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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고



아내의 오랜 친구인 맹인이 집에 오기로 한다. 남편은 그에 대해 알지도 못하며 미디어를 통해 본 맹인에 대한 선입견까지 있다. 소심하고 위축되어 있는, 남에게 도움 받아야하는 이들로 생각한다. 첫째로 그가 드는 감정은 '불편함' 이다. 이 불편함이 생기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며 접촉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 그가 드는 감정은 '질투심'이다. 정기적으로 일상 내용을 담은 녹음 테이프를 주고 받는 사이인 맹인과 아내는 내적 친밀감이 깊어보인다. 그러니 '맹인'은 남편에게 반갑지 않은 불청객인 것이다.

그 다음 드는 감정은 '약간 놀람'이다. 마침내 맹인이 방문하자 남편은 자신이 예상한 것과 다른 그의 외양과 행동에 놀란다. 맹인은 건장했으며, 알아서 잘도 줄 담배를 피는 마초 이미지다. 선입견이 깨지자 '흥미'가 생긴다. 남편이 같이 위드를 피우자고 권한고 맹인은 한번도 피워보지 않았지만 남자답게 흔쾌히 수락한다. 남편의 불편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소파에서 잠이 든 아내의 옷이 흘러내려 허벅지가 보이자 옷을 덮으려던 남편이 옆에 있는 사람이 '맹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냥 내버려둔다. 물론 '맹인'이라서 내버려둔 것도 맞지만 그의 불편한 마음과 경계심이 허물어지자 '질투심'도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까지의 감정 변화를 통해 불청객이 함께 할 만한 손님 정도로 변한다. 이정도만 해도 훈훈하게 끝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감정 변화가 한번 더 일어난다. 맹인과 같이 티비를 보던 남편은 대성당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남편은 '대성당'의 이미지를 온전히 맹인에게 설명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같이 위드를 피우고 경계심이 허물어졌지만 자신과 맹인은 역시 다르다는 걸 실감한 것이다. 그런데 맹인이 갑자기 대성당을 같이 그려보자고 한다. 남편은 종이와 펜을 가져온다. 이때부터 약간의 흥분감이 생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남편과 맹인은 손을 맞잡고 그림을 그린다. 여기서부터 감정은 극적으로 변한다.

이 남편의 흥분감은 어떤 기대를 통해 일어난 것이다. 그 기대는 바로 자신이 생각한 대성당의 이미지를 온전히 맹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된다는 것은 맹인과 자신이 이미지적으로는 소통할 수 없다는 벽이 허물어진다는 얘기가 된다.

눈을 감고 불청객이었던 맹인과 손을 맞잡고 그와 소통하기 위해 대성당을 그리는 것에 완전히 몰입한 남편의 감정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으며 남편은 마침내 대성당을 다그린다. 맹인은 남편이 상상한 대성당의 이미지를 느꼈으며 전달받았다. 남편도 눈을 감은채로 그 이미지를 느낀다. 마치 맹인이 된 것처럼 그도 심상화를 그리는 듯하다. 진짜 '유대감'이 생긴 것이다.


+


수록 된 다른 소설들도 재밌었지만 대성당은 정말 묵직하네요..

희망적이기도 하고 의미도 깊습니다. 

짧은 글 안에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담아내고 일상의 순간을 

디테일하게 포착하는 것도 작가로서 멋졌어요.


대성당 말고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도 인상 깊었습니다.

스릴러+힐링 물이라니...덤덤하게 장르 혼합물을 내놓은 느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