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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의 삶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책입니다.
제 고향은 경남의 진주시인데 여기서는 남명 조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남명학연구소라는 기관까지 있어요.
초중고를 다니면서도 역사시간마다
조선시대가 나오면 남명 조식을 언급하지 않는 선생님이 없었습니다.
진주에서는 도대체 왜 이렇게 조식 조식 하는건가
궁금하던 찰나에 서점에서 발견해서 잘걸렸다 이놈 하고 냉큼 사왔지요.
당대에는 학문적으로 이황과는 라이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기론에 얽매이는 풍조를 좋지 않게 보았고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실천"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남명은 65세 때 퇴계에게 편지를 보낸 일이 있습니다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건대, 손으로 물을 뿌리고 비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만 천리를 담론하며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남에게 상처를 입게 되고, 그 패해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니, 아마도 선생 같은 장로께서 꾸짖어 그만두게 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퇴계는 그것이 옳다고 여겨 제자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 내용을 전했다고 합니다.
망우당 곽재우, 송암 김면, 내암 정인홍, 대소헌 조종도 등
남명의 문하에서 50여명의 의병장이 배출되었습니다.
남명은 김해에 18년 가까이 살면서 남쪽 해안을 노략질하는 왜구들의 만행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의 학술 경향은 당시 성리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노장과 산술, 천문, 의학, 병법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무예와 병법을 강조한 것은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조식 선생께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 진주목이었다고 합니다.
아 그래서 진주에서는 조식 선생이 유명한거구나 싶었지요.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상스럽겠지만 그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노빠꾸 상남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평생 벼슬이라고는 물리치고 사셨지만
장군이 되셨더라면 어디선가 크게 활약하고도 남으셨을 분이 아닐까 하네요.
읽어보려 했는데 독후감 개추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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