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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초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저녁에 시간은 남지만, 아무것도 할 기운이 없을 땐 책도 못읽겠고, 게임도 못하겠고, 야동도 못보겠고, 심지어 누워서 유튜브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체력 문제인가 싶어 결심한 즉시 런닝화를 구매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원래 달리기를 못하기도 했지만, 3킬로도 연속으로 뛰기 힘들었고, 뛰다걷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점점 체력이 붙는지 요즘엔 10키로도 거뜬하게 뛰고 있다.

(그리고 독서 집중력도 좋아졌다. 부작용이라면 책읽을 시간에 야동을 자주 봐서 독서시간이 실질적으로 늘진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번에 틱낫한의 명상 관련 책을 읽고 어, 이거 완전 달릴 때 생각하는 느낌이랑 똑같은데? 달리기가 틱낫한이 말하는 명상의 효과를 가져오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릴 때야말로 오로지 호흡과 땅을 딛는 발에만 온전히 집중하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를 잊게 되는 것 같다.

운동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던데 그것때문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달리기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후술하겠지만 이 즐거움은 몰입 때문이며, 명상과 달리기의 유사성은 책에서도 페이지를 할애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란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곧바로 구매했다.

사실 산지는 꽤 됐지만,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보니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최근 재정난으로 인해 새 책 구매를 자제하고

(전 재산을 투자한 주식이 망했기 때문이다. 양적완화로 거품을 만든 장본인 버냉키가 노벨경제학상을 타다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하필 내가 주식을 산 다음 해에 버블이 터지다니.. 이보시오 버냉키 양반.. 내가 설1거지라니..)

있는 책 위주로 읽다보니 이 책도 드디어 순번이 돌아오게 된 것이다.




칙센트미하이의 몰입도 나름 즐겁게 읽었기에 칙센트미하이의 또 다른 서적인갑다 하고 구매했는데, 읽어보니 칙센트미하이의 제자가 쓴 책이고, 칙센트미하이는 그냥 공저로 이름만 올려논 것이였다.

아무래도 스승의 명성을 빌린 듯 하다.

아니면 출판사에서 이렇게 낸 걸 수도 있겠고.. 근데 칙센트미하이가 메인 저자인 것처럼 표기해 놓은 건 아무래도 출판사의 영향이 아닐까?

자기가 연구한 성과의 결실물에 1번 저자로 스승을 넣는 놈이 어딨겠누..?

(학계는 이런가? 저자가 그래도 교수인데..) 출판사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이건 좀..




이런 사족이 이 책에서 말하는 몰입을 방해하는 부가적 요소일테니,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이 책은 달리기와 몰입을 연관짓는다.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내용대로, 실제 달리기로 몰입을 경험한 사람들을 인터뷰함으로써 몰입과 달리기 간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몰입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달성 가능한 계획들을 짜고 (방금 막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이 단거리 황제 우사인 볼트나 2시간의 벽을 깬 사나이 킵초게 페이스로 뛰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계획이다),

자신의 현재 기량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당면 과제와 적정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 (나는 10km5:30분 페이스로 뛰는데 차근차근 올리려는 계획과 연습 없이 갑자기 4:30분 페이스로 뛰고자 한다면 달성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몰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확한 피드백 (현재 위치, 현재 페이스 등)을 받아야 몰입의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라고 본다.

몰입에는 자기목적적 성격이 중요하다는데 당연히 좋은 성격들이 열거된다. (목표를 지향하는 태도, 내적 동기부여, 높은 자부심, 낙관적 태도, 성실성 등등.. , 이거 완전 마이클 조던 아니냐?) 대충 뭐 짜잘한거에 신경 많이 쓰고 그것에 심리적으로 크게 휘둘리는 쫌생이 타입은 몰입이 어렵다고 한다.




책을 읽고 보니 실제 내 달리기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확실히 중요한 건 목적이나 목표를 찾는 일이다.

아 오늘 그냥 달려야겠다 하고 달리다 보면 재미가 없다. 그냥 몸만 움직이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오늘 기필코 개인 최고 기록을 넘는단 마인드로 달려야 그 날 달리기가 오로지 달리기에만 집중 할 수 있다.

달리다 보면 달리기와 관련된 그 이외의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내가 가진 기술이나 경험을 통틀어 벌써부터 속도를 내면 안되지.. 이 구간은 오르막이라 빨리 달리면 이후의 코스에서 무너진다.. 호흡이 깨졌네 더 빨리 뛰려면 발이나 다리위치를 조정해야겠어.. ’라는 온갖 생각은 오직 달리기에만 집중된다.




물론, 성과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이며, 중요한 건 과정을 즐기는 태도다.

그렇다 해도, 목적이 없는 것은 곤란하다. 도박 (학창시절에 하던 판치기 같은 것을 떠올려보라) 도 돈을 따겠단 목적으로 해야 가진 돈으로 재밌게 놀지 그냥 심심하니 참여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가면 돈은 돈대로 잃고 개노잼이지 않은가?

돈을 따야겠다는 생각으로 몰입했을 때라야 돈을 잃어도 기분은 좀 나빠도 재밌었단 생각이 들 것이고 다음 날 동전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등교할 것이다.




목적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원체 목적을 따지지 않고 살아오다보니 점점 목적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목적 현재 기술과 과제의 난이도의 적정성 피드백이라는 몰입의 메커니즘은 비단 달리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고, 스포츠를 제외한 활동도 그렇다. 심지어는 독서도 이렇지 않은가?

단순히 책을 읽어야겠다 말고 책을 읽는 목표를 정하고, 자신의 수준에 적정하거나 살짝 위인 책을 고르고 책을 읽으면서 (독린이가 파우스트나 율리시스를 읽는다고 그 작품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겠냔말이다!!) 물아일체가 되는 경지에 이르른 경험에서 즐거움을 얻은 적이 있다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 즐거움 때문에 책을 계속 읽는 것이기도 하고.

결국 인생이란 것도 이렇지 않을까?

인생의 목적을 찾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 과정에서 몰입을 느끼고, 몰입에서 오는 즐거움이 조화를 이룬다면, 혹부리영감마냥 불쑥불쑥 시시때때로 튀어나오는 인생을 좀먹는 비관주의는 쏙 들어가고 인생의 찬란한 즐거움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