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글에서 들뢰즈는 헤겔의 동일성 개념을 공격하며, 차이를 긍정하는 새로운 철학을 만들려는 야심찬 기획을 세움. 헤겔의 자리를 끌어내린 뒤, 철학의 천좌에는 공백이 생김. 들뢰즈는 헤겔을 철학의 천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엔 성공했으나, 그렇게 비어있는 천좌에 누가 앉을 건지가 문제가 되었음. 모두가 조화롭게 질서를 지키던 거대한 체계인 세상은 사라지고, 그저 불규칙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의 우글거림만 가득한 혼돈의 세상이 되었음. 그렇다면 새로운 철학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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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들뢰즈 철학을 잠시 복습하고 가자. 들뢰즈 철학의 핵심은 "차이와 반복"임. 들뢰즈에게 있어, 동일하다는 것은 환상임. 단적으로 사과 사진을 보자. 이건 사과일까? 이건 사과가 아님. 이게 왜 사과가 아님? 이라고 할 순 있음. 근데 이게 사과라는 건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사과를 아무리 쪼개봐도, 사과라는 개념은 사과 안에 존재하지 않음. 존재하는 건 개념이 아니라, 그저 사과 분자와, 그 분자를 연결해주는 힘뿐. 사과라는 개념은 그저 우리 머릿속에서 오감이 전달해준 정보를 바탕으로 뇌가 편리하게 정보를 받아드리기 위한 착각에 불과함. 세상에 실재하는 건 그저 결코 똑같을 수 없는 물질과, 그 물질을 매개하는 힘 뿐, 그 외에 모든 개념들은 그저 우리의 상상인 것임. 그리고 이러한 개념은 끊임없이 "재현"됨. 사과 사진, 사과 그림, 사과 텍스트, 사과 이미지는 결코 사과가 아니지만, 우리는 그걸 모두 동일한 "사과"라고 주장함. 그리고 동일성 철학의 완성자인 헤겔은 이러한 재현을 통해 세계 전체를 재현하려고 함. 우리가 사진, 그림, 이미지, 텍스트, 조각 등 하나같이 다른 걸 "사과"라고 묶었듯이, 아무런 규칙성도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세계 전체를 명료하게 묶어내는 "이미지"를 재현하려는 게 헤겔의 목표인 거임. 그리고 들뢰즈는 이러한 "재현" 자체를 부정하고, 세계는 그저 하나의 존재이고, 그 안에는 환원될 수 없는 차이를 가진 존재의 우글거림만 존재한다고 보는 거임.


그렇다면 동일성 개념이 해체된 지금,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동일성이라는 질서의 붕괴 이후, 세계는 그저 지독한 혼돈만이 있을 뿐임. 동일성이라는 질서를 무너뜨렸으니, 이제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함. 대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으며,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가? 세계는 결코 똑같지 않은 존재들이, 영원히 움직이는 곳임. 문제는 여기서 발생함. 들뢰즈에게, 움직임은 직선적일 수 없음. 들뢰즈에게 있어서 모든 물질은 정지해있지 않음. 정지라는 것은 곧 동일함을 의미하니까. 문제는 정지하지 않는 물질이 직선적으로 움직이면, 세계는 무한의 문제에 빠지게 됨. 다시 말해, 우리가 아는 세상이 존재하기 위해선 반드시 "반복"이 있어야 함. 여기서 반복은 "동일한" 반복이 결코 될 수 없음. 반복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하는 것도 아님. 오히려 그 반대임. 움직이기 때문에, 돌아오는 거임. 움직이지 않으면 반복도 없음. 여기서 반복은 차이가 작동하는 방식인 거임. 동일성이 해체된 그곳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차이들과, 그 차이들이 무한히 움직이는 반복을 보는 거임.


그렇다면 이 반복은 어디까지 확장이 가능할까? 극단적으로 작은 미시세계, 전자는 끊임없이 "반복"하며 움직이고 있음. 전자와 원자핵이 결합한 원자는 결코 정지하지 않은 채 전자기력에 의해 분자를 구성하고, 이 분자는 마찬가지로 전자기력에 의해 서로 끊임없이 연결과 단절을 "반복"함. 이 반복을 통해 우리 신체가 움직이고, 뇌가 움직이며, 누군가는 여친이랑 아기만들기를 하고 있고, 아기가 태어나기도 하고 사람이 죽기도 하며 끊임없이 삶과 죽음의 순환을 "반복"함. 또한 동물들은 서로 먹고 먹히며 거대한 생태계의 순환을 만들어냄. 또한 물이 증발하고 다시 액화되며 응고되고 용해되는 이 무한한 과정 속에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내리며 바다와 하늘이 물의 순환으로 기후가 변함. 더 나아가 우주는 별이 탄생하고 죽고, 은하가 탄생하고 충돌하고 소멸하는 그 장엄한 순환이 계속됨. 이처럼 세계는 단 1초도 똑같은 순간이 없는 동시에, 거대한 순환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반복"함. 그리고 바로 이 거대한 질서가 계속되고 계속되며 생성하고 영원의 시간 속에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되풀이하며 무한히 "반복"될 거임. 이게 뭔지 알겠음? 눈치 빠른 사람은 바로 알아차릴 거임. 바로 이것이 들뢰즈가 헤겔을 쓰러트리기 위해 준비한 최종병기이자 헤겔의 동일자 철학을 무너트리고 그 위에 군림하기 위해 설계된 철학, 비어있는 철학의 천좌의 공백을 끝내고 하늘에 선 철학, 바로 니체의 "영원회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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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츠의 끌개를 보자. 끌개란 초기 값에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점이나 궤도로 수렴하는 계를 의미함. 그러나 로렌츠의 끌개는 조금 독특한데, 분명히 반복하는 건 맞지만, 한 가지의 궤도로 수렴하진 않음. 무한히 반복하지만 그와 동시에 단 한번도 "동일한" 반복을 하지 않음. 이 끌개는 분명히 같은 궤도를 반복함. 그러나 이것은 결코 "동일한" 반복이 아님. 분명 반복이지만, 그 어떤 선도 "동일한" 곳을 지나지 않음. 바로 이것이 헤겔의 변증법을 부술 들뢰즈의 최종병기였음. 분명히 동일하지만, 실은 동일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완벽하게 다른 이 끌개의 궤도는 바로 세계 전체를 표상하고 있는 거임. 니체의 영원회귀란 다름 아닌 끝없는 차이를 반복하는 것, 결코 동일하지 않은 거대한 세계가 무한한 반복을 통해 언제나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내가고 있는 것. 니체, 그리고 들뢰즈는 헤겔이 간절히 원하던 목표인 "세계의 재현"을 비웃으며 말하고 있는 거임. 그딴 이미지 따윈 만들 수 없다. 아니 만들어서도 안된다. 그것은 마치 로렌츠의 끌개 궤도 하나만을 잘라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세계는 멈춰있는 이미지 한 장으로 묘사하는 건 불가능하다. 너는 그런 불가능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세계를 고정시키고, 같지 않을 걸 억지로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거임.변증법적으로 무한히 확장하여 세계 전체를 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봤자 세계는 결코 그러한 단일한 이미지로 포섭되지 않을 거임. 왜?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약동하는 살아있는 생명체 그 자체니까. 늘 반복되나 결코 단 한번도 동일한 길을 가지 않고, 그렇기에 결코 궤도를 그릴 수 없는 로렌츠의 끌개 그 자체니까. 로렌츠의 끌개를 하나의 궤도를 그릴려는 시도가 언제나 실패로 끝날 게 뻔한 것처럼, 헤겔의 목표 역시 결코 성공할 수 없고, 성공해서도 안됨.


들뢰즈는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통해, 헤겔을 천좌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니체를 하늘에 세우게 됨. 들뢰즈는 헤겔이 보는 "세계 전체를 꿰뚫는 보편적 진리"이라는 환상에서 우리를 부수어, 세계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 했음. 들뢰즈가 보여주려 한 세계의 진짜 모습은 바로 이 로렌츠의 끌개임. 세계 전체는 저 끌개처럼 연결되어 있고, 결코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차이"들은 결단코 똑같은 궤도로 돌지 않고 언제나 새롭게 변모함.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끊임없이 반복함. 더 이상 개념이라는 허상 아래 결코 환원될 수 없는 것들을 똑같다고 주장하는 형이상학적 헛소리는 끝났음. 또한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두고, 공통적인 특성 하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침묵시키는 개념의 잔혹한 폭력 역시 끝났음. 개념이라는 족쇄가 풀린 존재들은, 이제 진정으로 자신의 차이를 보여주며 약동하는 세계 그 자체로 무한히 차이를 반복할 거임


여기까지 읽고나서 몇몇 사람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을거임. 아니 이새끼 니체 인용한 거 맞음? 걍 지 입맛대로 니체 사상 개조해서 지 철학에다가 써먹은 거 아님? 어쩔 수 없음. 니체는 헤겔처럼 명료하고 논리적인 글쓰기를 한 사람이 아님. 니체는 무한히 열려있는 철학자이며, 누군가에겐 반 형이상학자, 누구에게는 최후의 형이상학자로 보이는 거임.

이게 니체의 매력임. 빠와 까를 모두 미치게 하는 슈퍼스타이자, 누군가에겐 서양 철학 전체를 전복시킬만한 위험한 사유를 하는 철학자요, 누군가에겐 모든 도덕을 부수라는 짜릿한 유혹을 하는 선동가임. 내가 무엇을 사유하고, 무엇을 갈망하는지에 따라 니체는 늘 새로운 것들을 보여줌.

그래서 니체 읽어봄? 사실 안 읽어봄. 예전 고딩 때 차라투스트라 읽을려다가 노잼이라 덮음.



p.s. 들뢰즈는 매우 난해한 철학자이며, 저는 들뢰즈의 전문가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여기 있는 용어는 들뢰즈가 직접 쓴 말이 아닌,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 직관적인 개념을 가져다 쓴 것에 가깝습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미적분의 정의는 엄밀한 정의가 아니듯이, 여기 있는 들뢰즈의 설명 역시 엄밀한 설명 보단 직관적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에 가깝습니다. 또한 끌개, 집합론, 뉴턴 역학 등 다양한 과학적 개념을 이용해 설명한 것은 일종의 비유로, 실제로 과학적 개념을 사용해 논증하려는 게 아니라 문학이나 영화의 장면을 비유로 활용하는 것처럼 설명하기 힘든 개념을 과학적 개념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너는 과학 좆도 모르는 문과 찌끄레기 주제에 왜 깝치냐? 라고 말하신다면 사과드리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쉽고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들려고 노력하다보니 과학적 개념을 사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