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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독갤러들이 번역 시를 읽는 게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는데,
간단히 답변하자면, 한국 시 이상으로 번역 시를 읽어야 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왜냐하면 시를 읽는 일이란 기본적으로 문자로 표현된 어떤 본질적인 의미를 읽어 내는 일이 아니라
시 자체를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미를 읽어내는 일보다는 시 자체의 언어적 운동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번역시를 읽을 때는 원문을 읽는 것과는 다른 이점이 있다.
외국어가 생각의 언어라면 모국어는 존재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번역시를 읽음으로써 생기는 의미와 함축성의 다소간의 손실은, 모국어로 번역된 시를 통한 우리 언어-존재의 강화로써 벌충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시는 번역이 더욱 중요하기도 한데,
필자는 시를 번역할 때는 직역의 망치로 원문을 부숴버린다는 생각으로 번역한다.
원문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고, 텍스트의 발전 가능성은 오히려 번역을 통해 가능하다.
끊임없이 개선됨으로써 원문을 능가하고 마침내 궁극적인 견고함에 닿는 번역은 진지한 번역자들의 꿈이다.
그래서 역자는 연기력이 훌륭해야됨. 원문 작가가 뭘 의도하고자하는지 아는건 기본이고 이제 그걸 어떻게 모국어에 빙의시킬것인가에 대해 몰입하고 연기해야지..
맞는 말입니다 =)
다 좋은데 시 자체의 언어적 운동을 느끼는건 원문을 읽어야 가능한거 아닐까? 오히려 번역이 의미를 읽어내는 데에 적합한거고 - dc App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번역도 억양과 뉘앙스를 조직하는 역자의 언어적 기교에 따라 다른 운동감을 갖게 되지.
결국 언어적 운동도 재생산이 가능하다는걸 전제한다는거야? - dc App
시가 갖고 있는 고유한 언어적 운동! - dc App
고유한 운동도 능력에 따라 얼마나 살릴 수 있는지 달라지지.
그 가능성을 인정하는거구나 ㅇㅇ 혹시 그런 의미에서 전영애 역의 악의꽃은 번역이 잘되었다고 생각해? - dc App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61084
<악의 꽃>에 대해서는 전에 이런 글을 썼었지.
ㅇㅋ 고마워 - dc App
시를 번역하신다고? 어떤 언어?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32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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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전혀 모릅니다 =)
좀 뜬금없는 질문이긴 한데, 독일 문학 goat면서 시극인 파우스트, 분량과 난이도에도 불구 참 많은 번역서가 나왔는데, 다는 아니더라도 비교해본 적 있음? 있다면 뭐가 좋은 거 같음?
파우스트는 문동vs길이 오래된 떡밥인데 누가 둘을 비교해주면 좋겠네
전에 누구는 을유 길 범우 갖고 10회독 했다는데 박환덕(범우) 추천하더라
박환덕 선생님도 명역으로 유명한 분이라 자세히 비교해 봐야 할 듯싶네 ㅋㅋ
작가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예술적 재능 필요. 출발어, 도착어, 문화, 연관시기, 작가 고유의 문체, 방법론 숙지 필요. 작가의 생각이나 행동 내면화 필수.
나비야.
헿
언어적 운동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념글에 곰문곰문곰문곰문 같은 건 번역으로 느끼는 게 불가능함. 번역 시에서도 동일한 경우가 많고
bear reab bear reab... 하고 주석으로 - dc App
reab 이 아니라 raeb이군 - dc App
역시 번역시
시시하군....
꿈은 꿈일 뿐 번역은 절대 원문을 능가할 수 없다... 야짤 번역하면서 느꼈다.
인생의 절반 손해봤어어!
키이츠 시중에 채프먼스호머 생각나네 근데 난 번역시는 로버트브라우닝같은 일부 제외하면 읽는맛이 뚝뚝 떨어진다고 생각함
좋은 번역이 드물긴 하지
뜬구름 잡는구나
나는 저 구름을 사랑한다 저 부산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라, 다시 보라 저 불가사의한 몽환의 구름을
시는 한 문장, 한 단어, 한 글자 뉘앙스가 중요한 거 같아서, 번역 시는 뭔가 꺼려짐...
번역시도 한 글자 뉘앙스까지 파고들어서 옮겨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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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는 원문의 음악성에서 자유로워져 원문을 능가하기를 지향할 때 더 나은 번역이 가능하다고 믿는 편입니다. 원문에 구속된 상태로는 번역문의 리듬 자체가 경직되어버리는 면이 있으니까요.
확실히 음악성에 많이 의지하는 시는 번역하기가 그만큼 까다로워지지요..... 계속 언어를 연마해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최대 직역을 지향하는 게 좋겠지만, 의역이나 표현의 보충도 적재적소에 필요한 요소들인 듯합니다. 가장 우선시해야 할 건 물론 언제나 언어의 자연스러움이겠지요. 백석의 경우에는 시인이 의식적으로 토착적 감각에 기대고 있으므로, 번역자도 토착적인 모국어로 번역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있겠습니다만, 뛰어난 번역가는 충분히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백석을 러시아어나 몽골어 등으로 번역하는 건 감이 오기도 하는데, 프랑스어나 영어 독일어 등 서유럽 언어로 번역하기는 더 어려울 것 같기도 하네요. ㅎㅎ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페소아 읽는데 번역인데도 감동 오백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