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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 다 너무 좋았음
채식주의자 편은 정말 공감이 많이 가서 좋았는데
'주인공 이 정도면 정상 아닌가'라는 마음에서 공감이 간게 아니라
'내가 미친다면 이렇게 미칠 거 같다'는 심정에서 주인공의 말과 행동이 왜 그랬는지 이해갔던거 같음

몽고반점 편은... 그냥 아름답다고 느껴졌음
황금빛과 붉은색의 꽃들이 어우러져 섞이는 장면이 눈 앞에 계속 그려졌음
J와 영혜가 얽힌 모습을 '흡사 거대한 식물들의 교합과 같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이라고 한게 제일 인상 남았고...
'그의 성기는 거대한 꽃술처럼 그녀의 몸속을 드나들었다.' 이 부분도. 너무 감각적으로 잘 그려냈다고 생각함

나무불꽃은 채식주의자에서 드러난 어둡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다시 두드러지되 한층 더 기괴했던거 같음
특히 어두운 비오는 숲에 혼자 서 있었던거, 또 아무것도 보고 듣지 못한 채 물구나무 서 있는거...
이쯤 되니 진짜 사람이 아닌거 같았음

그리고 내가 가끔 하던 생각이라 소름돋았던 부분
아무리 채식으로 폭력의 인습을 끊어내려 해도 결국 나도 그 폭력의 본능을 갖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동물' 인걸 언젠가 깨달아 버리는 거임
정육점을 지나갈 때마다 침을 흘린다는 영혜처럼...
자신을 문 개가 잔인하게 죽어가는 현장을 보고도
'꼴 좋다'며 끝까지 쏘아본 어릴 적의 영혜처럼
태곳적의 본능을 타고 지닌 자신마저 용서하지 못하게 되는거임

그래서 내장이 다 퇴화되고 말도 생각도 안하게 되는 식물화를 선택하게 된다는게...
은연중에 하던 내 망상이랑 비슷한 점이 있어 좀 놀랐던거 같다
난 식물화가 아니라 죽음 쪽을 상상한거지만...


아무튼 이 책 자체가 호불호가 정말 많이 갈린대서 호기심으로 읽어봤는데 난 너무 좋았음 (개인적으로 소년이 온다보다 더...)
독갤은 오래 했지만 책을 읽고 이렇게 진지글 써본적은 없었던거 같은데 이게 처음인거 같음
재밌었다 굿 (끝)




추가) 그냥 단순 감상 기록용이라 어수선한 감이 있어서
댓글도 많이 달렸으니 내가 느낀 바를 좀 더 정리해서 써보겠음. 너무 진지하게보단 말하듯이 편하게 써볼게

세 연작을 아우르는 주제가 뭔지 한번에 와닿는게 쉽지 않은거 같은데
나는 영혜의 인식변화에 따라 같이 변모하는 지향점,
혹은 이상(理想)... 이라고 생각했음
여기서 지향점의 변화는 채식->식물화 임

첫 편에선 영혜가 이상해진 원인이 가족과 남편 등 사람에 의한 가학과 폭력의 누적 때문이라고 쉽게 짐작케 함

근데 중각중간 핀트가 빗나간 듯한 문장들이 계속 나옴.
남인지 나인지 모를 피칠갑 된 얼굴, 동물들을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 잔인하게 죽던 개를 아무렇지 않게 보던 나, 뾰족해지는 젖가슴,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물어뜯긴 새의 사체까지...
그냥 정신이상자의 의식을 써재낀거라고 하기엔 이상할 정도로 집요함.
그래서 영혜도 싸이코라는 거임 뭐임? 이라는 생각이 듦

몽고반점에서 그걸 짚고 넘어가는 부분이 나옴.
꿈에서 나오는 얼굴들... 여태 그게 고기 때문인 줄 알았으나 사실 그건 자신의 뱃속 얼굴, 자기 뱃속에서 올라온 얼굴이었다는 걸 술회하는 장면이 나옴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에서 나온 이 말들을 종합해볼때 결국 영혜도 폭력성을 깊이 품고있는 '동물'에 지나지 않다고 할 수 있음
숱하게 휘둘러진 폭력 때문에 뱃속에 내상을 품게 됐지만
그것도 곧 적개심과 본능으로 가득 찬 또다른 폭력이라는 것

몽고반점에서 꽃으로 가득 칠해질 때에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얻고 나쁜 꿈도 꾸지 않게 됨.
아무리 채식을 한들 그건 '채식을 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던 것에 비해 정말 식물이 되는 듯한 기분은 다른 느낌이었다는 것.
이때 영혜 나름대로의 각성을 하지 않았나 싶음

그리고 나무불꽃 편
여기서 영혜는 병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해보임
원무과 직원이 언니와 영혜를 보고 누가 환자냐고 물어볼 정도로 또렷한 눈빛을 가진 영혜였음
그런 영혜가 병원에 처음 들어와서 창밖을 보곤
"응... 여기엔 큰 나무들이 있네."
"여기서도 나무들이 보이네"
"언니.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하며 말하는 것이 오직 나무얘기 뿐. 나무의 어떤 특성이 영혜를 자극한 것.


살아있는 동물들은 연명을 위해선 먹이사슬을 이루고 서로 먹고 먹힐 수밖에 없음
그에 반해 영혜 눈에 나무는 서로 착취하고 억압하지 않아도 같이 살아갈 수 있는 '형제'로 보였다는 것...
저것이 진짜 폭력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함
이 장이 끝나고 바로 나무를 흉내내며 정말 이상해져버린 영혜의 모습이 나옴.

사람들의 폭력성. 자기 자신 또한 가진 그것이 응축된 내장을 꺼내버리고 식물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음 채식주의자는
물론 관습의 저항이나 욕망 등 씹고 뜯을 이야깃거리가 더 많은 소설인데 난 폭력이라는 주제에만 초점을 맞춰 생각해봤음

그냥 내 생각이다 이말이야
왤케 길어졌냐 ㅠㅠ 암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