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유롭게 사는 것에 대해 자기기만이라고 자기합리화라고 말하면서 나를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하는 것.

자기기만이나 자기합리화의 여부는 오직 자기자신만 알 수 있는 것인데 그걸 타인이 더 잘 안다고 자기 말을 들으라고 너는 너 자신을 모르고 외면하고 회피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나보다 나를 더 위한다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하라고 말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인 동시에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특징인 것이다.

내가 왜 자기기만이나 자기합리화나 이런 말을 싫어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말로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가스라이팅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진짜로 포도를 먹고 싶지 않아서 안 먹는 것과 먹고 싶은데 못 먹어서 합리화하는 것. 이 차이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가스라이팅을 하는 자기계발서들은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질이 정신(혹은 현실)을 결정한다는 것이 유물론이라면 자기계발서는 정반대로 정신이 물질(혹은 현실)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신을 어떻게 바꾸느냐(자기계발)가 성공을, 더 나아가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아들러는 자기계발의 아버지이자 원류로서 이런 정신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인간은 원인과 결과에 따르는 유물론적 존재가 아니라 수단과 목적에 따르는 정신론적이고 목적론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자기합리화라는 것은 전형적인 목적론적 사고방식이다. 먹을 능력이 없으니 신포도라고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이렇게 목적론적으로 바라보면 많은 것들이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한 수단인 것처럼 보이고 그 목적은 대체로 안좋은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잔머리를 굴려서 게으름을 피운다는 것인데 자기계발은 이런 인간의 무의식적 목적을 위한 행동이나 심리를 바꿔서 성공과 발전, 성장과 확장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일단 성공이나 발전, 성장이나 확장을 왜 해야 하는지부터가 가스라이팅 냄새를 진하게 풍기지만 백보 양보해서 그게 맞다고 쳐도 내가 어떤 행동을 무의식적 목적을 가지고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그 문제가 남는다.

자기계발서의 가스라이팅은 이 부분에서 아주 단호해진다. 인간은 누구나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그거야말로 자기기만이고 자기합리화라는 것이다. 마치 삼단논법처럼 인간은 모두가 죽는데 당신도 인간이니 당신도 죽을 거라는 식이다.

이것은 세가지 방향에서 자유를 억압하고 타인을 조종하려는 가스라이팅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자기계발서는 그들이 직접 목표를 정해준다. 성장이나 발전, 변화나 확장, 성공 등등. 둘째 자기계발서는 사람들이 이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자기기만이나 자기합리화같은 무의식적 목적을 위한 행위나 심리 때문이라고 한다. 셋째 자기계발서는 무엇이 자기기만이고 자기합리화인지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우선 나는 성공이나 변화, 성장이나 발전, 확장같은 그들이 정해준 목표를 거부한다. 그러기 싫기 때문이다. 내 삶의 목표는 내가 스스로 정한다. 그리고 나는 애초에 자기기만이나 자기합리화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건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긍정적인 성격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차피 능력부족으로 포도를 못 먹는 상황에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다. 셋째 내가 자기합리화를 하는지 아닌지는 나만 알 수 있다.

이 세가지 자유를 부정하면 사람은 자기 스스로 목표를 정하지도 못하고 하고 싶을 때 전략적으로 자기합리화를 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내가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한마디로 자기계발서의 가스라이팅은 사람에게서 자기확신을 빼앗아가고 사람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 왜? 자기 마음대로 타인을 조종하기 위해서.

자기계발서의 가스라이팅은 관계주의에 이르러 정점에 달한다. 이들은 자기확신 자체를 자기중심적인 나르시시즘이라고 도덕적으로 인성비판을 하고 자아 자체가 타인에 의해 정체성이 결정되는 것이니 타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말을 듣지 않으면 꼰대가 되고 열려 있지 않고 닫혀 있는 고립된 자기자신에 함몰된 폐쇄적인 나르시시스트가 된다고 아주 악담을 퍼붓는다.

그냥 내 맘대로 자기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저렇게까지 도덕적으로 욕먹을 일인가. 관계주의라는 가스라이팅 담론에선 명백히 그렇다. 용기의 자기계발도 마찬가지다. 아들러의 영향을 받아 모든 인간의 행동을 무의식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해석하고 결국 비겁한 겁쟁이의 자기기만과 자기합리화라고 판결을 하는 것이다.

용기의 자기계발이든 관계주의든 이런 가스라이팅 담론에 걸려들면 웬만해서는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들은 모든 반론을 자기합리화 취급할 것이고 무의식적 목적을 위한 자기방어라고 말할 것이다.

자기방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대체 자기방어가 왜 나쁜 것인가. 누가 때리면 방어도 안하고 맞고만 있어야 하나. 자기방어가 나쁜 경우는 딱 한가지다. 바로 상대방이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을 때. 가스라이팅이 안 먹히니까 자기방어를 하지 말라고 말하는 거다. 즉 자기를 방어하지 말고 순순히 가스라이팅을 당하라는 거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가사를 인용해서 한마디 해줄 필요가 있다. 'fuck you i won't do what you tell me'.

나는 내 마음대로 살 자유가 있고 이걸 싫어하는 건 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당신들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내 맘대로 사는 게 싫어서 가스라이팅까지 하려고 하는 것은 더욱 더 문제가 큰 것이다.

왜 남이 자유롭게 사는 꼴을 못 보는가. 나는 자기계발이나 관계주의같은 가스라이팅 담론이 다 이걸 못해서 생겨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인류애로 무장하고 도움을 준다고 진정한 삶을 알려준다고 설교를 하고 훈계를 하지만 사실은 그저 남이 자유롭게 사는 꼴을 못봐서 그런 것이다. 그리고 남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권력의지를 가지고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이다.

남이 자유롭게 사는 꼴을 못 보는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남을 자기 맘대로 조종하고 싶은 권력의지가 먼저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남에게 가스라이팅을 할 자유는 없다는 거다. 타인의 자유를 억압할 자유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가스라이팅이 아닌 담론은 기본적으로 자기결정권을 남겨두고 자유롭게 살 권리를 인정해준다. 인간의 기본적인 자기결정과 자유로운 선택, 즉 자유 자체를 공격하는 담론은 전형적인 가스라이팅 담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