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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와 연기는 예나 지금이나 참 인상적인 주제다.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글들 중 <햄릿>이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 소위 고전 중 <햄릿>이야말로 이 주제에 있어서 가장 깊고 설득력 있게 파고든 글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동시에 이 도피와 연기는 고전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가까이 오는 순간, 일상 속에서 가장 끔찍하고도 불길한 무언가가 된다. 다른 모든 부덕함과는 달리 이것만큼은 너무나 소극적이고 소시민적이면서도, 몇 번이고 우리를 계속 후회하게 만들며 일을 바로잡고자 생각하도록 만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작은 거짓말이 큰 거짓말을 낳는다는 말이 세계 다양한 문화권에 늘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사람들은 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소한 잘못은 필히 우리를 중앙에서부터 무너뜨릴지 모를 균열을 만들고 있다고. 물론, <적>의 로망이 보여주는 것처럼 늘 그게 거대한 균열로 번져나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사실 그렇기 때문에 <적>을 읽으며 당연히 이것이 일종의 가짜 논픽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나 작위적일 정도로 기나긴 거짓말들과, 그 거짓말의 끝에서 너무나 장대하게 무너져 내리는 세상이 당연히 사실일리는 없다고.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서 일차적으로 놀랐고,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에 더욱 더 놀랐다.
도피하는 자세와 이를 숨기기 위해 어떻게든 거짓말로 연기를 하는 삶은, 물론 부도덕하고 권장 못할 삶의 자세지만, 기실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은 취하곤 하는 어쩔 수 없는 영역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카레르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로망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삶을 완전히 이해한 상태로 다른 3인칭의 이름을 빌려서 풀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러나 아마 내가 놀란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 역시 점차 놀랐을 테고, 어느 순간부터 <적>의 화자, '카레르'는 로망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멈추고 냉소적으로 그의 설명에 대한 '대안적' 설명, 아마도 검사 측이 주장했을 법한 설명을 제시하곤 한다.
어쩌면 이건 소설적 삶과 현실적 삶 사이의 충돌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글귀, 리디아 데이비스의 <글쓰기>라는 초단편소설에 이런 말이 나온다. "글쓰기에 사용되는 건 인생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제 내가 그런 인물이 되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런 류의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이딴 걸 때려치고 인생을 사는 법을 배우는 거다." 로망이 최대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며 거짓말을 늘어놓고, 최후의 최후까지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운명적인 순간을 기다리는 모습은 얼마나 소설적인가. 그러나 동시에, 이 모든 일들이 실제 현실에서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추한가......
일전,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스핀오프인 <중간관리록 토네가와>에서 비슷한 인물상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로망처럼 극적으로 치닫지는 않았으니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에는 좀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로망과 와타나베 사이에 연장선을 그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과연 어떨까. 그리고 지금 나는 뭘 하고 있을까? 이 책을 읽고 감상을 쓰고 있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문제의 가장 심각한 부분은, 자신이 느낀 이 민감한 고통을 남에게 호소하고자 입을 열거나 글을 쓰려는 바로 그 순간, 이성적인 희석이 들어가며 남이 듣기에는 뭐 그런 것쯤이야, 하는 정도의 넋두리 밖에 나오지 않게 된다는 것이리라.
기요시 영화에 나올 법한 텅 빈 인간들이 떠오르는 소설이었음
큐어 생각 좀 나네...
이 작가 왕국도 참 궁금한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