 실험들에 의거한 논증들로는 자유의지의 벽을 무너뜨리긴 어려워 보였다. 차라리 이전에 읽었던 철학논쟁의 결정론이 훨씬 위협적으로 보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유의지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 숙고해봄으로써 지적 성장을 얻기도 했지만 왜 사람들이 그토록 종교같은 무엇인가에 대해 열광하는지에 대한 심리에 대해서도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가고 약간의 통찰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겐 자유가 그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