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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복수극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복수가 또다른 증오를 낳고, 그렇게 다시 복수가 시작되는 끝없는 증오의 굴레이다.


그런데 정반대로 이 작품은, 증오가 아닌 자신의 의리로 인해 죽음으로 치닫는 우애의 굴레를 보여준다.


조씨 일가가 도안고에 의해 학살당하고, 그 과정에서 한 명의 아이만을 겨우 살려 구출하는 과정에서, 작품은 수많은 희생자들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한궐의 예이다. 한궐은 원래 도안고의 부하로 조씨고아가 도안고의 감시망을 탈출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지만, 도안고의 잔학함에 질려 조씨 일가를 도우려는 의사 정영을 그냥 보내주려 한다.


그런데 정영은 가려다 다시 한궐 앞에 엎드린다. "내가 가면 사람들을 불러 나를 체포하게 할 것 아니냐, 차라리 지금 잡아라"라고 하면서.


그러니까 정영은 한궐이 그저 죄책감을 덜기 위해 자신이 직접 잡지만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결국 한궐은 자신의 의를 증명하기 위해 확실하게 조씨 일가를 돕는다. 스스로 나무에 머리를 찧어 죽은 것이다.


이와 같은 장면을 작가가 1막을 할애하여 보여준 것은 중요하다. 작가에게 의리나 양심은 그냥 내가 편한 정도로만 발휘하고 관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공손저구 같은 희생자는 자신의 이런 처지에 불만을 품는 모습도 보이지만, 그도 이미 빠져나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조씨고아는 우애의 굴레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정의감이 동해 불의에 맞서고자 하는 순간, 당신은 거기에 다시는 발을 뺄 수 없으며 연루된 이상 끝까지 가야만 한다. 질투나 분노 같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도덕적 정동이 빠트리는 운명의 비극이 조씨고아에서는 나타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이 희곡의 결말부이다. 보통 원나라 잡극은 4막으로 기승전결을 이루는데, 이 희곡은 독특하게 한 막이 더해져 있다. 5막은 당연히 조씨고아가 장성하여 도안고를 복수하는 내용이고, 중요한 건 4막이다.



4막에서 정영은 끝까지 살아남아 장성한 고아에게 조씨 일가와 그들을 돕다 살해당한 희생자들의 역사를 들려주며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알려준다. 아예 따로 순교자들의 그림까지 그려놓고선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때 그 순교자들은 신화화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예컨대 한궐이 본래 자결할 생각은 없었다가 정영의 의심으로 인해 죽게 된 것, 공손저구라는 이는 원래 중간에 정영을 폭로할까 고민하기도 했었다는 것은 빠지고, 극중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더 잔인하고 자극적인 묘사가 덧대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한 최고의 희생일 것이다. 그들은 이제 조씨 일가를 벗어난, 자기 독자적인 삶으로서 기억되지 않는다. 이 의협들은, 이제 완전히 "조씨고아의 복수"라는, 하나의 신화를 완성하는 신화적 존재들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씨고아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종류의 비정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곧 현실의 비정함이 아닌, 이상의 비정함을 말이다. 보다 더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인물들의 추구는 스스로를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철저히 죽이고, 자신을 그 길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만들고 나서야 가능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조씨고아가 그런 이상에 대한 비판적 물음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희곡의 결말은 분명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만, 그 대단원을 향해 가는 과정이 부단히 피를 쏟는 과정이어야 함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