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참 할 짓 없군. 살아가면서 변화는 없고, 있다고 한다면 하루가 멀다 하고 골병 드는 신체.... 날로 쌓여가는 미세먼지와 여기저기 자행되는 지구 온난화. 치매 오기 전에 업적을 세우고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지긋지긋한 세상이 자멸하고 싶다는 신호를 주고 있다. 바싹 말라비틀어져 결국 가루되기 전에 여행 한 번 떠나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발전적이고 고전적인 이유가 아닌, 꼭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어서 떠나는 여행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자키 쓰쿠루의 여행. 그 이름은 책 제목에도 있다. 제목은 다음과 같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씨팔. 읽는 것만으로도 한 세월이다. 여행을 갔다온 느낌도 있다. 어디를 갔다온 느낌일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루과이? 홍콩? 아니면 국내 여행? 어쩌면 화장실?!!!
여행이 정의는 모호하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확실한 것은 모두 재미없다. 같은 장소를 매일 방문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여지없이 재미를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어떤 것도 불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본능적으로 확실한 것을 추구한다. 그런데 변태처럼 불확실한 것을 추구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확실한 것으로 돌려놓는 과정이 때떄로 그립기에. 익숙하기에. 직소 퍼즐이 판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게 처음 출시됐을 땐, 누가 일부러 어질러뜨리고 정돈하는 걸 원할까 하고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의심받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잘만 팔리고 있다. 어쩌면 깊은 곳에서부터 모두가 그런 것을 원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다자키 쓰쿠루가 떠나는 여행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자신의 기억 속 마무리되지 않은 것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더 깊이 들어가보자면 대학 생활을 하며 원인 모를 이유로 자신을 손절했던 친구들에게 질문하기 위해, 왜 나를 왕따시켰냐고 찌질하게 묻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는 작품 속에서 그것을 원치 않는 척 보이지만, 자신의 여자친구가 그것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더이상 섹스해주지 않겠다고 협박해서 떠나게 되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우리는 한 발짝 뒤로 가서 전체적인 틀을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러면 알 수 있다. 다자키 쓰쿠루가 여행을 원하는 것을. 왜냐하면 다자키 쓰쿠루는 저자의 투영된 자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것을 원하고 있다. 섹스 머신 하루키는 일전에 에세이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대학 시절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절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애초에 이런 소설을 작성하게 된 것도 그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서, 어질러진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인 것이다.
쓰쿠루는 어질러진 것을 정돈하기 위해 떠났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어쩌면 여행 유튜브를 보는 것보다 발전된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시각 매체보다 뛰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섬세한 감정 전달이나 개인적인 입맛에 맞는 상상 등의 측면을 보면 분명 우월한 점이 여럿 발견된다. 만일 자신이 여행을 가고 싶은데 여건이 맞지 않아서 갈 수 없다고 한다면, 다자키 쓰쿠루가 섹스 파트너가 주는 빌미로 떠난 여행 일지를 염탐할 필요가 있다. 어디에서도 가능하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그러니까 화장실로 여행을 떠나자는 것이다.
소설의 분위기는 다소 몽환적이고 뭉클하다. 잠을 자고 있는지 의심케 하는 느낌도 있다. 평균적으로 잠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는 좋은 정보일 것이다. 자기 직전에 스마트폰 대신 책을 펼쳐놓고 있으면 딱 잠에 빠져들기 좋은 환경을 유연하게 형성시켜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레슬링 선수가 UFC로 진출하는 기이한 현상을 설명해준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자키 쓰쿠루가 이동하는 지역을 따라 나도 따라 여행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손절당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을 떠올리면서, 이미 다 읽었다면 책 속의 내용을 복기하면서 작중에 나온 일본 지역을 걸어댕길 수도 있다.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겠냐고 묻고 싶으면, 축구화를 신고 백화점 퍼즐 판매대에서 마음껏 태클하길 바란다. 경비로부터 레드 카드를 받지 않게 유념하길.
보통 퍼즐은 만 원 정도 하지만 VR퍼즐은 오 만원까지 껑충 뛴다. 최근에 오큘러스를 구매해서 퍼즐을 많이 풀어본 나는 잘 알고 있다. 절대 야동을 보려고 VR을 구매한 게 아니니 기억해둬라. 아무튼 가격대가 높게 형성된 VR퍼즐을 넘어선 증강 현실로 이루어진, 뭔가 포켓몬GO의 콜라보 같은 것에 대해서는 품질 대비 가격대가 현저히 낮다. 이것이야 말로 창조 경제가 아닐까 싶은 만큼이다. 한 번쯤 구매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게임과 달리 환불은 불가능하니 유의하기 바란다. 그런데 언제라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어쩌면 헤르메스의 신발 같은 것이니 한 번 사놓은다고 닳아지는 것도 아니고, 꽤 좋은 투자이지 않을까? 이것은 나 같은 이간질잽이처럼, 일본에 갔을 때 여행 책자가 될 수 있고, 사그라들어 있던 여행에 대한 의지의 불을 키워주는 심폐 소생술이 될 수도 있다. 가정집에 AED(자동심장충격기) 하나가 있으면 얼마나 안정적일까? 방금 네이버에 검색해봤는데 가격이 백오십 만원이라고 한다. 웬만한 부자가 아닌 이상 구매하기 망설여지는 금액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서민을 위한 짝퉁이 여기 있으니. 다이슨을 사지 못하면 기술을 따라한 차이슨을 사면 되는 것이다.
소설을 따라 여행 간다고 해도 돈이 만드는 편이 아니다. 하루키는 세계관이 작다. 맨날 하는 이야기가 섹스밖에 없기도 하다. 직접 가본 지역만 기술했을 테니 경비를 아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경비가 적다고 여행의 질이 적어질 염려는 안 해도 된다. 그런 것이 사실이었다면 부자들은 매일 행복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실 내가 부자가 아니라 모른다. 이 부분은 열린 결말로 남겨두고 싶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여행의 정의에 대해 물음표를 던졌다. 대체 어디까지가 여행인 걸까? 내 생각엔 지금으로부터 잠시 떠나게 해준다면 그것이 어디가 됐든 여행인 것 같다. 정신만 떠난다 해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론 몸까지 떠나 있으면 더 좋다. 왜냐하면 사람인 이상 속세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 사람도 있을 테니 여기에 대한 건 그만 이야기하고(내가 불교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왜 기독교인 사람도 있을 테니 여기까지 이야기한다고 했냐 물어본다면 그냥 말 장난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뭐가 됐든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부터 지긋지긋한 일상으로부터 휴식을 줄 필요가 있다. 일 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지만, 쉬지 않고 일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짓은 또 없을 거라는 명언도 있다. 게다가 링컨인가 뭐시기는 자신에게 나무를 자르기 위해 9시간인가 주어진다면 8시간 동안 날을 갈겠다고 했다. 아마도. 휴식이랑 대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보이지 않는 실이 있는 것 같아서 일단 인용했다. 아니면 말고. 요즘은 이런 아니면 말고가 유행하는 때가 아닌가? 틀니를 압수하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어디 입을 벌릴 수 있다면. 나는 이제부터 입을 꾹 다물 생각이다. 이제부터.
(리뷰한 책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죄송하지만 유동으로는 참여가 안되십니다. 고닉/반고닉으로 참여해주세요.
반고닉 : 로그인은 했지만 닉네임 확정을 안해서 닉네임을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상태. 닉네임 옆에 디씨 아이콘이 붙음 고닉 : 닉네임이 고정되어있는 상태. 닉네임 옆에 디씨 아이콘이 붙고 거기에 고정핀이 붙어있음
글쓴이입니다. 귀찮아서 수상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