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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도서관 서가에서 기묘한 제목의 책을 본 순간, 숨이 멎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이한 도호쿠벤(東北弁, 도호쿠 방언)의 제목이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도호쿠 지방은 한 번 쯤은 살아 보고 싶다고 생각 했던, 나에게 있어 동경의 땅 같은 곳이다.

그렇게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작가인 와카타케 치사코 씨는 이와테 현에서 태어나, 55세의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의 권유로 소설 작문 교실에 다니게 된 평범한 주부라고 한다.

63세에 등단하고 2017년 이 작품으로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주인공인 모모코 씨는 도쿄 올림픽이 있었던 해, 스무 살 남짓한 나이로 상경해서, 호감을 가진 남성과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른 후, 남편과 사별한다.

딸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따라 살고 마지막에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그녀의 모습을, 작가가 그리고자 했음은 틀림이 없다.

한국어 번역판의 추천사를 쓴 조남주 작가의 ‘그녀, 나 그리고 세상의 모든 늙어가는 여성을 위한 이야기’라는 말도 이러한 맥락 아래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늙어 가는 ‘여성의 일생’을 그려낸 소설로 끝내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여기서 ‘핫가쿠산(八角山)’이라는 소재에 주목하려고 한다.

모모코 씨의 도쿄 생활이 정점을 찍어갈 무렵, 그녀는 표준어 ‘와타시(일본어의 1인칭)’와 도호쿠벤 ‘오라(도호쿠벤의 1인칭. 화자의 성별을 나타내는 기능을 가진 와타시와는 다르게 중성적인 1인칭이다.)’ 사이의 양가적인 감정이 되살아 나는 것과 함께, 생활의 활력을 잃어 버린다.

잃어버린 활력을 되찾아 준 것은 다름 아닌 고향의 산, 핫가쿠산이었다.

(인용)
  핫카쿠산은 모모코 씨의 고향을 빙 두른 산 가운데 가장 높은 산이다. 할멍이는 아침저녁으로 이 산을 향해 손을 모았다. 신앙의 산이기도 했다. …어딜 봐도 산과 나무와 들판, 드문드문 떨어진 집들뿐인 더할 나위 없이 지루한 동네라고 여겼다. 핫카쿠산은 그 상징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八角山は桃子さんの郷里のぐるりを取り巻く山の中で一番高い山である。ばっちゃは朝晩手を合わせていた。信仰の山でもあった。…どこを見渡しても木と山と田んぼと、点在する家々のほかに何もない、つくづくとつまらない場所だと思った。その象徴があの八角山なのだ。そう思っていた)

예전부터 질릴 정도로 싫어했던 촌구석의 상징, 핫카쿠산이 도쿄 생활을 지탱해 주었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핫카쿠산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모모코의 인생에 등장한다.

모모코는 ‘핫카쿠산’의 기억을 공유하는 이와테 현 출신의 남성 ‘슈조’와 만나 결혼을 하고, 그와 사별한 후에 핫카쿠산을 자신이 돌아가야 할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핫가쿠산은 어떤 존재일까?

‘신앙의 산’이라는 말처럼, 단순한 애니미즘적 존재일 뿐인 것일까?

그렇다면, 도쿄에서 슈조가 ‘알지 핫카쿠산, 알고말고!(八角山でば、おべてる)’라는 말을 꺼냈을 때 모모코가 전율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그가 사라졌을 때 그녀에게 핫카쿠산으로 떠나야 한다 생각했던 이유는?



나는 할멍, 모모코, 슈조가 공유하고 있는 이 핫카쿠산의 이미지가, 의식 세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정체성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핫가쿠산은 이와테현 주민들에게 친숙한 유형(有形)의 존재에서 그치지 않고,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공통된 무의식의 세계인 것이다.

모모코의 말처럼, 고향은 이미 그녀가 어린 시절 보았던 풍경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어린시절 보았던 그 풍경 마저도 할멍 마음 속에 있는 풍경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핫카쿠산은 그 자리를 줄곧 지키고 있다.

할멍이 정성스레 기도를 올리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비웃던 어린 손녀는 그 세계의 존재를 확신하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렇게 할머니와 손녀는 ‘70년 차이 나는 길동무’가 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도호쿠벤이었다.

모모코의 잠재의식을 상징하는 ‘융모돌기’는 대부분의 경우 도호쿠벤을 통해 말을 걸어 온다.

표준어를 쓰는 융모돌기도 존재하지만, 의식세계의 기반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도호쿠벤이다.

모모코는 스스로의 의식세계를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



(인용)
사람의 마음엔 여러 겹의 층이 있어요. 갓 태어난 아기의 눈에 비친 나의 근원적인 층과, 살아가면서 후천적으로 생기는 이런저런 층들,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게 된 처세 같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겹겹이 두툼한 층을 이룬 거라…

(人の心には何層にもわたる層がある。生まれたでの赤ん坊の目で見えている原基おらの層と、後から生きんがために採用したあれこれのおらの層、…自分で選んだとみせかけて選ばされてしまった世知だのが付与堆積して、分厚く重なった層…)



의식의 표면에 표준어의 ‘처세(世知)’가 얼마나 두껍게 쌓여 있다고 해도, 가장 깊은 부분은 도호쿠벤으로 되어있는 탓에 모모코 씨의 정체성은 ‘와타시’로 바뀌지 않고 ‘오라’로 있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 속에 잠들어 있었던 핫카쿠산 풍경이 어른이 되고 나서야 의식의 표면에 떠오른 것처럼,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표준어에 눌려 있었던 도호쿠벤이 ‘처세’, 즉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この世で生きていくための知恵)’로부터 해방된 후에서야 떠오른 것이다.

이 과정은 모모코의 개인적인 경험에 그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 모모코와 손녀딸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인용)
“무섭긴. 다들 날 지캐 주이까. 지캐 준다는 건…….”
“알아. 지켜 준다는 거지.”
“어마야라, 너 걸 우텨 아니.”
“엄마가 만날 그랬어. 할아버지가 오빠랑 날 지캐 주고 있다구. 있지, 할머니. 우리 엄만 흥분하면 사투리가 나온다. 공부를 안 하면 못 알아 들어.”
“…….”
“할머니, 왜 그래. 왜 울어?”

(「何にも。みなまぶってでくれる。まぶるというのは……」
「知ってる。見守るってことだよね」
「あいやぁ、さやちゃんおべでるの」
「おべでるおべでる。だっておじいちゃんがお兄ちゃんとさやかのことまぶっているっ
て、ママいつも言ってるよ」
「あのね。うちのママ、コーフンすると東北弁になるんだよ。勉強さねばわがん
ねぇって」
「どうしたの、おばあちゃんどうして泣いてるの」)


모모코의 기억도 닿지 않는 때에 할망에게 건내 받은 도호쿠벤은, 딸 나오미를 거쳐 손녀 사야카에게 이어진다.

머나먼 선조로부터 도호쿠벤과 함께 이어지고 있는 무언가가, 딸과 손녀의 잠재의식에 스며든다.

이 순환의 원리를 깨달은 모모코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순환은 ‘작열하는 사막을 걷고, 히말라야를 곁눈으로 보며, 얼어붙은 시베리아를 건너’ 이 땅에 도착한 그 때부터, ‘서기 4102년, 다른 별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 아득하게 긴 계주의 주자로 나선 모모코는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건내 주는 그 순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한국어판의 도호쿠벤 번역에 대해 말하자면, 역자 정수윤 씨의 고집과 정성이 느껴지는 번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의 도호쿠벤은 한국의 산간지역 ‘강원도’의 방언으로 번역 되어, 산으로 둘러싸인 이와테의 정서를 최대한으로 살리고 있었다.

방언의 감수도 철저해서, 마치 처음부터 한국어 소설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어의 표준어와 강원도 방언의 차이가 일본 표준어와 도호쿠벤의 그것보다는 현저하게 적은 탓에, 한국어판에서는 상기한 ‘의식(표준어)’와 ‘무의식(방언)’의 상극이 빚어내는 드라마를 느끼기 어려웠다.

이 정서를 한국어로 끌고 오기 위해서는, ‘미국에 이민을 간 여성이 모어와 영어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반대로 말하면, 일본어의 방언이 그 만큼 풍부한 독특함을 품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양하게 남아있는 일본의 지방문화가 한편으로는 부러워 졌다.







여까지 독후감이고 모바일에서도 좀 더 가독성 있게 줄바꿈 많이했음

원래 일본어로 쓴 걸 번역한 거라 어색할 수도 있음 ㅇㅇ

진짜 너무 재밌게 읽어서 평소엔 귀찮아서 하지도 않는 독후감 응모까지 했다

정말 재밌는 소설이니까 이거 읽고 다들 한 번씩 읽어봤음 좋겠어

빠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