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념글의 인문학은 쓸모없는가?라는 글을 읽고 든 생각(장문)"을 읽고, 약간의 책임감이 들어 의견 남깁니다 :)
본론만 보실 분은 3번부터, 요약만 보실 문은 맨 아래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타임라인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저는 201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다른 모 커뮤니티에서 논쟁을 벌이던 중 인문학의 효용에 관한 글을 썼고, 이를 제 블로그(begray.tistory.com)에도 옮겨두었습니다(그때는 거의 학술적인 글만 올리는 이 블로그가 이렇게 오래 운영될 거라고도, 또 디씨 독갤에서 이런 포스팅을 찾아주실 분이 있을 거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네요).
그 뒤 엊그제 어떤 분께서 해당 포스팅이 흥미롭다고 생각하셔서인지 디씨 독갤에 그 내용을 (댓글 대화를 첨부하여) 올려주셨습니다: "인문학은 쓸모없는가?"가 그것입니다. 저는 공개된 블로그 포스팅은 비상업적 용도라면 어디로 퍼가든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 개의치 않았는데요, 아무래도 제 글이 적당히 허술해서인지 비판적인 논평이 붙은 걸 방금 알게 되었습니다.
2. 보통은 이런 경우에 그냥 이런 일이 있구나 하고 지나갑니다. 이번에는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독갤에 포스팅을 남기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박사과정 코스웍을 갓 시작한 2014년 이후 저는 한편으로는 본격적으로 전문연구자로서의 훈련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와 함께 대학과 학계의 작동방식을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유의미한 경험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성사·학술사 분야의 연구들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또한 직접 타 분야 전공자들과 공동작업을 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분과학문 사이의 관계도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할 일이 생겼고요.
2) 1의 결과로 인해 현재 저는 인문학 논쟁에 관해 2014년 포스팅을 쓸 때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저는 2014년 포스팅과 같은 방식으로 논쟁에 접근하는 게 그다지 생산적이지도 정확하지도 않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좋든 싫든 제가 과거에 썼던 글을 출발점으로 인문학의 효용에 관한 대화를 나누시는 분이 있다면, 지금의 제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간단히 의견을 밝힐 책임이 있다고 느낍니다.
3. "인문학은 어떤 효용이 있는가? 그것은 다른 분야와 동등한 지식/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사실 그 자체로는 꽤 혼란스러운 논의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지적 영역이 서로 다른 층위들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영역은 모두 "인문학(적) 분야"로 지칭됩니다(편의상 저는 여기서 인문학에 인접한 특정 사회과학 영역을 포함하는 말로 '인문사회'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a) 이른바 문사철을 포함해 전문적인 지식으로서의 인문학 연구(당연하지만 문학, 역사학, 철학 모두 전문연구와 교양지식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b) 부분적으로 3a의 파생물로서, 과학기술을 비롯한 인문학 외부의 학문분과에서 연구자들의 필요에 따라 인문사회적 지식/접근법을 받아들여 나타나는 전문연구(대표적으로 과학사/과학기술학 연구 등)
c) 교양지식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영역으로서의 인문학
인문학의 쓸모 논쟁 대부분이 그렇게 흘러가고는 합니다만, 이 세 가지 영역에 대한 구별이 없이 논의를 전개한다면 누구는 a를 이야기하는데 다른 누구는 c를 이야기하는 식의...모두가 자기 이야기 하다가 끝나는 대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건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4. 먼저 3a, 즉 전문지식으로서의 인문학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선 오늘날 심지어 인문학자들에게까지 널리 퍼져있는 오해를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과거에는 (철학 중심의) 인문학에서 모든 영역을 포괄했으나, 근대와 함께 각각의 전문적인 영역을 나누는 분과학문이 독립해나가면서 남은 것들이 오늘날의 인문학이다"라는 식의 믿음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서구 학문의 역사를 상당히 잘못된 방식으로 단순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 지식/학문 간 영역 구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중세 지식인들도 법학, 신학, 의학이 서로 다른 지식이라는 생각은 할 수 있었습니다!), 대략 17세기까지 인문주의자(humanist)라 불릴 수 있는 지식인 집단이 포괄적으로 다루던 여러 지식이 특히 19세기부터 고유한 학문분과로 나뉜다는 큰 흐름은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이상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건 이 주제가 영어권 학계에서도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수십 년 간 17세기 인문주의 연구는 그래도 엄청나게 많이, 또 깊은 수준으로 나왔는데, 19세기부터 분과학문이 성립하는 역사적 과정은 1980-90년대에 조금 이야기가 나오다가 더 진전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흐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근대적인' 인문학 분과학문 자체가 다른 과학기술·사회과학 영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18-19세기 대학의 분과학문성립 과정에서 탄생한 '전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인문학에서 다른 전문학문들이 갈라져나와 비전문적인 인문학만 남은 게 아니라, 19세기를 전후로 대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문분야가 본격적으로 성립하면서 근대의 전문분야로서의 인문학 역시 성립하게 된 것입니다(예를 들어 우리가 역사교과서에서 한번은 이름을 접하는 랑케는 19세기 '근대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을 정립한 것으로 간주되는 인물입니다).
물론 이 과정은 일반적으로 정리하기 쉽지 않습니다만(대학마다 학문 편제나 교수 임용도 제각각이었으니...), 이러한 학문분과체제가 성립하기 시작한 이래 19-21세기까지 각각의 인문학들은 수 차례 전문화의 계기들을 거치게 됩니다. 19세기 후반부터의 가장 큰 도전은 자연과학-사회과학 방법론의 도입을 둘러싼 격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20세기 중반에는 미국 대학에서 "프랑스철학"이나 "포스트이론"으로 넓게 불리는 지식들이 '전문화'의 한 가지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보통 문학연구의 비합리성(?)을 고발하는 타깃으로 꼽히는 프랑스철학적 문학독해...는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대학 영문과의 전문화과정의 한 결과물이기도 한 것입니다.
전문분과로서의 인문학의 효용은 일반적으로 논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인문학 분과 외의 다른 전문영역이 인문학 연구의 영역을 대체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연과학/심리학의 발달과 함께 철학의 일부 영역이 과학에 빼앗겼다...는 예시가 많이 나오는데요, 반례를 들면 역사학은 자연과학이나 공학이 아무리 발달한들 대체가 안 됩니다. 역사학자들이 과학기술자들이 만든 지적 도구를 가져다 쓰거나, 그걸 역사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예는 계속 나오겠지만요. 반도체 연구가 곧 지역학을 대체할 수도 없고요. 이건 학문 간 우열과 별 상관이 없고요, 그냥 전문화란 것이 원래 하던 영역을 더 깊게 파고들어가는 쪽으로 작동하지 계통이 다른 분야를 대체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문분과로서의 인문학의 효용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문학을 통칭하는 대신 개별 학문으로 들어가야 하고요, 각각의 학문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필요한가 아닌가를 검토해야 유의미한 대화가 가능합니다.
5. 3b에서 언급한 영역, 즉 비인문학 분과에서 인문(사회)학적 접근법을 채택하는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단히 예를 들면, 컴공에서 만렙을 찍는 연구자인 것과 컴퓨터 공학의 역사에 관해 전문역사가들의 수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건 완전히 다릅니다. 과학기술자들이 STS나 과학사의 성과에 냉소적일 순 있겠습니다만, 그들이 과학기술 분야에 대해 철학적·사회적·정치적·역사적...등등의 메타적인 성찰을, 혹은 그러한 영역들과 과학기술이 결합하는 양상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능력은 없죠. 지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해당 분과학문이 그런 걸 연구하는 도구를 제공하는 게 아니니까요.
좋은지 나쁜지를 떠나, 한국 학술장/지식장에서는 아직 특정한 학계나 지식의 생산-작동방식을 논의하는 연구자들 자체가 많지 않다보니 이쪽 이야기는 과사철에 어느 정도 베이스가 있는 분들을 빼면 인문학 논쟁에서 잘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인문학 본진(?)의 쇠퇴와 별개로, 비인문학 분과들의 발전이나 전문화 과정에서 메타적 논의를 위한, 혹은 상이한 영역들의 접합을 다루기 위한 지적 도구로서 인문사회적 접근법의 효용은 늘면 늘었지 줄어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한국의 학자들과 연구행정가들이 이 사실을 깨닫느냐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6. 3c, 교양지식으로서의 인문학을 논의하기 위해 먼저 짚어야 할 점은 대학의 "교양지식" 또한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서로 연결되어는 있으나 상이한 영역들을 지칭한다는 사실입니다. 간단히 구별해보면,
a) 인간/시민으로서 바람직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
b) 전문 분과학문을 습득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
c) (6a-6b의 파생물로서) 각 학문분과의 요소를 필요에 따라 결합하기 위해 요구되는 기본적인 지식
정도가 있겠네요. 이중 인문학의 효용과 관련된 것은 주로 a와 c겠습니다. 제 생각에 이 영역의 필요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해 읽고-생각하고-쓰기로 통칭되는 정보의 습득-검토-생산-소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앞으로의 교육에서도 여전히 필요하며, 인문(+사회) 분과 외의 대부분의 분과학문은 이 역량을 기본으로 전제하지 이것 자체를 훈련시키는 과제를 맡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통계적 지식, 코딩 능력 등이 이런 커리큘럼의 중요한 영역으로 포함될 수는 있겠지만, 기존 교육과정을 대체할 수 있는 성격의 지식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한 명의 인간/시민에게 정확히 어떤 유형의 지식이 얼마나 요구되는가의 문제는 개별 전문분과의 지식으로 깊이 있게 논의될 수 있는 주제가 아니기도 합니다.
물론 한국 대학에서 고유의 정합적인 교양교육 모델을 구축한 예는 매우 희귀하며 (최근 많은 대학들의 교양학부/자유전공학부 설립과정을 봐도 알 수 있지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한국에서 인간-시민-직업인에게 정확히 어떤 역량과 교육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이 깊이 있는 수준으로 다뤄진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교양교육은, 그리고 거기에 포함된 인문학적 지식의 효용은 낮게 평가되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 필요성 자체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나 개개의 사회구성원에게 더 많은 지식을 처리할 것을 요구하는 현재의 발전방향을 고려하면 말입니다.
7. 위 모든 이야기에는 공통된 전제가 하나 깔려 있습니다. 이른바 인문학적 지식의 여러 유형이 어떠한 필요성을 가지고 있느냐와, 현실의 한국 인문학계가 그러한 필요성을 충족시키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인식입니다.
간단히 말해 인문학 분야 업계인(?)으로서 저는 한국 인문학계가 스스로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저만의 생각이 아니고, 제 또래의 어느 정도 비판적인 연구자는 물론, 이제 한국 인문학계 중추에 있는 선생님들도 점점 인정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다만 이제껏 한국 학계에서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다뤄본 예가 별로 없기도 하고요(한국 대학에서 근대학문이 성립한 건 기껏해야 수십 년이죠), 또 아직 이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인문학의 지분이 급격히 감소하는 시기를 맞이했기 때문에 충격과 공포, 비관론이 널리 퍼지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충분히 입장을 암시했다고 생각하는데, 학문의 역사와 분과학문체제를 더 깊이 이해할수록, 또 사회발전과 전문지식의 관계를 더 깊게 생각할수록 지금까지 인문학 분과에 요구되었던 지적인 과제들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 거라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사회가, 연구자들이 어떻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요.
5줄 요약:
1) 인문학 쓸모 논쟁을 하려면 먼저 "인문학"이란 말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따져봐야 함, 안 그러면 서로 헛발질만 하기 쉬움
2) 전문영역으로서의 인문학의 쓸모를 이야기하려면 분과별로 파고 들어가서 거기서 나오는 지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따져봐야 함, 인문학 일반으로 논의해봐야 죽도 밥도 안됨
3) 비인문학 분과학문의 발전과정에서 인문사회적 접근법의 필요성은 급격하게 늘지는 않더라도 줄어들 것 같지는 않음
4) 교양지식 영역에서 인문학 분야의 역할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다른 분과학문지식은 그런 용도로 발달한 게 아니기 때문임.
5) 인문학의 쓸모/필요성과, 현실의 인문학계가 잘 돌아가고 있는가는 별개인데, 후자가 별로라고 전자도 필요없다고 하기는 곤란.
책 얘기 없는 인문학 글 멈춰~
앗 너무 오랜만에 독갤에 오다보니 실수했네요 ㅠㅠ 혹시 본문 내용 관련해 읽을거리를 필요로 하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에서 답변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갈음해도 될까요?ㅠㅠ
음.. 일단 전에 올라온 인문학 글들을 봤으면 진즉에 잘렸겠지만 못봐서 여기까지 온거라 생각해서, 일단 이 글은 냅두는걸로 하겠음. 다만! 이 이후에 올라오는 책 얘기 없는 인문학 글들은 누구든 상관없이 전부다 삭제 대상. 관련 읽을거리(책)은 하면 좋고, 안해도 넘어가는 걸로..
감사합니다! :)
인문학 쓸데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굳이 이렇게 반박해야하나?
그 문제는 사실 개인 판단의 문제니 이런 글 하나로 반박이 되고 말고의 이야기는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ㅎㅎ 그냥 이 주제를 좀 더 명료하게 이야기하기 위한 시도 정도로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헉 제가 쓴 글이네여;; 먼저 그냥 디시에서 아무렇게나 갈긴 뻘글을 전문 연구자분이 보신다니 매우 창피하네여ㅠㅠ 다만 제가 글의 첫문단과 댓글에서 밝힌 것과 같이, 인문학이라는 학문의 효용성에 대해서 논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인문학이라는 학문은 충분히 중요도를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현대사회에서 과소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적한 부분은 이 글에서 c분야, 교양지식의 분야에 한정해서 한 이야기고, 그 안에서도 교양지식의 학습 자체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닌, 교양지식이 과연 다른 학문에 비해 글에서 지적한 사고의 확장을 할 수 있는가? 라는 부분에 대해서 글을 쓴 것입니다.
넵, 저도 반박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고 공격할 의도도 없습니다! :) 이 주제를 논의할 때 어떤 전제를 놓고 출발하는 게 그래도 덜 혼란스러울 수 있는가, 정도를 공유하기 위한 글 정도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제목을 명료하게 짓지 않으면 이사단이 남
질문이 있는데요 과학의 발전을 견인한 학자들이 과학사 연구나 신기술에 대한 사회-정치적 성찰에 필요한 자질이나 도구를 갖추지 못한다는게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당 분야 전문가만이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인과가 존재할 경우도 있지 않나요?
말씀하신 내용은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인데요, 현실은 그래서 역사가가 해당 분야 전문가 논의를 따라갈 수 있을만큼 공부를 하거나(스키델스키의 케인즈 전기), 해당 분야 백그라운드가 있는 사람이 메타적인 툴을 공부하는 쪽으로 테크를 타거나(주로 과사철/STS 계열 전공자들)...로 가게 되는 듯 합니다.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논리를 정리하면, a)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인과에 대한 지식 이 b) 해당 필드의 메타적인 분석을 하기 위한 지식 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a가 곧 b를 대체할 수는 없고, 따라서 b를 위한 전문적인 지적 도구를 따로 훈련받을 필요가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ㅎㅎ
그렇다면 사실
https://begray.tistory.com/m/176
에서 말한 것, 그리고 도덕감정론을 언급한 내용은 이 글과는 별로 충돌하지를 않는 거 같네요? 맞죠?
충돌한다기보다는 6a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저 때는 제가 18세기 지성사 공부를 시작하기 전이라... 지금 쓴다면 저렇게 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