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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중세사. 그런데 그걸 공부하던 중, 어떤 갑갑함을 느꼈다. 대부분의 중세 문서는 국왕 통치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계속 반복된다. 문득 그걸 깨뜨리는 사건을 역사에서 접하고 싶어졌고, 충동적으로 서점에 가서 혁명이란 키워드가 담긴 책을 골라잡았다. 이 책은 그렇게 산 책이다.

솔직히 프랑스 혁명, 이란 단어를 접했을 때 좋은 느낌이 들지만은 않았다. 이미지적으로 서늘한 단두대의 칼날이 떠올랐으니까.

저자가 공산주의에 몸담았다는 약력란의 소개는 무의식적으로 불편함을 불러일으켰다. (솔직히 말해 알베르 소불이 얼마나 거장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그러나 책을 펼친 후 나는 마법처럼 혁명의 서사에 빨려들어갔다.

생각보다 프랑스의 구체제는 불합리했다. 봉건제는 없어진지 오래인데 왜 봉건세는 남아 있는가? 왜 성직자는 저 모양이 되어버렸는가?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모순이 비로소 다가왔다. 그리고 모순에서 벗어날 방법은 극히 드물다는 것도. 여기까지 오자, 마치 불합리한 천망(天網)이 죄인도 아닌 사람을 틈 없이 옥죄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프랑스 혁명을 일관적으로 '혁신'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니다. 혁명기에도 해결되지 못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며, 혁명기의 끔찍한 사건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으니까. 그보다는 혁명에 대한 인식이 박제에서 풀려났다, 가 정확한 설명일 것 같다.

피상적으로 배울 때 프랑스혁명은 마치 신화 같았다. 혁명지사가 게오르기우스마냥 사악한 구체제의 용을 물리치고 개선하는.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프랑스 혁명 또한 지극히 '인간의' 혁명임을 느꼈다.


비웃으면 안됨을 알면서도 피식거렸다. "전 프랑스의 행정구역을 직사각형으로 구획하자"는 부분에서. 판사가 선출직이었단 대목에선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데에서 반혁명군을 학살했다는 대목에서는 분노했다.

이들 또한 사람이었고, 사람의 고질, 비이성, 공포, 불합리 등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했음이 느껴졌다.

도대체 왜 이 지점에서 역사는 퇴보로 방향을 트는가? 역사의 진보라는 사관을 굳건히 믿던 과거의 나는 그런 부분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를 인간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이야기의 총체로 파악하자,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합리와 불합리, 명예와 추악함, 진보와 퇴보를 수없이 오고가는 프랑스 혁명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은 차별받지 않는다. 여성과 흑인은 인간이다. 여성과 흑인은 차별받지 않는다.
이 단순한 삼단논법도 프랑스 대혁명기에는 결국 적용되지 못했다. 프랑스혁명은 인간의 한계까지 섞여들어가서 만들어진 인간의 혁명이었기에. 진보를 일궈내는 게오르기우스가 해낸 혁명이 아니라, 때론 지극히 추악한 인간의 혁명이었기에.

프랑스대혁명을 생동감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단 건 이런 맥락이다. '신과 동물 사이의 존재'인 인간의 이야기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라는 <두 도시 이야기>의 첫머리도, 그제야 온전히 다가왔다.

프랑스대혁명에 생기를 불어놓고 바라보자, 여러 감정도 들기 시작했다. "조금 더 좋게 진행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반대로 대단하다는 심정이 양가적으로 들었다. 마치 칠삭둥이를 9달까지 품은 후 갑자기 열려 버린 인큐베이터를 바라보는 것 같다.

그래도 종합적으로는 대단하다는 감정이 더 많이 들었다. 크게 살펴볼 때, 분명 프랑스 혁명은 '동물 쪽으로 향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아니었으므로. 좌충우돌하긴 하였지만 최소한 불합리한 천망(天網)을 찢으려는 인간의 시도의 총체였으므로.

마치 혁명이 아무 의미도 없는 사건이었던 양 폄하하는 명예 프랑스 국왕들의 행태는 그래서 솔직히 질색이다. 당대인들에게 프랑스 공화정이란, 마치 현대인들이 "인권효력정지"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충격과 같았을 것이다. 즉 그 날 세상이 깔끔하게 뒤집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세계인들이 공화주의란 형태로 누리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혁명의 비 앞에 서서 모종의 고마움을 느낄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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