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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이렇게 지키고 섰는데
너 아직 여기서 아파하고 있구나
아아 내가 거대한 진심의 힘에서 멀어져
순수와 작은 양심을 잃고
검푸른 수라도를 걷고 있을 때
너는 너에게 주어진 길을
홀로 외로이 가려 하느냐
신앙이 같은 단 하나의 길동무인 내가
밝고 차가운 정진의 길에 슬프고 지쳐
독초와 형광 버섯 자란 어두운 들판을 떠돌 때
너는 홀로 어디로 가려 하느냐
    (나 지금 무서운 얼굴이지?)
모든 걸 체념한 듯 비통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아무리 작은 나의 표정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너는 당차게 어머니에게 묻는다
             (무슨 소리 아주 예뻐
                 오늘 진짜로 예뻐)
정말로 그렇단다
머리칼도 한층 검게 윤이 나고
뺨은 아이처럼 사과 같구나
부디 어여쁜 그 뺨으로
다시 하늘에서 태어나다오
     (안 좋은 냄새도 나지?)
             (무슨 소리 전혀)
정말로 아니란다
오히려 이곳은 한여름 들판처럼
희고 작은 꽃들의 향기로 가득하다
다만 나는 여기서 그 말을 할 수 없어
          (나는 수라도를 걷고 있으니)
내가 이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는 것은
나의 두 마음을 응시하는 탓이다
아아 그렇게
슬픈 눈으로 고개를 돌리지 말아다오

- 미야자와 겐지, 『무성통곡』, 1922.
(정수윤 역, 『봄과 아수라』, 읻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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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에겐 누이가 있었다.
이름은 '도시'로, 겐지의 시에서는 도시코라 나온다.

도시코와 겐지는 일찍이 생각이 잘 통해 서로 서신을 나누기도 하고(기억엔 아마 이때 겐지가 선생으로 취직해서 도쿄에 상경함. 겐지의 고향은 도호쿠 이와테,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산골.) 함께 법화경 독서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런 도시코는 스물 넷이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겐지의 시는 보통 겐지의 눈에 비친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농학도 특유의 이과적 지식의 활용한 공상, 또는 겐지 자신만의 불가적 우주론을 엮은 몽상적인 세계를 그려낸다.

하지만 도시코의 죽음을 겪은 뒤, 그리고 자신의 숨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안 뒤에(겐지는 폐결핵으로 37세에 별세한다. 이때 나온 게 유명한 '눈으로 말하다'와 '비에도 지지 않고') 겐지의 시는 조금씩 바뀌어간다.
마치 소세키가 말년에 위장병으로 고통받던 때 『마음』과 같은 작품을 썼던 것과 비슷하다.

무성통곡은 도시코가 세상을 떠난 1922년에 쓰인 작품이다.
겐지 특유의 작법이 드러나면서도, 심상 자체는 자신의 무너질 듯한 심정과 도시코의 모습을 담는 것을 주로 삼고 있다.

사실 이 시도 좋지만 '사랑과 열병'이나 '영결의 아침'이 더 기억에 남는다.
둘 다 봄과 아수라에 수록되어 있으며, 무성통곡과 같이 병상에 누운 도시코와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심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은하철도의 밤 '미야자와 겐지'도 좋지만
가끔은 도시코의 오빠 미야자와 겐지 또한 떠올릴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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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아수라 읽다가 불현듯 마음에 닿았음
또 마음에 남는 시 있으면 끄적여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