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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를 읽은 솔직한 심경은 초반부엔 그나마 서사가 있고(도시를 배회하며 불안의 공기를 들여마시고, 옛 생활을 추억하는 등) 내용이 파악되니까 재밌는데? 구보씨처럼 할 일 없는 지식인 놈팽이 한 놈 돌아댕기면서 지 혼자 불행포르노 찍는 팔자좋은 놈인가? 이 생각으로 읽어나갔는데 중간부분부턴 내용파악이 힘들었음.
일단 자꾸 화제가 휙휙 바뀌고 주인공이 갑자기 주요인물 아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가하면 의식의 흐름에 따라 갑자기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채롭게 바뀌는데 말테 이노마 이 얘기를 갑자기 왜 하는거지? 란 생각이 들며 내 뇌를 파괴하든 책을 파손하든 양자택일해서 뭐라도 하고 싶었는데 독갤러 조언대로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읽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읽고 마치 현자된거 마냥 편안한 상태에 이르게 되어 감명받음.
마지막 에피소드는 가족들의 사랑을 못이기고 집을 탈출한 탕아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된다는 내용인데, 일단 탕아의 가출계기는 가족들의 사랑을 받는데도 괴롭기 때문임. 왜 괴롭냐하면 가족들이 그에게 바라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임. 사랑은 그 자체로 위대한 것이지만서도 때로는 사랑을 준다는 것이 일종의 권력처럼 작용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함. 바로 사랑을 계속 주기위해서 너는 내가 가정한 존재가 되어야 해. 너는 내가 바라는대로 살아야만 해. 라는 사랑의 접근 방식이 사랑을 권력으로 이용하는 사례들이라 볼 수 있음. 물론 여기에 어떤 구성원도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오순도순 행복한 가정들도 있을 순 있겠으나 선천적으로 일종의 자유의 억압을 견디지 못하는 가련하고 예민한 존재들은 이를 결코 받아들이기 힘듦. (본인쨩이 그런 케이스라 마지막 얘기에 꽂히는걸지도..?)
그렇기 때문에 사랑으로부터 도피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올바른 사랑의 방식은 사랑의 대상을 내 안에서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 대상이 빛나도록 비춰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방식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는것임. 사랑의 무거움이랄까 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사랑회피자들도 사랑이란 것을 아예 도외시할 순 없음. 어쩌면 사랑이란 것도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아무리 사랑에 상처받아 두려운 자들이라할지라도 그 대상이 무엇이든간에 어떤 대상에 대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음. 그렇게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채우고 자기 내부의 갈망을 충족시키게 되면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이전의 사랑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 인식의 순간이 오면 조용히 이전의 사랑마저도 이해하고 용서하게 될 때가 그리고 본인이 그것들을 오해했다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거임. ㄷㄷㄷㄷ
나 이런거보고 감동하는 것보면 감수성 최고조 상태인 것 같은데 가을타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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