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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든 영화든, 젊은이의 성장을 그리는 작품에는 빠지지 않는 클리셰가 하나 있다.
주인공의 성장을 돕는 연장자의 존재다.
그는 주인공보다 먼저 세상을 겪은 존재로,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시각을 주인공에게 보여줌으로써 그가 한 사람 몫의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마음’에 나오는 선생님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첫 등장부터 신비롭고 이지적인 풍모를 드러낸 그는 단숨에 학생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학생은 그를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이 선생님은 클리셰의 연장자들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다른 작품의 연장자들이 주인공에게 전하는 것이 어엿한 어른이 가져야 할 성숙한 가치라면, 이 작품의 선생님이 전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어두운 내면이다.
학생이 선생님에게 품고 있던 경외심은 학생의 아버지와의 대비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아버지는 선생님과는 달리 전형적인 보통의 인간으로, 작중에서는 학생에게 인상을 줄 만한 어떠한 행동이나 대사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다.
학생 또한 그런 아버지를 시시하게 여긴다.
그래서 임종의 순간, 아버지는 학생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첫 만남 이후 수 해에 걸쳐 선생님을 따른 학생은 그가 비밀이 많고 기묘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그가 갖고 있는 특별한 마력에 이끌려 선생님의 마지막 편지를 받자 끝끝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것을 미루고 죽은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 것이다.
학생이 기대한 것은 선생님이 갖고 있는 고답적인 면모와 고결한 품성이 어째서 이런 결과(선생님의 자살)를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었겠지만, 편지를 읽은 학생은 실망했을 것이다.
편지에 드러난 선생님의 모습은 조금 나약하고 약간 비겁한, 자신이 생각한 고고한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떤 인간일까?
학생이 생각한 이상적인 인간이기는커녕, 막역한 벗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밝혀진 이 순간, 선생님은 사람의 마음을 버린 누구보다 추악한 악인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친구에게 도발하는 순간에도, 아주머니에게 딸을 달라고 요청하는 순간에도, 친구의 죽음을 확인하고 그의 유서를 살피는 순간에도 그는 끝끝내 사람의 마음을 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그것에 끊임없이 침잠한 것이다.
한편으론 불의를 참지 못하고, 또 한편으론 끝도 없이 이기적이며,
한편으론 대의를 꿈꾸면서, 또 한편으론 자기 자신의 안위 앞에서 맹목적이어지는
그런 보통 사람의 나약한 마음에.
선생님이 겪은 좌절은, 작은 아버지에게 사기를 당하지 않았었다면 그렇게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불의에 대한 저항감이 없는 상태였다면 친구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자신의 나약한 행동을 후회할지언정 삶 자체에 대한 의욕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 번 타인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기 자신은 그런 인간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선생님이 친구의 시체 앞에서 겪은 좌절은 더욱 깊게 밴 것이다.
선생님이 겪은 일들은 평범한 인간사에는 일어나지 않는 특별한 상황이지만, 이것이 선생님만의 특별한 악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 여자를 동시에 좋아한 친구에게 비겁한 짓을 하고 마침내 그를 자살로 내몬 비극이지만
이 비극 끝에서 주인공이 깨달은 바란 ‘아,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이구나’하는 감상이라면,
이것은 구체적인 악인의 특별한 만행이라기보단 보편적인 인간군상의 범속한 행동일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죽기 직전, 학생에게 고백하고 싶어진 것이다. 자신의 심장을 깨고 그 정체를 확인하려는 학생에게 자신의 시시한 마음을 꺼내며, 인간의 심장이란 다 똑같은 모양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편지를 읽고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이 허상이었음을 깨달은 지금, 학생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이게 된다.
선생님이 경험한 인간의 마음을 시인하고 다시는 (자신을 비롯한)인간에게 기대하지 않을 것인가,
혹은 또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학생은 선생님의 편지를 읽은 후, 그가 가졌던 죄의식이 자기 자신에게 전염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기심 때문에 비겁해진 선생님도, 헛된 꿈을 좇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않은 자신도 시시한 인간이라는 것을 가장 비참하게 통감하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그 또한 인간의 나약한 마음에 침잠해 선생님과 같은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생님은 걷지 못했던 또 다른 길이 하나 있다.
친구의 죽음을 겪은 선생님은 마음의 나약함을 깨달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지는 못했다.
바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 마음을 나누는 것.
선생님은 끝끝내 아내의 순백하고 깨끗한 영혼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릴 수 없다며 고백하지 못했지만, 죄를 극복하기 위해선 자신의 고백과 참회, 그리고 타인의 용서가 있어야만 한다.
평범한 사람의 마음은 나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통제를 넘어서는 일 앞에서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불어 사는 것이다.
이기심에 치우친 인간이든 죄의식에 갇힌 인간이든,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더 건강한 마음을 빚을 수 있도록.
소설의 결말이 분명하게 나지 않아 마지막에 학생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든, 주변에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름대로 인상 깊게 읽어서 감상 썼는데.. 너무 내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도 있는 것 같네 ㅎㅎ
평론가처럼 너무 잘썼다 .. 소세키는 1910 년대에 이런 소설을 쓰다니 참 놀랍다
진짜 너무 잘썼다.. 이렇게 깊이 있게 읽고 정리한 감상문 보니까 .. 너무 좋다.. 마음 나도 너무 좋아하는 책이라서 ..
좋은 서평이다
최고의 감상평이다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