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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이름은 로망스계에, 성은 게르만계인 이 소년은, 호두나무 정원을 내려다보는 걸 좋아하는, 조금 맹한 구석이 있는 꼬마 시인이다.


토마스 만의 단편 토니오 크뢰거는 이 꼬마 시인의 세계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짧은 여정을 통해서 보여준다.

꼬마 시인의 어린 세상에는 세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그의 첫사랑과도 같았던 금발의 또래, 한스,

두 번째는 잠에 들고 싶은 그를 통통 튀는 춤으로 깨우는 경쾌한 소녀, 잉게보르크

세 번째는 스텝을 밟지 못해 자꾸만 비틀거려 넘어지는 미숙한 막달레나


토니오는 한스를 사랑했지만, 승마를 즐기는 그의 세계에 자신이 읽는 책이 닿기를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은 식어버린다.

잉게보르크에 대한 그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과 그녀의 위치를 가늠한다.

그가 꿰뚫어본 결과는 명확하다. 잉게 역시 자기 세계의 사람은 아닌 것이다.


토니오는 이 생명 넘치는 존재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같이 되고 싶어 하지만, 종래에는 그렇게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막달레나의 손을 잡아 일으켜줄지언정, 그녀에게 사랑의 시선을 돌리지도 못한다.


그는 두 세계에서 방황하고 있다.

생명과 평화로 요동치는 일상의 세계, 그리고 명암과 음영을 모두 꿰뚫는 예술의 세계. 그는 어디에서든 이방인이다.


결국 어른이 되어서 어느 정도 이름 있는 문학가가 된 토니오 크뢰거.

하지만 그의 예술관은 다른 예술가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지 못하고,
냉혹한 퇴폐를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예술관에 동화된 인간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반은 작열적이고, 또 반은 잔잔한,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이 되고 만 것이다.

토니오는 예술가로써의 고향인 뮌헨과 그곳의 화가, 리자베타에게 안녕을 고한 채 여행을 떠난다. 자신이 처음 방황했던 곳, 독일 북부를 향해서.

그리고 그보다 더 먼, 조상들이 오래전 두고 내려왔을 고향, 덴마크 코펜하겐을 향해서.


그는 오랜만에 만난 고향에서 작은 그리움과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이방인과도 같은 존재를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하여 다소 미련 없이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떠난 그는 어릴 때 자신이 사랑했던 존재들과 재회하게 된다.

한스와 잉게, 그리고 그가 이제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여전히 춤 솜씨가 서투른 막달레나가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한스와 잉게의 춤사위를 보며 그는 오랜 날의 자신을 떠올린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변하지 않았고,

자신이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며, 그럼에도 또한, 역시나, 자신이 그들에게 닿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의 온 정신이 한스와 잉게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막달레나라는 이름을 잊었는지 어쨌는지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는 그들의 깊고 활기찬 생명력에 매료되었다. 동시에 그는 넘어지는 이를 위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다만 그 이름을 언제고 떠올리지 못할 뿐.


이렇듯 그는 여전히 중도에 있다. 삶을 사랑하고 또한 예술의 손길을 잡아주는 그는 양극단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분명히 막달레나에게 닿았고, 막달레나는 그의 손을 통해 몸을 일으킬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물론 그의 말대로 그것은 그저 한낱 '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평범함을 사랑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음에 손을 뻗을 수 있는 그의 태도는, 분명 많은 이들의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언젠가 막달레나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기를, 그 비틀거리는 세계로부터 그의 애정이 사랑으로 닿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가 막달레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행복이 될 수 있기를.

그리 바랐다.




감사합니다.

막달레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