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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반에 상대적/절대적 가치 판단 예시는 왜들었나 궁금함. 키에르케고르에게서 영향받은 지점이랑 자신의 논리적 분석이 가진 함의를 뒤섞는 느낌? 나는 개인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이 예시로 든 절대적 가치 판단도(거짓말) 상대적 가치 판단으로 재기술할 수 있다고 봄. 공리주의적으로 계량하는거지. 아무튼 가치 판단 구분은 칸트 종합/분석 구분만큼 허무맹랑한듯. 나같았으면 차라리 자기가 앞서 한 구분이 외연적으로 구분되지 않아도, 결단적으로 구분될 수 있다는 점을 공공연하게 드러낼 것 같음. 아무튼 졸렬한 대목.
2. 비트겐슈타인이 서술에서 성취하려고 하는 어떤 명료함이, 프레게의 뜻-지시체 도식을 연상시킴. 그런데 프레게의 뜻들은 결국 하나의 지시체를 향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이 설명하는 종교적, 윤리적 명제들은 전부 지시체가 없다는게 다르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오히려 종교적, 윤리적 명제가 지시체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본질적이라고 생각하는듯. 만약 상대가 의미있는 명제를 이야기하면, "응 그건 의미있으니까 종교적, 윤리적 명제가 아냐"하는 즉각적인 검증기준으로까지 생각함.
3. "진실은, 사실을 바라보는 과학적 방식은 그것을 기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게 자기 관점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비트겐슈타인이 하는 말임. 당연한 말이지. "너는 나랑 관점이 달라!"
4. 비트겐슈타인은 "세계가 존재한다.", "세계의 존재에 대해 경탄한다.",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이라는 명제들을 종교적 태도와 연관지음.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기술이 가진 목표가 "우리가 탐구를 위한 공통적인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함"이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나는 연상에 부분적으로 실패했음. 첫번째 명제와 두번째 명제를 볼때, 내가 연상시키는 인상은 내 손을 스스로 쥐었다가 폈다가 하는거임.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은 언제 받을 수 있는거지?)
5. 나는 개인적으로 윤리가 신비해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함.
a) 목적과 의도가 win-win인가? (정치적이지 않은가?)
b) 결과적으로도 win-win인가?
실천적으로는 a-b, 이론 모형적으로는 b-a 순서로 말하면 되지않나? '옳다고 믿고 시작한건 결과적으로 좋아야하고, 결과적으로 좋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태도를 옳다고 믿고 시작할 수 있다.' 이런식으로 순환해서 보는거지. 여기서 문제는 목적이랑 결과를 구분안하거나, 정치적인 것(win-lose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게임)을 윤리적인 것이랑 뒤섞는거임.
6. 비트겐슈타인의 윤리관이 후기에는 변화하나? 아는 사람있으면 댓글바람. 아무튼 무신론자인 내가 보기에는 비트겐슈타인이 신앙 숨긴 크리스천처럼 보임. 칸트식 뻔뻔함이 아니라 뭔가 졸렬한 방식으로,
7.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으로 많은 모티프를 주고 글이 풍부한건 맞지만, 이런 면보면 너무 옛날사람처럼 느껴짐. 그래도 비트겐슈타인이 철학하는 스타일이나 사유흐름은 제일 직관적이고 솔직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듯. 과거에는 존경의 철학자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애증의 철학자가 되어가는 비트겐슈타인...
2. 비트겐슈타인이 서술에서 성취하려고 하는 어떤 명료함이, 프레게의 뜻-지시체 도식을 연상시킴. 그런데 프레게의 뜻들은 결국 하나의 지시체를 향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이 설명하는 종교적, 윤리적 명제들은 전부 지시체가 없다는게 다르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오히려 종교적, 윤리적 명제가 지시체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본질적이라고 생각하는듯. 만약 상대가 의미있는 명제를 이야기하면, "응 그건 의미있으니까 종교적, 윤리적 명제가 아냐"하는 즉각적인 검증기준으로까지 생각함.
3. "진실은, 사실을 바라보는 과학적 방식은 그것을 기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게 자기 관점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비트겐슈타인이 하는 말임. 당연한 말이지. "너는 나랑 관점이 달라!"
4. 비트겐슈타인은 "세계가 존재한다.", "세계의 존재에 대해 경탄한다.",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이라는 명제들을 종교적 태도와 연관지음.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기술이 가진 목표가 "우리가 탐구를 위한 공통적인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함"이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나는 연상에 부분적으로 실패했음. 첫번째 명제와 두번째 명제를 볼때, 내가 연상시키는 인상은 내 손을 스스로 쥐었다가 폈다가 하는거임.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은 언제 받을 수 있는거지?)
5. 나는 개인적으로 윤리가 신비해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함.
a) 목적과 의도가 win-win인가? (정치적이지 않은가?)
b) 결과적으로도 win-win인가?
실천적으로는 a-b, 이론 모형적으로는 b-a 순서로 말하면 되지않나? '옳다고 믿고 시작한건 결과적으로 좋아야하고, 결과적으로 좋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태도를 옳다고 믿고 시작할 수 있다.' 이런식으로 순환해서 보는거지. 여기서 문제는 목적이랑 결과를 구분안하거나, 정치적인 것(win-lose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게임)을 윤리적인 것이랑 뒤섞는거임.
6. 비트겐슈타인의 윤리관이 후기에는 변화하나? 아는 사람있으면 댓글바람. 아무튼 무신론자인 내가 보기에는 비트겐슈타인이 신앙 숨긴 크리스천처럼 보임. 칸트식 뻔뻔함이 아니라 뭔가 졸렬한 방식으로,
7.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으로 많은 모티프를 주고 글이 풍부한건 맞지만, 이런 면보면 너무 옛날사람처럼 느껴짐. 그래도 비트겐슈타인이 철학하는 스타일이나 사유흐름은 제일 직관적이고 솔직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듯. 과거에는 존경의 철학자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애증의 철학자가 되어가는 비트겐슈타인...
후기에 친구들이랑 기독교 관련해서 한 대화를 보면 딱히 신학을 숨기지는 않음
비트겐슈타인 본인의 신학을 이야기하는거임? 혹시 대화 어디서 읽을 수 있음? 비트겐슈타인이 종교에 대해 남긴 어록들을 거의 다 찾아봤는데 단언할 수 있는 부분을 지금까지 못읽어서 그럼.
내가 말한 건 노먼 맬컴의 회상록에 등장하는 대화인데 아마 이건 유명해서 님이 읽었을 거 같은데..
개추개추개추개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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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좀 더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음?? 특히 진리가 절대진리가 될 수 없다는 걸 좀 더 자세히 어떤 부분에서 불가능하다는 건지랑 그런 사유가 어떻게 관념론이랑 형이상학을 정지시켰다는건지가 궁금함.. 참고로 순비 읽다가 런해서 잘 모름 ㅎㅎ..
다른 사변들은 다 올스탑 시켜놓고, 자기 형이상학은 "응 선험적 관념론은 경험적 실재론이야~"하고 남겨놓은게 뻔뻔함 ㅋㅋ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스타일과 사유흐름이 직관적이고 솔직하지만 뭔가 애매하다 느낀 이유는, 비트겐슈타인 스스로 더 직관적이고 더 논증적일 수 있음에도 어떤 경계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그것은 자연과학의 모델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점과, 수학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라고 추정함.
아직도 이렇게 생각함?
이미 빈에서 마우트너라는 실 사례가 있었고, 네스트로이도 언어관을 비슷하게 생각했음... 이를 사실 거부하려고 했지.
아니 너가 이렇게 생각하냐고
내가 보기에 비트겐슈타인은 마우트너의 결론은 받아들였어도, 마우트너의 비판이 실질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거 같음. 논고의 4.0031 탐구의 383절은 그런 '태도'를 보여주고, 애초에 나는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실증주의자였을리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나의 작업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제시되어 있는 것이 한 부분이며, 내가 써 놓지 않은 모든 것을 거기에 더하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은 바로 그 둘째 부분이다. 내 책은 윤리적인 것의 영역에 대하여, 말하자면 그 내부로부터 한계를 긋는 것이며, 나는 이것이 그런 한계를 긋는 단 하나의 엄격한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이게... 잘 적용될지 모르겠음.
말이 안통하네 ㅋㅋ
<비트겐슈타인과 세기말 빈>읽어봄? 그거 읽어본거 같아서 하는 말인데, 내가볼때 너는 일관적으로 수학의 선험성을 겉도는 방향으로 오독하고있음. 비트겐슈타인이 영미철학적 대립과 논쟁에 관심없었다고 말하면 믿을 수 있냐? 너는 못믿을걸. 심지어 너는 비트겐슈타인의 윤리도 니방식대로 읽는듯 ㅋㅋ
형식논리학이 무너지면 일상 기술적인 산수나 논리가 무너진다는 생각은 공리 명제가 지식의 확실성을 보증한다는 확신에서만 성립가능함. 비트겐슈타인은 기존 수학의 증명이 몽땅 날라가도 일상에는 아무런 타격도 못줄거라고 생각할걸?
과잉 지성적인 불안에 사로잡혀서 실재론 반실재론 논쟁하고싶으면 수학과 가는게 좋겠다 ㅋㅋ 거기서 한심한 결론 주장하는 방법에 수십년 공들이길 바람. 레퍼런스나 글쓰기 스타일에 집착하는 교수들은 자기들이 가진게 그것밖에 없기때문.
수학과가 왜 실재론 반실재론을 논한다고 생각함? 전혀 안 그런데...
니가 수학이라는 '존재'라고 말하고, 걔네들이 증명이랍시고 장황하게 내놓는 것들이 존재론이지 그럼 말뿐인 말장난임? 실재론 반실재론 이라는 표현도 그냥 전형적인 영미학계적인 논쟁프레임이라는 측면에서 사용한거니까 말꼬리잡기 ㄴㄴ
괴델만 봐도 존나 플라톤적인데 ㅋㅋ 수학과 내부에서 철학적 얘기가 안나오는건 걍 이미 테라포밍되었기 때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너만해도 수학을 '발견'한다고 생각할거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수학을 발명한다고 생각한다는게 아니고, 나는 걔네 논쟁에 관심이 없거든. 걔네가 불필요하게 호소하는 방법론적인 권위가 거슬릴 뿐이지.
A. 수학과 사람들은 수학철학에 전혀 관심가지지 않아. 괴델적 플라톤주의도 아니고, 정확히 말해 "난그런거상관안함주의"임. 내가 수학이라는 존재라 말한 건 도저히 무슨 언어를 쓸지 몰라서 그냥 넣은 것 뿐임.
ㅋㅋ 기만적이네. 수학적 명제의 진리성이 수학적 실재론자들의 가장 핵심적인 논거인데? 수학과에서 증명과 참 거짓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가 뭔데? 만약 걔네가 수학철학에 관심이 없다라도, 그 이유는 이미 수학적 실재론자들이 만들어놓은 양식에 길들여져서 자기가 그 양식속에 들어와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임.
난 도저히 그렇게 생각 안함. 수학은 그냥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실재론 반실재론인지 뭔지 논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와서는 둘이서 "저 수학의 얼굴을 봐봐라. 관상부터 잘못되었네. 저 놈은 분명 나쁜 짓을 할 거임"이라고 가게 유리창 뒤에서 수학을 보면서 온갖 추측을 다 하는 느낌임.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세기말 빈을 너가 언급하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짐. 거기서의 말로는 첫째, 마우트너를 피하려 함 - 왜냐면 마우트너로는 윤리의 필연성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 그래서 필연성을 위해 논리의 필연성을 지키려 했음. 둘째, 분석철학자와 논리실증주의자 담론에 관심을 가졌음.
아니 일단 5부터 5.535인가까지 보면 적어도 프레게와 러셀의 논리에 (당연히) 관심을 가졌다는 게 있고. 그리고, 세기말 빈 그 책에서 빈 학파가 추구한 마흐 대신 논리적 공간과 침묵 개념을 더 잘 줄 수 있는 헤르츠의 철학을 주장했다는 것이 나옴.
근데 A. 뒤에 쓴 댓글들이 너무 전형적인 방어기제라서 개웃기네. 나는 너같이 약하고 겁많으면서 욕심은 많은 애들이 싫어. 인생의 문제에 치열하게 부딪힐 용기는 없으면서 가르치려고 드는 애들. ㅋㅋ 햄버거 먹고있다는 얘기에서 자기연민이랑 "난 아무잘못 없어!"하는 태도가 너무 느껴져서 짠할 수준이네.
"약하고 겁많으면서 욕심은 많은"... 이건 사실 제 비판이라기보다는 철학자의 논증의 모습를 잘 묘사한 말인 거 같은데요.
니체의 말을 변형해보죠. 철학은 여자와의 대화 같은 겁니다. 삶의 의미라는 주제는 누구나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는 추구할 수 있는데, 그걸 직접적으로 말하려는 순간 너무 엄격하고 오글거리고 절대 그녀가 좋다 생각하지 못하는, 경박함으로 빠지게 됩니다.
철학자들은 그런 경박함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오히려 삶의 의미를 아예 쳐다보지 않는다거나, 힐끗 쳐다보기만 하고, 호두를 망치로 깨지 않고 물에 보름동안 천천히 불려 빼내듯 최대한 스몰토크를 해가면서 그 삶의 의미의 주제 제기라는 목표를 우회해서 달성하려 하죠. 그게 경박함에서 벗어나는 길이니까요.
현상학을 일으킨 후설의 일화가 있죠. 그가 철학에서 강의를 할 때, 그때에도 언제나 그렇듯 학부생 저학년생들만이 가장 심오한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발표하는 일이 좀 있었다고 합니다. 후설은 그럴 때마다 유머 조로 이렇게 말했죠. "지폐만 주지 마시고, 잔돈, 잔돈을 주시오!"
너같은 애들을 볼츠만처럼 자살시키지 않으려고 구슬려서 말하는 비트겐슈타인을 찌질한 니체에 대입시키는 너가 불쌍하네.
논리적 공간과 침묵 개념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건 걍 자기 경향성에 대한 변명에 불과함. 그럴꺼면 차라리 속시원하게 말하고 다녀. 왜 비트겐슈타인을 푸코처럼 찌질한 사람으로 만들지?
님은 컨셉충이거나, 컨셉충이었으면 차라리 더 좋은 토론이 이뤄졌을지도 모르는 진짜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더 이상 안 할게요.
비트겐슈타인이 서술에 집중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권위에 넙죽 엎드리길 바라는게 아니라, 반성적으로 고찰하면서 성숙해지길 바라고, 그게 각자의 능동성을 지켜주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기 때문이야. 비트겐슈타인이 칸트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이 칸트보다 훨씬 세련되고 졸렬하지 않도록 노력했다는걸 모르는 사람들 뿐임.
그래 나도 그만하지.
생각해보니 내가 좀 세게 나갔던것 같군. 그 부분에 대해선 미안하다는 말 전하고싶다. 토론에 응대해줘서 고맙다는 말만 마지막으로 남기고싶네.
나는 여기서 애매함을 느끼는 게, 님의 수학관, 그러니까 "수학"이란 존재에 대한 관점이 어떨지가 궁금함. 그가 마흐의 사유경제성을 바로 택할 수도 없었고, 후설의 초기 "논리 연구" 탐구를 거의 포기한 후기 현상학의 탐구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함. 수학이라는 존재.
철학적 탐구에서 언어게임을 설명한 뒤 66에서 정의에 대해 온갖 생각을 그만두고 가족유사성으로 접근해보자고 말한 건 유명한 문장임. 그런데 보면, 67에서 게임의 정의 다음에 두번째로 나오는 예시는 수number임. 생각해보면 수학은 언제나 철학을 홀리게 했음 - 플라톤 때부터.
한때 수학과 논리에 끌린적이 있음. 뭐라고 정확히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끌리던 와중에도 수학의 한계(?)같은게 느껴져서 계속 프렉탈이나 연속성같은 개념들에 몰두했던게 기억나네. 근데 결국 (내 입장에선) 헛수고였음.
결론적으로 내 입장은 구성주의(직관주의)에 가깝다고 봐야할듯함. 비트겐슈타인이 힐베르트 보면서 한 말 있지않음? 딱 그런 관점이라고 보면 될듯요. 공허함. 그렇다고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저속한 과학 대중 강연마냥 프렉탈의 신비를 떠들고다닐순 없다고 생각함 ㅋㅋ 유튜브보면 양자역학! 우주론! 하고 그런거 널렸지만
근데 비트겐슈타인이 마흐는 고사하고 후설을 읽기는 했는지를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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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너무 빈약하다.
수학관을 내가 문제삼는 건 너처럼 수많은 부분에 어떠한 졸렬함과 관점 문제로 두고, 논리에 대한 자연주의적 관점을 세웠을 때 수학이라는 존재가 어찌 되는지를 물어보고 있다는 것임. 연속성을 예를 들면 볼차노 바이어슈트라스 정리는 ACA_0 이차논리로 실제로 구성될 수 있는데, 이런 논리와 수학에서 한계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상의 문제를 다루는 것임.
만일 어떤 것에서 선제적이든, 선험적인 것을 잡지 않은 극적으로 natualized한 경우를 삼으면 수학의 문제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임.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이 힐베르트에게 한 말과는 전혀 무관함. 오히려 이 상황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완전성 증명 시도에 대해서는 나는 건드리지 않으며, 누구도 건드릴 수가 없다고 말했음. 공허할 수가 없음.
지금 아주 이상한 것이, 이렇게 자연화된 상황에서라면 적어도 내가 아는 콰인까지라면 수학에 대한 그 어떤 주류 수학철학도 세울 수가 없음. 구성주의와 가깝다고 넌 말해선 안되는 게 분명한데 그렇게 말해서 좀 이상함.
논리에 대한 너의 태도는 자연과학과 논리의 연계에 대해 해치는 것 같아. 특히 ramsification 같이 자연과학 용어를 이차논리로 옮길 수 있는 거 생각하면.
너가 하고싶은 주장을 요점만 간단하게 말해줄래? ㅋㅋ 너는 적어도 수학이나 논리학에 대해 나랑 다른 '신앙'을 가진거 같아서, 만약 무한이나 연속같은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면, 나에게 그 이유는 아주 빈약하고 단순한, 실용적인 이유에 지나지않아.
나는 애초에 이쪽 종사자가 아니지만, 그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개념들을 구성주의적인 입장으로, 위상으로 바라본다고 말하는 것 뿐이야. 그 사람들이 자기들의 과업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과 관계없이 말야. 일방적으로 내가 그렇게 본다는 뜻임.
https://en.m.wikipedia.org/wiki/Ramsey%E2%80%93Lewis_method
신앙은 좀 이상한 단어 같다만, 난 이걸 믿음.
나는 자연주의라기보다는, 수학이 근원적으로 가진 컨셉 자체가 너무 명확하게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하는거야. 너 얘기는 꼭 "수학이랑 현실이랑 잘 들어맞는거 어캐 설명할건데!"처럼 들림. 내 관심사는 "지금까지 한 건 인정, 근데 계속 운동하는 현재의 양상까지 수학이 포착가능?"에 있지. 나는 아니라고 보고,
종사자가 아니라 하기엔 졸렬하다고, 관점의 문제일 뿐이라고, 나한테는 연상이 실패했다고, 주장들이 뒤섞여 있다고 너무 많이 말한 것 아님? 여러모로 좀 많이 까이는 그레이엄 하만도 님이 말한 정도의 실수는 크게 없을 거임...
내 감상이 꼭 수학, 논리학에 대해 학술적인 경력을 가져야만 하는건 아니잖아 ㅋㅋ 내가 보기에 솔직하게 말한 것 뿐이야. 전혀 실수라고 느껴지지 않고, ㅋㅋ
아님. 경력은 아니지만 어떤 형태든지간에 학술적 태도는 필요함. 철학은 명확히 참 거짓을 나눌 수 없고 안다 모른다를 딱 나눠 말할 수 없고, 이 이유로 더 위험함. 당장 1번에 나온 상대적 절대적 가치부터만 해도 그 당시 아주 유행하던 담론이었다는 거를 알고 있어야 했음.
물론 한 사람, 여기선 철학자,에 대해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은 도출해낼 수 있겠지. 그런데 이 때 다른 사람의 의견은 어쩌면 그 사람 기준으로는 기를 써서 쓴 논지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음. 급소를 찌르던 정공법을 쓰던, 님은 의견을 남길 때 아무래도 진지해야 하기는 해야 하지 않겠음...?
일방적인 니 주장에 불과함. 그렇게 엄밀하게 글쓰기를 하고싶으면 대학가서 해. 왜 디씨에서 그걸 강요하냐 ㅋㅋ 나는 혹시나 저 책 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감상 맥락을 알고 싶어할수도 있겠다 싶어서 쓴거고, 그정도의 목적은 달성했을거라 생각해
남의 감상문에 빈약 운운하면서 얄팍한 호승심도 통제하지 못하는데, 남에게 뭔가 지적하기전에 스스로 돌아보길 바람.
자기랑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이 가진 감상문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현학적인 단어로 시비걸지 않는게 너한테는 "눈물을 억제하거나 분노의 폭팔을 억제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어려워보이네.
ㅇㅈ ㅋㅋ
그 뭐시냐, 여기가 학술 공간도 뭐 이리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의문을 들 법도 한데. 물론 여기야 디시기에 가볍게 서로 의견이나 담소를 나누지만, 적어도 어떠한 본인 생각을 표명하고자 할 때, 그 한계가 무엇일지 염두에 두고 써놓으면 편함. 뭔뜻이냐면, 이러한 문제는 생각보다 실로 복잡다단하거든. - dc App
보통은 그냥 가볍게 이런 생각했는데 학술적인 논증까지 끌고와야 하나 싶겠지만, 그 정도로 가볍게 끝날 주제가 아니기 때문임. 그래서 주장하는 글을 써낼 시, 본인 입장의 한계가 무엇일지도 공유한다는 느낌으로 접근하면 좋음. 상대가 님 생각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에 따라나오는 문제들로 반박하는 거. - dc App
비판은 누구에게나 쉽지
댓글과 비슷한 생각하면서 글쓰는데 매우 공감한다. - dc App
아 ㅋㅋ 꼬우면 자기가 글쓰라고
윤리학은, win-win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win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내릴 수가 없다고 말하고, 그러니 침묵하라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