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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 건 2020년,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당시 한국건축사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근현대 한국 건축에 대한 생각(아마?)을 써오는 게 과제였다. 신간이라 도서관에도 없었고, 책을 좋아하지도 않던 때라 떨떠름해하며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덕분에 워크룸과 마티라는 두 출판사를 알았으니 그게 득이라면 득이랄까. 말했듯이 책을 안 좋아하던 때라 억지로 일부만 읽고 과제를 제출했었는데 그래선지 성적이 영 좋진 않았다...
이 책을 다시 찾은 건 얼마 전의 일이다. 2022 대한민국 건축주간의 행사 중 하나로 이 책의 북토크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됐고, 책을 좋아하게 된 지금의 나는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북토크라는 걸 처음 가보기도 하고 내용도 기억이 나질 않아(아무래도...) 다시 읽고 가야지, 했지만 결국 반밖엔 못 읽고 갔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북토크도 딱 내가 읽은 곳까지만 진행됐다는 거. 시간문제가 있었다.
결국엔 다 읽었고, 나쁘지 않아서 이렇게 글로 남긴다. 역사책(건축사가 아니더라도)을 제대로 읽어본 건 처음인데 아무래도 시간순으로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닌...) 소설을 읽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간 창간호 표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을 다룬다. 여기서 발전국가 시기는 독립 이후의 반세기 정도로 보인다. 그런 시기(민주화 전까지) 동안 국가의 주인공이었던 정부가 국가의 발전과 자신들의 선전(어쩌면 둘은 한 몸일지도 모르겠는데)을 위해 건축을 어떻게 동원했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을 대하는 건축가들의 태도는 어땠는지를 살펴본다.
국전, 「공간」의 발행,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국가 문화시설들의 건립, 88올림픽을 위한 서울 재개발 등 정부는 계속해서 건축을 호출했다. 건축에 요구됐던 것은 실제적인 발전과 선전을 위한 이미지 둘 다였다. 문제는 전쟁 직후의 한국 건축계엔 그런 걸 제공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건설에 필요한 기술은 부재했고 표상을 만들기 위한 민족성도 부재했다. 기술과 민족성은 정부의 요구이기도 했지만 건축 내부적으로도 필요한 것이었고, 그를 위해 건축계도 정부의 지원을 이용한다. 기술 면에서는 박정희 시절 경제개발이 도움이 되었고, 한국성의 발견(혹은 발명)은 정부 주관의 프로젝트들을 통해 탐구될 수 있었다.
(전 국립중앙박물관. 현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이런 상호작용의 과정 속에서 태어난 것들이 정부서울청사와 맞은편의 쌍둥이 빌딩(사실 이 세 동의 건물은 군인과 미국 기업의 합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현 국립민속박물관), 국립극장, 독립기념관,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예술의 전당 등이다. 대부분의 큼직한 문화시설들이 만들어진 시기였다.
건축이 권력, 자본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아닌가?), 건축가들은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한창 운동이 활발했던 8-90년대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변화들과 4.3그룹을 마지막으로 저자는 글을 마친다.
(사진은 정일권 국무총리와 김수근 기술개발공사 부사장)
위에서는 정부와 건축계라는 두 그룹으로 묶어서 얘기했지만,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김원, 김정철, 김정식, 김수근, 유걸, 윤승중, 민현식, 김중업 등의 건축가들과 구자춘, 김현옥, 석정선, 박정희 등 정치계 인물들까지... 책은 건축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는 듯하지만 실은 그 이면의 사회적 상황도 비등하게 바라보고 있다. 건축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현대사의 흐름 속 건축의 움직임을 본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겁나 깔삼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