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요즘 등단해서 주목받는 작가들은 대체로 나이가 어린 것 같은데,
김연덕의 첫 시집 보면서 든 생각임
사실 이게 정상인 것 같다.
예전에는 등단하려면 한 10년 썼어야 했는데
등단 준비하느라 모든 재능을 소모해버리는 경우가 많았음
등단을 오래 준비할수록 작품 퀄리티가 떨어지는.....
황병승이 극히 어렵게, 시간을 엄청 낭비하면서 등단했던 걸로 유명하지
사실 한국 정규 교육 과정 안에서 문학을 제대로 배우기는 어렵고, 정규 교육과 동떨어진 문단의 폐쇄성이 한국 문학의 고인물화를 촉진시킨다.
대학교 문창과 커리큘럼이 사실 고등학교 수준이거든.
그래서 문창과 커리큘럼을 충실히 이수해도 특별한 몇 명 외에는 등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실 문학뿐만 아니라 대학의 교양 교육 전반이 그런 느낌이다.
한국 정규 교육을 통해 정신적인 뭔가를 체계적으로 배우기란 극히 어렵고, 이러한 조건이 시민 사회의 수준을 큰 틀에서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 엘리트들은 서구 엘리트들에 비해서 지적으로 매우 왜소한 편인데(한국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의 수준을 보라), 리더를 키워낼 수 없는 공장식 교육 체제는 오늘날 한국이 겪고 있는 정신적 혼돈의 주요 원인이 아닐까?
칼라일의 '영웅숭배론'을 보면 영웅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영웅뿐이고,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영웅이 되어야만 영웅을 리더로서 가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칼라일은 그러한 '영웅들로 가득 찬 세계'를 꿈꾸었던 것이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훌륭한 작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그를 알아볼 수 있는 훌륭한 독자층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거다.
다른 분야들은 밀어놓고, 문학에 대해서 말하자면, '세계적인 독자'를 키워내는 것이 문학 교육의 핵심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폐쇄적인 공장식 '국어' 교육으로는 어떤 미래도 약속할 수가 없을 것이다.
최소한 호메로스, 그리스 비극 3작가, 프랑스 고전극 3작가,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독일 고전주의, 프랑스 근대 소설, 서구 모더니즘 중 핵심 작가들 몇 명 - 이 정도는 옛날에 정규 교육 과정 내에 녹여냈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교육 설계를 잘못 했지. 이제 와서는 조금이라도 바꾸기는 극히 힘들고.
이러한 맥락들에 대한 숙지가 없기 때문에 문학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한국 문학 속 협소한 모더니즘 약간, 리얼리즘 약간 정도에 국한되어버리는 것이다.
한국 근대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맥락들이 교육 과정 내에 결여되어 있으므로 한국인의 문학관은 공허하고 피상적인 것이 될 수밖에.
홍명희가 톨스토이와 발자크의 열렬한 팬이었다는데, 이러한 창작 원리를 알지 못하는 인간은 도식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까닭이 뭐냐면, 문학의 언어는 감정과 이성을 통합하여 사유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시적 사고'야말로 인간 정신의 핵심인데, 오늘날 한국의 소시오패스적, 혹은 무지성적 비굴한 엘리트들은 직업인 이상의 어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가?
그들이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하는 사회는 파멸을 향해 간다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사회에서 누가 애를 낳아 살인적인 공장식 교육 속에 밀어넣고 싶겠는가?
또한 문학은 서사들을 통해 문화 전반을 통합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어 사회 통합 기능을 수행한다.
문학이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을 때 사회는 아주 삭막해지고 분열적인 것이 된다.
한국 사회가 에스파나 르세라핌을 매개로 전체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햄릿이나 돈 키호테가 사회적인 상징으로 통용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적 서사의 깊이는 제약되고 있는 셈이다.
시적 사유와 함께 서사적 사고는 가장 강력한 생각의 도구이다. 세계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이야기꾼의 위치가 그 사회의 서사적 사고 능력을 보여주며, 이야기의 능력과 이야기에 대한 수용력이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결정한다.
또한 사회가 전문화, 파편화될수록 이런 이야기 능력의 중요성은 커진다는 것이다. 이야기만이 현대 사회의 전문성들을 통합 가능하다.
한국인이 그 특유의 도식적 사고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한국적 시스템은 언제나 목적을 잡아먹곤 한다) 시적, 서사적 사고 능력의 배양이 필요하며, 그것은 문학 과목의 창조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창조를 위한 사회적 운동의 첫 발걸음을 독서갤러리에서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1. '한국'근대문학인데 굳이 서양고전을 고집할 이유가? 한국인이 왜 굳이 햄릿이나 돈키호테를 읽어야 함? 서구중심주의적 사고를 하고 계신 것 같음. 차라리 최근 연구되고 있는 조선 중기-후기 장편고전을 읽는게 더 낫지 않을까. 세간의 상식과 달리 입체적 인물, 다양한 인간군상이 드러나고 있음
2. 사회가 전문화,파편화될 수록 이야기가 중요하다? 오히려 전문화되고 파편화되고 노동시간에 종속된 개인들이 많아지는 등등의 여러 물적 조건 때문에 서사에서 보편적 의미를 끌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 시대라고 생각함.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님이 좀 써주셈.
'근대 문학' 자체가 서구 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고, 햄릿 돈키호테 '대신' 조선 소설 읽히자는 얘기는 종래의 국수주의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 자체가 서구에서 온 거잖아요. 근대에 대한 심화된 이해 없이는 한국 사회 의식의 심화도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보편은 전통과의 연속성을 유지함으로써 가능하지, 현대에 보편이 달성되기 어렵다면 보편을 포기합니까? 오히려 한국 문학이 지금까지도 서구 고전을 전통화하지 못했음을 지적해야 합니다.
핵심적인 것은 세계 문학의 최고 정수를 정규 교육 과정 내에 포함시킴으로써 사유의 원천들을 확대하는 것이지 학생들을 고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햄릿, 혹은 돈키호테적인 근대적 개인과 조선 소설 속 전근대적 개인 사이에는 너무나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겠고, 한국 문학의 고대 텍스트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고대 그리스 문학은 독특한 필요성을 갖게 됩니다.
맞습니다. 굳이 서구 고전만 읽을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사실 햄릿 돈키호테도 못 포함시키는 협소한 교육 과정에 비서구 세계문학을 포함시키기는 불가능하죠. 그리고 문제는 본문에도 있는 것처럼 지금 문학 교육에 미래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 햄릿 돈키호테조차 '중고등학교 바깥'에서 배우게 되는 현실입니다. 조선 소설을 읽고 현대 문학을 창작하긴 어렵죠.
제대로 된 문학에 대한 식견은 문학의 발달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를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하지;; 철학, 심리학, 심지어 물리학까지도 문학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데
한국 문학교육이란 민족주의 형성을 위한 민족문학사 탐사에 머물고 있지. 문학성 자체에 대한 논의는 매우 빈곤. 내러티브와 비유와 상징과 주제의식과 형상화 기법 그 자체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의미에서의 문학교육은 실종되었음. 그 빈 자리에 민족성, 이념성, 사회성, 착한 척하는 PC주의가 파고들어서, 문학의 성패를 그런 곁가지 요소들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가를 기준으로 가리려드는 얼탱이 없는 문학교육 시스템. 일반적 한국인의 문학 수용능력은 바닥일 수 밖에. 학교에서 문학의 진미를 느끼고 배운 경험이 없으니까.
사실 보다 직접적으로 비판하자면 이게 맞는 말이겠죠. 한국 문학 교육에는 미래가 없는 것이 사실인 게, 본문에도 썼던 것처럼 새로운 작가들이 정규 교육 과정 내에서 창작에 도움이 되는 것을 거의 배울 수 없습니다.
솔직히 국문학만 보는거 어쩔수 없다는거 인정하는데 그래도 초교~고교까지 시간이 12년인데 다른나라 작품 안보여주는게 아쉽긴함 외국어만 수학과학처럼 배우고 문화는 배우질 않는 나라,민족이니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를 보면 기초를 위한 읽고 쓰기 교육의 재편 및 강화가 가능할까? 난 회의가 듬. 점점 소수 엘리트들이나 고급 교육 찾아 받는 걸로 나뉠 듯
사실 한국 교육은 무한 경쟁을 통한 서열화, 계급 투쟁의 도구라 이미 아주 작은 것도 바꾸기 힘들긴 한 듯
한국에 그런 달달한 건 존재하지 않아
조선에서 중등교육이란 수능 한 문제라도 더 맞추게 하는게 전부다. 어디 명문 외고 자사고를 가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든 EBS든 어딜가도 똑같음. 정말 그런 교육을 받으려면 대안학교를 가는 수 밖에 없음. 이건 교육을 고친다고 될 문제도 아니고 대한민국 멸망하고 아예 새로운 국가가 건국되지 않는 한 못 바꾼다고 본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순 없으니까.
먼가 착각하나본데 문학을 과목으로 정립시키는 행위가 도식화의 결과를 초래함. 문학의 해석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과목으로 가르칠 수 없는 것임.
만일 문학이 과목으로써 그 입장을 표명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 시대의 정신적 차원과 어울어져 문학 자체의 의미가 축소될 수 밖에 없다. 왜냐? 그 시대에 맞는 해석만이 정답에 가깝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며, 그 때문에 다른 모든 요소들은 부정되기 때문임.
결국 하나의 과목이 되어버린 문학은 해석상 의미차원에서 하나의 사상을 위한 변방으로써 존재적 가치를 가질 뿐이다.
본래 문학이 가지는 위대함을 깎아내리면서 까지 문학적 교류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행위는 부질없으며, 오히려 위험행위이다. 그 행위가 없더라도, 일부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지식인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는게 현실이며, 그런 소수의 존재가 만인의 역할을 대변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독서를 할 수 있게끔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이지. 강압적으로 문학적 과목을 대가리에 가져다 박는 것이 아니다. 후자는 매우 큰 위험성을 야기함.
그리고 필연적으로 문학을 과목으로 지정하는 행위는 후자의 방향성을 가질 수 밖에 없음. 이게 부정할 수 없는 팩트임
문학을 가르칠 수 없으면 대학교 어문학과들은 왜 있음? 한국 중등 교육 체계가 문학 교육을 허용하지 않을 뿐이지 문학 교육 자체가 불가능하진 않음.
한국 교육=도식화인 게 문제지, 문학 교육=도식화가 되진 않음.
얜 또 머라냐ㅋㅋ 어문학과는 순전히 본인들 의지로 선택해서 들어가는 대학 분과 중 하나이고, 니가 말하는건 모든 국민이 필수적으로 받아야하는 과목으로써 문학 교육을 뜻하는거 아님? 내가 댓글에 적었잖아. 스스로 선택해서 책에 대해 연구하는 자세는 좋다고, 다만 문학이 과목화ㅡ니가말하는 필수적인 의미ㅡ가 된다면 위와 같은문제가 생긴다는 거임
윗대가리들은 너같은 생각 안해봤을거 같냐?ㅋㅋ이새끼 존나 웃긴놈이네. 너 머되냐? 머 좆도안되는 머저리 주제에 잘난척하면서 국가 교육을 주도하는척 하는거지? 다 똑똑한 놈들이 생각하고 지금 상태를 고수하는 것 뿐이다.
문학이 과목화가 안된 지금의 상황으로 보더라도, 정치적 목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문학의 가치를 축소시켜 자신들만의 사상을 위해서 변형하고 해석상의 의미를 왜곡하는 경향성이 잦은데, 국가 차원에서 문학을 과목화 시킨다?ㅋㅋㅋ지식인들 조차 의견을 달리하며, 사상적 가치에 따라 천차만별로 해석되는 문학의 가치를 보편화하는 시도가 가능하다고?ㅋㅋㅋ
문학 작품 하나로 예시를 들어줌
1870년 독일제국의 성립에 의하여 괴테의 <파우스트>는 쉬펭글러, 로젠베르크, 그리고 파우스트적 인간의 파시즘적 찬양에서 그 정점에 도달
1917년 헤르만은 파우스트를 제 2부만을 중심으로 해석함으로써 "텍스트 구조가 갖는 예술적 작품으로의 현상학적 환원"을 시도->파우스트라는 인물의 의의가 상대화되고, 작품이 가진 초개인적, 초인격적 텍스트 구조를 중시
1940년 동부독일의 해석: 루카치는 <파우스트 연구>에서 칼 맑스를 재수용하면서 파우스트를 <끊임없이 전진하고자 노력하는 인간> 그리고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를 변증법적 관계로 해석하면서 <자기자신으로 부터발생하는 활동>을 작품의 중신 테마로 선언
1948년 보르트펠트 연출에서 파우스트의 비관주의적인 면모와 나찌적 초인적 모습을 삭제. 반대로 낙관적, 창조적, 활동적 인물상을 강조
1949년 서부독일의 해석: 파우스트의 생의 모습들을 발전으로서가 아니라, 종교적 존재의 문제로서 제시. 파우스트를 근대 인간의 비극성으로 파악.
1980년 <파우스트>공연: 파우스트의 신성화된 이미지를 타파를 목적으로 둠. 그에 따라 <학사의 장면>을 완전히 삭제 했으며, 기타 내용 측면에서 파우스트의 원래의 모습을 생략 및 변형함
위와 같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다른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해석상 경우를 달리하며, 자신들의 가치를 이룩하기 위하여, 시대차원으로 문학 작품을 환원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그 과정에서 문학의 본질적 가치와는 다른 정치적 이용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게 현실 팩트인데
뭐? 국가차원에서 문학을 과목화 시켜서 보편적 해석을 주입해야한다? 이건 머 독재국가를 목표로 두는 과감한 해석이냐? 진지하게 학문의 진보를 위한 해석으로 봐야하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문학의 해석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과목으로 가르칠 수 없으며, 보편화된 방식의 추구 자체가 잘못된 방향성으로 문학 자체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경우를 야기시킨다.
국가가 안나서도 저 모양인데, 국가가 개입해서 모든 개인들에게 필수적인 코스로서의 보편화된 지식을 주입시킨다? 바로 독재국가 탄생임
뭔소리야. 독일 국어 시간에 괴테랑 고전 작가들 안 배우겠냐? 프랑스 국어 시간에 고전 작가들 안 배우겠냐? 중등교육 교과에 맞는 수준으로 정규 교육에 문학을 포함시키는 건 근대 교육의 기본임. 무식한 소리 그만.
무슨 문학의 해석이 다양해서 정규 교육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가장 기초적인 헛소리를 하고 있네. 그렇게 치면 지금 도식화된 국문학 교육부터 당장 없애야함.
내말의 요는 문학은 정의내릴 수 없다는 점. 가르치더라도 이 부분을 명확시 하여, 개인적 사고의 근절을 목표로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압이 들어가면 안되고, 스스로 책에 접는하도록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내가 너한테 따지는 부분은 니가 주장하는 문학의 과목화 역시 니가 싫어하던 도식화의 가능성을 내포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의 과목화가 엄밀히 따지고 보면, 강압적 행위로써 존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임.
요는 과목으로써 배우는 행위가 문제인게 아니라 '강압적' 행동 양식으로 고착 되어지는게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독일의 괴테 학습을 한국의 문학학습과 비교하는건 엄밀히 따지면 맞지 않는 비유임. 왜냐? 독일 국민성과 한국 국민성은 엄밀히 따지면 정반대이라는 점에서 독일인이 보기에는 강요가 아닌 것이 한국인이 보기에는 강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에서는 보편적인 정의를 통해서 문학교육을 필수화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보편화된 정의를 내린 문학교육은 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임.
이러한 부분에서 본다면, 한국의 중고등 문학교육은 물론이고 독일의 중고등 문학교육 역시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실제로 중고등 문학교육 뿐 만 아니라. 다른 기타 교과서에서도 정치적인 목적은 충분히 발견 가능함.
그렇다고 해서 낮은단계의 기초적 지식함양과 고차원적인 지식의 보편화를 완전히 같게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큰 위험이 안될지라도, 후자의 경우는 큰 위험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둘은 애초에 함유하고 있는 내적 임계점이 다르다.
즉 '그렇게 따지면 지금 도식화되어있는 국문학 교육도 없애야함'이라는 니 주장은 분별력이 없는 해석이다. 이 둘은 포용력에 있어서 엄밀하게 차이를 보인다. 낮음 단계의 보편적 학습은 더 높은 단계를 위한 원초적 작업으로써 볼 수 있는 반면, 고차원적인 사고 방식의 보편화는 그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수단이 되기 보다는, 개인을 고착화하는 시도에 불가하다는
왜냐? 문학은 사상의 정수이며, 빠지면 빠질수록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 사상이기 때문임. 겉보기식으로 핥는 행위와 깊게 파고드는 행위를 동격으로 취급하는게 말이 안되는거다.
결국 귀착되는 지점은, 강압을 받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 문학을 탐독하는 능력치가 어느 지점인지, 그리고 그 지점에 맞게 스스로 문학적 가치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자유의지의 행위, 그것이 학습이다.
너의 학습론에는 강압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니가 말하는도식화와 크게 다를게 없음. 오히려 현재 한국에 도식화된 기초학습의 경우보다 더 위험하다는 점에서 궤를 달리한다. 니가 말하는 문학 과목론이 훨씬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
파우스트 해석에도 이해의 단계가 있고, 중고등학생 수준에 맞는 정도의 초보적 해석조차 공교육이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학이 사회적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거다. 네 말에는 중등 교육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 고전 문학에 대한 중등 교육 정도 초보적 독해조차 제공 못하는 한국 공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건 다들 인정하지만 그걸 바꿀 수 없는 게 부조리다.
이를테면 햄릿이 고뇌하는 인간이라는 수준의 보편적, 초보적 해석 교육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필요한 것이고 또 실제로 시행되고 있는 건데 네 말은 이걸 다 부정하고 문학이 교육될 수 없다는 도식만 반복하고 있을 뿐 아니냐.
햄릿이 고뇌하는 인간이고 돈키호테가 행동하는 인간이라는 수준의 이해조차 중등 교육이 제공하지 못함을 지적해야지 문학에 보편적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중등 교육 레벨에서는 불필요한 소리.
한국 문학에는 사실 개인적, 다면적 인간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전 교육을 도입한다면 전혀 새로운 교육적 방법들이 필요하겠으나, 네 생각처럼 그게 다 불가능하고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건 무의미할 뿐임. 고전 교육을 국어 교육하듯이 도식적으로 가르치면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겠지. 오히려 고전 교육을 중심으로 한국 교육을 바꿔 나가는 게 바람직.
그런 너의 입장은 자기 오만에 불과함. 니 말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윗대가리들의 부조리와 무능함이 기정사실되어야하는데, 아무리 따져보아도 내가 보기에는 너보단 윗대가리 지식층들이 더욱 똑똑하다고 생각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식전반에 걸친 이득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행위의 추구과정에 필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 자명하지.
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런 글을 쓰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하냐? 너처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허허 여러 재주들 중에 하나일 뿐인데 뭘. 계속 읽고 쓰다 보면 누구나 발전하게 되는 것이지.
부러운 걸 부럽다!고 고백하는 것도 귀하 재능임 진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