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층이 분명해보임. 작가나 독자의 수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예전에 하루키 독서모임 궁금해서 가봤거든(놀랍게도 하루키만 읽는 독서모임이 존재했음)
모임에서 책읽고 작품에 대해서 얘기할 때 90% 이상은 자기 얘기로 빠져버림.

보통 다른 작가 작품들은 "이 작품은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인것 같고 줄거리는 이러하며 어떤 부분이 좋았고 이런 표현이나 구조는 흥미로우며 다른 어떤 작가나 작품에 빗대어보자면 어떻고, 사회문화역사적으로는 혹은 제 경험에는-" 이런 식으로 흘러가기 마련인데, 하루키 독서모임갔을 땐 그것들은 주로 생략되고 자기의 경험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더라고. 그니까 이 사람들은 작품을 메타적으로 감상하는게 아니라 작품 속에서 자기를 찾으려고 하는 느낌?

예전에 누가 하루키는 나르시시스트라고 하는 걸 들은 적 있는데 아마 그런게 작품에도 반영되는 듯 싶어. 자아비판과 반성, 시대성찰이 약함. 또 사회적이지 않고 자폐적인 주인공 이외 타인은 작품에서 도구로 활용되며 배경이나 자잘한 소품들 또한 소위 하루키 월드라는 곳의 퍼즐조각일 뿐이며,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들도 특정브랜드나 유명인, 작가본인의 소비취향을 반영한 속물적 묘사뿐임. 예를 들어 사물을 묘사할 때도 시각적 묘사가 아니라 어떤 상표명이나 제품명만 언급하는 식. 이건 기사단장에서 많이 개선되었다고 들음

모든 작품은 작가의 자식이고 당연히 그 작품은 작가의 밈을 내려받을 수 밖에 없겠지. 삶의 허무함. 그에 따른 거리두기, 그렇게 다시 자폐적 세계로 침잠하기. 그럼에도 어떤 소비취향을 공유하는 이야기. 거기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그 소설을 읽는 독자들.

하루키는 에로티즘에 적신 속물적 허무주의, 대상을 갖지 못한, 혹은 상실한 현대의 허무와 결핍, 그 대상의 대체재로 향락을 좇는 현대인을 잘 묘사하는데, 그럼에도 하루키가 돈이 되는게 사실이고 팬이 있는 것도 사실임. 하루키나 팬을 자처하는 그의 독자들은 수많은 작가나 독자들 그리고 현대인의 모습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도 듬. 어쩌면 이 현싱은 어쩌면 사회학적으로 고찰해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