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드닌, 책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에 대해

호주, 서구문명을 위한 람제이 센터 강연


https://www.youtube.com/watch?v=s8pmXtjMiAI



자유라는 단어는 서양엔 고대부터 있던 단어이다

고대 그리스와 성경의 시대에도 있었다


한편 현대의 자유는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있었던 철학혁명에서 나왔다

그런데 현대의 자유와 고대의 자유는 의미가 다르다

고전시대의 그리스, 로마, 유대적 자유는 스스로를 완벽히하고 미덕을 기른 상태를 의미했고 정의롭고 자비롭고 희망적이며 겸손한 상태를 의미했다

현대의 자유는 존 로크가 정의한 바에 의하면 원시시대의, 법과 사회가 있기 전의 상상된 자연상태를 의미한다 제한없이 하고싶은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는 말이다

이것은 고대인들에겐 매우 외계적인 개념이다 그들에겐 단순히 기관이 없고 제한이 없는 사회가 자유로운게 아니라 좋은 제도를 만들어 사람들 개개인이 힘있고 완벽해진 사회가 자유로운 사회였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그러므로 사회 전체가 완전히 하고 싶은대로 개개인이 행동할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 제한을 부정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고대 그리스/기독교 전통에서 선은 이미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었다

그런데 현대엔 선이 무엇인지 현대엔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선이 무엇인지 논하는 것을 포기하고 선을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선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더라도 선이 무엇인지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그것이 정치 아닌가?


자유주의는 종교전쟁을 거치며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으로 선이 무엇인지 정할 수 없게 되자 힘을 얻었다

그러면서 무엇이 선인지 결정하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나름의 선이 무엇인지 사실은 마음을 정했다

모든 사람이 규제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워진 스스로 각자가 자기 일을 해결하는 것이 선이라는 것이다


고대의 인간은 가족 사회 정체성 등에 의존했다

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토크빌 태생이라는 뜻이다 폰은 귀족이라는 뜻이다 스미스는 대장장이라는 뜻이다

자유주의의 혁명적인 점은 내가 누구인지는 사회가 아니라 어떠한 외부의 영향으로부터도 해방된 개인이 정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유주의 하에서 사회의 변화는 네 선택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도 덧붙여본다


물론 자유주의에는 지켜야 할 장점도 있다 토크빌은 귀족시대의 사회엔 모두가 왕부터 농노까지 관계의 사슬로 묶여있었고 그것은 시간과 세대를 초월했다고 주장했다 모두가 과거와 미래에 빚을 지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런 주장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슬로 규정된 정체성이 정의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아니었다면 나는 노틀담 대학 교수가 아니라 아일랜드 감자농부였을 것이다 자유주의 덕분에 우리는 개인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토크빌은 이런 자유의 단점도 논했다 사슬을 부수는 것은 개인이 자기 인생의 책임을 자신만이 지게 되고 자신의 선택만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했다 세대간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책임감이 약해지고 현재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의 중요한 사회문제 중 큰 부분도 이에서 나온다 현재의 사회적 무질서와 금융상태 정부부채 환경문제 등도 모두 이에서 나온다


우리가 자유주의로부터 물려받을 것은 매우 균형잡혀 있어야 한다



현대의 정치사회경제적 질서는 자유주의적 질서를 근본으로 두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이런 질서는 기관과 인간 권위에 대한 부정을 근본으로 한다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기관을 없애는게 가장 낫다고 생각하지만 자유주의에게 그런것이 필요악이라 못없애는 것 뿐이다


자유주의가 제거하지 못한 마지막 권위는 과학 뿐이다 그런데 코로나나 지구온난화에 다다르면 그것마저 무너지며 과학만으론 우리의 지향을 안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과학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2 이후의 기간동안 사람들은 정부를 부패와 이기심의 근원으로 보기 시작했고 이는 부분적으로 자유주의로 인한 것이다


자유주의는 우리가 이기적이라 가정하고 그 가정이 없다면 자유주의는 붕괴된다 애덤 스미스 류의 현대 경제학도 붕괴한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정치에 연관되는가?


정치인들이 존중받는 것은 현대 자유주의보다 오래된 전통인 공공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 것이다 자유주의에 이런게 있는가? 없다 자유주의엔 공공에 대한 헌신이 없다 모든 공공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의 집합에 불과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도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할 뿐이며 공공에 대한 불신도 이에서 나온다


부패가 없던 인간 기관은 없다 돈과 힘이 모이면 모일수록 부패한다

공화주의 전통에 묻어 현대까지 오는 기독교 전통은 인간은 죄인이므로 기관이 부패할 수 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미덕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진정한 해법은 미덕을 행하고 기르는 것이라 가르치며 공공선의 증진을 위한 헌신의 정신을 부활시킬 것이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자유주의엔 그런 언어가 없다 그것이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일 수 있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자유는 공공선과 미덕의 육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어떤가? 미국 역시 이렇게 썩어가고 있다


이런 상태에 대한 해법이 나올 사상적 토양이 있는가? 자유주의 내엔 없다


자유주의는 자신이 성공해서 세계를 자기 생각대로 변형했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자기가 지은 감옥에서 질식해 죽어가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은 기술적 진보의 결과에서 나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트랙터 자동차 비행기의 발명이 낳은 결과처럼 말이다 텔레비전과 PC가 나오며 가족간의 대화가 줄었다고 볼 수도 있다는 주장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도구가 반드시 그런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도구에 불과하다 정치사회적으로 그런 도구들이 반드시 자유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정치질서도 도구이다 그리고 그 정치질서는 우리가 도구를 어떻게 쓰는지 규정한다


어떤 학자는 아미쉬 사회가 기술을 안써서 그렇게 유대가 강하다고 주장하지만 냉장기 토스터도 옛날 기술 기반으로 만들어 쓴다 그런데 아미쉬 사회의 특이한 점은 사회의 통합성에 도움이 안되는 기술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회가 기술에 의해 완벽하게 100% 규정된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유가 결정론적으로 기술에 의해 나온 것이 되는데 우리가 기술만 있으면 자유로워 지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덕이 커간다면 기술도 미덕에 맞춰 키울 수 있다 우리는 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는데도 기술을 어떻게 사회에 적용해야할지 토의를 못하고 있다 이게 자유인가? 이건 별로 자유주의적이지 않다



물론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가서는 안된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무의미하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과거로 되돌아가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옛 시대와 우리 자신의 과거에서 긍정적인 점을 추출해낼 수는 있다 진보주의 시대가 무시하는 것 중 하나가 과거를 무시하는 것이지만 난 과거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획득한 자유의 대가가 너무 커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대로 관계성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것은 인간이 번영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의 이득과 손해를 잘 따져보고 미래의 자유주의의 후계사상을 위해 필요한 것을 획득해야 할 것이다 자유도 고대의 자유 관념을 부활시키는 것이 있어야 할것이다 물론 기술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등도 미래의 사상이 대응해야할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을 망치는 마약 등의 자유주의가 대답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말이다


사람은 그냥 낙원을 상상하지 않는다 불만족에 의해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인류는 그런 상상력이 뛰어나기에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가족해체 마약 등의 문제는 하류층만 집중적으로 타격한다 상류층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관련된 새 책의 주제로 생각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새 귀족들, 곧 엘리트 또는 랩탑 계급은 안정적인 가족 생활을 누리고 또래집단과의 교류도 즐기며 번영하는 인간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미디어 등은 이런 것을 나쁘게 묘사한다 그들은 섬이나 다름없다 신귀족층의 특징은 이동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일자리 사이도 점프 잘하고 기업가적인 삶을 산다 


그리고 이런 경제사회정치적 이동성은 더 두꺼운 기관이나 가족체계의 해체를 요구한다 한 축구팀에 속한 사람을 생각해보라 그 사람으로 인해 하나의 생태계가 생긴다 이런 관계는 현대에 들어 서구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가난한 사람은 가족도 못만들고 교육도 못받으며 번영하는 삶도 못만든다 신귀족층은 돈만 뿌리면 그게 해결된다고 보지만 그건 아니다 그것은 신귀족층을 방어하는 수단이 될 뿐이며 하류층의 관계성을 파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류층의 꿈은 충분한 부의 분배만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상류층이 사회에서 번영하지 못하는 사람을 놓고 그 사람이 번영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변명거리를 만들 뿐이다



이 책을 구상하며 미국에 트럼프 현상 같은 분열적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하지만 이 분열은 희망을 준다 트럼프는 명백히 내가 논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많은 사람이 지니고 있다는 것은 보여준다 주류 엘리트는 이런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않거나 무시했지만 트럼프는 인식했고 유권자들도 인식했다


트럼프의 당선은 엘리트들에게 사회가 이렇게 망가진 이유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엘리트들은 다 트럼프가 얼마나 쓰레기고 어떻게 빨리 제거할 방법을 논하며 우리가 이런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고 하지만 트럼프 당선은 엘리트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지배계층은 트럼프 당선에 대응하여 진짜 문제를 좌우 양쪽 모두에서 해결해내려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은 자유주의의 실패에 대한 성찰에서 나왔다 앞으로 미래엔 엘리트들로부터 이에 대해 더 건설적인 새로운 길이 나오길 빈다


우리나라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치인들의 더 큰 책임감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고대부터 있던 학문이고 자유민을 어떻게 교육하고 어떻게 개인을 자유롭게 만들까에서 나온 학문이다 인문학의 영어 용어 리버럴 아츠라는 용어가 그에서 나왔다


그리고 고전적 자유 관념인 자기 통제는 이렇게 인문학을 배운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인문학은 개인의 미덕 통찰 절제를 길러준다


사람이 시민이 되기 위해선 인문학이 필요하다 사람이 스스로를 관리하고 성찰하고 통제하는 사회가 되려면 인문학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대에 우리가 이해하는 현대적 자유, 사회체제와 기관이 있기 전의 원시 자연시대 자유를 논한다면 우리의 교육은 우리의 선택을 최적화하기 위한 학문이 중요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뿐이다 자연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학은 자기통제를 가르치는 학문이 아니라 방종떨게 만드는 학문이 되며 이런 학문은 스스로의 목적을 파괴하는 학문이 된다


호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도 고대의 자유를 가르치는 사람인데 이상한 잡소리나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인문학 없인 자유주의자들이 꿈꾸던 이상적 자유든 현대 자유주의를 넘어선 고전적 자유든 이룩할 수 없다 스스로조차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인간 사회를 통제하려 시도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