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기준으로 따지면 오히려 유학에 대한 해석이 국가권력이나 국왕 개인에게 집중되면서 강화되는 추세인데. 에도 막부가 가부키 제제하고 청조가 문자의옥 일으킨 것도 다 비슷하게 돌아가서 그런거임.
NRA(222.232)2022-10-16 12:41
답글
성리학적 질서 하에서 조선의 전방위적인 문화적 억압은 일본이나 청에 비할 바가 아니었음. 세계가 급변하고 있을 시기에 문체 정화 운동을 벌이고 있었던 게 반동이 아니면 뭐가 반동이겠나.
익명(koshkakoshka122)2022-10-1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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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반정은 명분이고 붕당들 투닥거리는거 조정한 게 실질 아님?
익명(223.38)2022-10-1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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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반정의 명분과 실질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도 현대인의 관점인 듯.
익명(koshkakoshka122)2022-10-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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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할바가 아니었다는 말은 너님이 청조 문자의 옥에 걸친 춘추의 해석론, 대일통과 정통 사상의 대립과 에도 막부 법치주의와 명분의 대립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됨?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는 20세기 초까지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서 지배적이었고 양명학이나 이런건 동북아 삼국에서 공통적으로 이단으로 까이던 사상이었음. 세계가 급변하고 있을 시기 운운하는데 청조에서 훈고학에 대한 비판이 공양학의 부활로 이어지는건 아무리 좋게쳐줘도 19세기 말임. 동아시아에서 누가 빠르고 늦고 할 처지가 아니라는거.
NRA(222.232)2022-10-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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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주요 명분중 하나인 존왕양이조차 그 어원은 춘추공양전에서 비롯된거임. 사상론적 명분에서 전통 학문은 20세기 내내 탈피할 수 있는게 아니었음.
NRA(222.232)2022-10-1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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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급발진하네. 그래서 청나라가 문자의옥 일으켰으니 정조도 문체반정 일으켜도 된다는 건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의 지배력 운운하기 전에 좀 기본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요점은 조선이 중국 일본에 비해 사상적 다양성이 극히 부족했다는 데 있는데 무작정 그때는 다 똑같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쩌자는 거. 예의 좀 지켜.
익명(koshkakoshka122)2022-10-1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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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소설 좋아했다는데 정조가 소설 혐오하고 문체 통제하려 했던 건 당대나 지금이나 까일 만한 거지 무슨 청나라 문자의옥, 가부키 검열을 끌고오냐. 이게 기본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냐? 조선에서는 성리학적 도덕주의가 철저화되어 화려했던 중국이나 일본처럼 연극 문화가 성립될 수조차 없었다.
익명(koshkakoshka122)2022-10-16 14:12
답글
일본은 양명학 이단 취급 안했는데 전공에서 오히려 일본 유교 특이점 양명학이라고 배움
익명(211.36)2022-10-16 14:27
답글
ㅇㅇ명나라 일본에서 양명학이 발달했지 무슨 이단 취급을 받아. 그리고 청나라는 이민족 왕조 특성상 정권 유지라는 실용적 목적으로 사상을 탄압했지. 조선 양명학을 집대성한 정제두가 목숨을 걸고 했다고 할 정도로 지식인 사회 전체가 성리학에만 매달려서 다른 건 다 사문난적으로 몰아 배척했던 지적 폐쇄성은 조선만의 특징임.
익명(61.72)2022-10-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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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권력이 주체가 되어 성리학을 선호할 수는 있는데(그것도 조선이 너무 극단적인 케이스지만), 지식인 사회 전체가 다른 사상, 종교를 철저히 배척하며 성리학만 신봉했던 경우는 조선밖에 없음
익명(61.72)2022-10-16 14:45
답글
당대 기준으로 반동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조선이 문자의 옥급으로 사람을 죽임? 아코 사건때 전원 사형 때림? 당대 기준으로 보면 문체반정은 그 실체가 모호할 정도로 두루뭉실한 사건이었음. 그리고 후기 근세 동아시아에서 관학은 셋다 성리학임. 그리 따지면 조선도 강화학파 있으니 양명학 수용했다고 할 수 있음
NRA(39.7)2022-10-16 14:52
답글
영조도 소설을 좋아했고 사도세자도 소설을 좋아했다는데 정조 대에 와서 갑자기 고문체로 돌아가자고 박지원 등을 핍박한 게 당연히 문화적 반동이지 그럼 진보인가? ㅎㅎ 정조가 능력 면에서는 탁월했지만 사상적으로는 아이러닉하게도 극단적인 보수주의자였다는 걸 부정하려고 문자의 옥을 끌어오나. 문체반정이 문자의옥과 비교 대상이 안 되는 모호한 사건인데 왜 문자의 옥과 비교하려는지 모르겠네. 비교하려면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조선의 가톨릭 탄압 같은 비슷한 규모의 사건하고 비교해야지. 그리고 조선 성리학의 편협함은 문장을 감각적으로 꾸미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을 정도로 철저했던 감각 세계에 대한 억압에서도 드러나지. 국가 권력이 성리학을 선호했다고 해서 그 양상이 문화적으로 똑같이 나타나는 건 아님.
익명(koshkakoshka122)2022-10-1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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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학이 성리학이라서 한중일 문화가 다 똑같았다고 볼 수 없음. 조선 문화의 특징은 성리학 바깥의 주변 문화가 극히 협소했다는 점이고 그런 면에서 한 줌의 강화학파는 조선의 사상적 다양성의 상징이 아니라 사상적 경직성의 상징이지.
익명(koshkakoshka122)2022-10-16 16:09
정조가 조선 르네상스라는 게 존나웃김 문체반정으로 문화기반 갈아버린데다가 그래서 뭘 잘했는데? 하면 딱히 있지도 않음
문체반정 일으켰던 것만 봐도 지독한 유교 반동주의자
애초에 현대인 시점에서보면 북학파들도 반동임.
문체반정은 당대 기준으로 봐도 말도 안 되게 반동적인 도덕주의였음.
당대 기준으로 따지면 오히려 유학에 대한 해석이 국가권력이나 국왕 개인에게 집중되면서 강화되는 추세인데. 에도 막부가 가부키 제제하고 청조가 문자의옥 일으킨 것도 다 비슷하게 돌아가서 그런거임.
성리학적 질서 하에서 조선의 전방위적인 문화적 억압은 일본이나 청에 비할 바가 아니었음. 세계가 급변하고 있을 시기에 문체 정화 운동을 벌이고 있었던 게 반동이 아니면 뭐가 반동이겠나.
문체반정은 명분이고 붕당들 투닥거리는거 조정한 게 실질 아님?
문체반정의 명분과 실질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도 현대인의 관점인 듯.
~에 비할바가 아니었다는 말은 너님이 청조 문자의 옥에 걸친 춘추의 해석론, 대일통과 정통 사상의 대립과 에도 막부 법치주의와 명분의 대립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됨?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는 20세기 초까지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서 지배적이었고 양명학이나 이런건 동북아 삼국에서 공통적으로 이단으로 까이던 사상이었음. 세계가 급변하고 있을 시기 운운하는데 청조에서 훈고학에 대한 비판이 공양학의 부활로 이어지는건 아무리 좋게쳐줘도 19세기 말임. 동아시아에서 누가 빠르고 늦고 할 처지가 아니라는거.
게다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주요 명분중 하나인 존왕양이조차 그 어원은 춘추공양전에서 비롯된거임. 사상론적 명분에서 전통 학문은 20세기 내내 탈피할 수 있는게 아니었음.
갑자기 급발진하네. 그래서 청나라가 문자의옥 일으켰으니 정조도 문체반정 일으켜도 된다는 건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의 지배력 운운하기 전에 좀 기본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요점은 조선이 중국 일본에 비해 사상적 다양성이 극히 부족했다는 데 있는데 무작정 그때는 다 똑같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쩌자는 거. 예의 좀 지켜.
영조는 소설 좋아했다는데 정조가 소설 혐오하고 문체 통제하려 했던 건 당대나 지금이나 까일 만한 거지 무슨 청나라 문자의옥, 가부키 검열을 끌고오냐. 이게 기본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냐? 조선에서는 성리학적 도덕주의가 철저화되어 화려했던 중국이나 일본처럼 연극 문화가 성립될 수조차 없었다.
일본은 양명학 이단 취급 안했는데 전공에서 오히려 일본 유교 특이점 양명학이라고 배움
ㅇㅇ명나라 일본에서 양명학이 발달했지 무슨 이단 취급을 받아. 그리고 청나라는 이민족 왕조 특성상 정권 유지라는 실용적 목적으로 사상을 탄압했지. 조선 양명학을 집대성한 정제두가 목숨을 걸고 했다고 할 정도로 지식인 사회 전체가 성리학에만 매달려서 다른 건 다 사문난적으로 몰아 배척했던 지적 폐쇄성은 조선만의 특징임.
국가 권력이 주체가 되어 성리학을 선호할 수는 있는데(그것도 조선이 너무 극단적인 케이스지만), 지식인 사회 전체가 다른 사상, 종교를 철저히 배척하며 성리학만 신봉했던 경우는 조선밖에 없음
당대 기준으로 반동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조선이 문자의 옥급으로 사람을 죽임? 아코 사건때 전원 사형 때림? 당대 기준으로 보면 문체반정은 그 실체가 모호할 정도로 두루뭉실한 사건이었음. 그리고 후기 근세 동아시아에서 관학은 셋다 성리학임. 그리 따지면 조선도 강화학파 있으니 양명학 수용했다고 할 수 있음
영조도 소설을 좋아했고 사도세자도 소설을 좋아했다는데 정조 대에 와서 갑자기 고문체로 돌아가자고 박지원 등을 핍박한 게 당연히 문화적 반동이지 그럼 진보인가? ㅎㅎ 정조가 능력 면에서는 탁월했지만 사상적으로는 아이러닉하게도 극단적인 보수주의자였다는 걸 부정하려고 문자의 옥을 끌어오나. 문체반정이 문자의옥과 비교 대상이 안 되는 모호한 사건인데 왜 문자의 옥과 비교하려는지 모르겠네. 비교하려면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조선의 가톨릭 탄압 같은 비슷한 규모의 사건하고 비교해야지. 그리고 조선 성리학의 편협함은 문장을 감각적으로 꾸미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을 정도로 철저했던 감각 세계에 대한 억압에서도 드러나지. 국가 권력이 성리학을 선호했다고 해서 그 양상이 문화적으로 똑같이 나타나는 건 아님.
관학이 성리학이라서 한중일 문화가 다 똑같았다고 볼 수 없음. 조선 문화의 특징은 성리학 바깥의 주변 문화가 극히 협소했다는 점이고 그런 면에서 한 줌의 강화학파는 조선의 사상적 다양성의 상징이 아니라 사상적 경직성의 상징이지.
정조가 조선 르네상스라는 게 존나웃김 문체반정으로 문화기반 갈아버린데다가 그래서 뭘 잘했는데? 하면 딱히 있지도 않음
걍 딱 세도정치 좆센멸망 트리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