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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생의 이면』을 다 읽은 지 20일 정도가 되었다. 이승우 작품을 처음 완독한 지 20일이 되었다는 말이다. 또한 『지상의 노래』는 오늘 다 읽었으니, 20일 안에 이승우 작품을 두 편 읽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초 계획은 『캉탕』을 다시 읽는 것이었기에ㅡ정확히는 제대로 못 읽었던 것을 다시금 제대로 읽는 것이었기에, 플로우 차트를 따라가는 데에 있어서 망설임은 없었다. 망설임은 없었으니 플로우 차트를 따를 수 있었겠고, 플로우 차트를 따라가니 『지상의 노래』를 읽게 되었다. 추측컨대 『캉탕』 역시 그리 될 것이다.


『생의 이면』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말 정밀한 비교냐면 그것은 또 아니다. 그저 피상적인 감상들의 나열이 '두 가지'라는 특수한 수에 의해 비교가 되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이야기하자면 『지상의 노래』는 한 사람의 일대기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러 사람의 일대기였고, 또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의 일대기였다. 한 마디로 군상극이다. 한 명의 삶에 전적으로 카메라를 두었던 『생의 이면』과는 다르게, 카메라는 이야기 속의 많은 사람들을 향한다. 많은 사람에게 향하는 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게 되고, 많은 이야기를 담게 되는 만큼 또 많은 카메라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카메라 필름은 단 하나다. 이 모든 시선이 결국 하나의 필름에, 하나의 이야기로써 응집된다.


『생의 이면』이 철저하게 한 주인공을 포인트로 삼아 카메라를 움직인다면ㅡ정확히는 한 주인공의 복사본을 보기 쉽게 압축하여 보여준다면, 이곳에선 한 그루의 나무로부터 발원되는 수많은 가지들을 비추다가, 마침내 얼기설기 엮인 가지들로부터 또 하나의 생점으로 끝을 맺는다. 이 나무에서 가지들은 모두 제각각이나, 하나의 줄기라는 특성으로 묶인 채 풍파를 맞는 운명을 겪는다. 또한 풍파를 맞음으로 하나의 줄기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표현을 차치하고,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 작품이 아주 좋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좋기 때문에 이것을 표현했을 수도 있고, 이러한 표현의 기반으로 인해 이 작품이 좋을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중간에 근현대사가 엮인 부분에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 부분을 읽을 당시에는 어쩌면 이 작품이 그와 견줄 수 있거나, 그 이상이라고 느껴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아예 결이 다른 작품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훌륭함과 동시에 메인 서사의 튼튼함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결론은 역시나 이 작품이 아주 좋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작품을 읽은 20일을 정리할 수 있는 말이다. 『생의 이면』도, 『지상의 노래』도, 사람들이 으레 칭찬하던 바와 같이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새 이승우 작품을 읽은 지 21일째로 접어들 것이고, 그리하여 플로우 차트는 또 다른 곳을 향할 것이며, 당장은 『캉탕』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망설임은 없을 것이다.



좋은 소설이었다.

감사합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