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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카레니나
1
신문을 다 읽고 커피를 두 잔째 마시고 버터 바른 칼라치를 먹고난 다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끼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떨어버리고 널따란 가슴을 쭉 펴며 즐거운 미소를 지었는데, 그의 마음속에 이렇다할 유쾌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소화가 잘되었다는 생리적 쾌감으로 유발된 미소에 지나지 않았다.
모비딕
1
눈을 감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느낄 수 없다. 우리의 육체적 부분에는 빛이 더 많지만, 실은 어둠이야말로 우리 실체의 본질적인 요소인 것 같다.
안나카레니나
2
그녀는 작은 객실 안쪽으로 가서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공기처럼 부푼 치마는 그녀의 가냘픈 자태 주위로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처녀답게 보드라운 맨살이 드러난 가느다란 한쪽 팔은 힘없이 처져 장밋빛 튜닉의 주름 속에 가라앉고, 다른 한 손은 부채를 들어 날렵하고 짧은 동작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부쳤다. 그러나 이제 막 풀잎에 매달렸다가 금방 또 날아올라 무지갯빛 날개를 펼치려는 나비 같은 모습과는 반대로, 그녀의 마음은 무서운 절망감으로 죄어들고 있었다.
모비딕
2
입매가 험악하게 굳어질 때, 내 영혼이 부슬부슬 비내리는 축축한 11월 같아질 때, 나도 모르게 관을 파는 상점 앞에 멈춰 선다거나 마주치는 장례 행렬의 후미를 따라갈 때, 그리고 특히 극심한 우울증에 사로잡힌 나머지 일부러 거리로 나가 사람들의 모자를 차례로 쳐서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려면 엄청난 도덕심을 발휘해야 할 때, 그럴 때면 최대한 서둘러 바다로 떠나야할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게는 이 방법이 권총과 총알을 대신한다.
안나카레니나
3
모든 것은 그 일이 얼마만큼 교묘하게 의식적으로 행해지느냐에 달려있어요.
모비딕
3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안나카레니나
4
자기가 추구해왔던 영농법은 그와 일꾼들 사이에 그저 잔인하고 검질긴 투쟁을 빚어냈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이 투쟁에서 한편에는, 즉 그의 쪽에는 모든 것을 더 낫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개조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끊임없이 있었던 반면에 다른 한편에는 사물의 자연적인 질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쪽의 극심한 노력과 일꾼들 쪽의 아무런 노력이나 계획도 없는 태도가 합쳐져 얻어진 결과라고는 그저 일이 어느 쪽의 생각대로도 되지 않고 휼륭한 농구며 상당한 가축이며 땅이 아무런 보람없이 못쓰게 되었을 뿐임을 깨달았다. 또한 그보다도 중요한 사실로서, 자기 사업의 의미가 스스로에게 뚜렷이 드러난 지금에 와서는 그 사업에 쏟은 정력이 완전히 헛된 노력으로 그쳤을 뿐 아니라 그 정력의 목적마저도 지극히 무가치한 것이었음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위한 투쟁이었나?
모비딕
4
이런 기질이 매우 우수한 능력을 타고난 사람, 그러니까 망망대해로 나아가 이곳 북반구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별자리 아래서 길고 긴 수많은 밤 동안 야간 당직을 서느라 친숙해진 고요와 고독 덕분에 인습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 사람, 또한 자연이 자발적이고도 은밀히 내어준 순결한 젖가슴에서 방금 막 흘러나온 감미롭고도 야만적인 감동을 모두 받아 마신데다 우연히도 대담하고 힘차고 고상한 언어를 배우게 되는 혜택까지 누린 사람ㅡ이런 사람은 온 나라를 통틀어 한 사람 정도에 불과하다ㅡ안에서 그의 지구를 닮은 두뇌, 그리고 육중한 심장과 하나로 합쳐질 때, 그 사람은 숭고한 비극에 어울리는 위대한 주연배우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설령 태생적으로나 다른 환경적 요인들로 인해 이 인물이 그 천성의 근저에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보이는 압도적인 음울함을 지니게 되었다 할지라도, 이는 연극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의 가치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을 것이다. 비극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모종의 음울함을 통해 탄생하기 때문이다. 오오, 야심찬 젊은이들이여, 이 점을 명심할지어다. 인간의 모든 위대함이란 한낱 질병에 지나지 않음을.
안나카레니나
5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마음속 동요는 차츰 증폭되어 이제는 그도 이제 그것과 싸우기를 포기해버렸을 정도였다. 그러자 그는 별안간, 자기가 마음의 동요라고만 여기고 있었던 것이 거꾸로 지금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행복을 가져다준 지복의 상태였음을 느꼈다.
모비딕
5
한 인간의 지성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는 늘 조금 하찮고 비열할 수 밖에 없는 형식적 기교와 무장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는 결코 남에게 실질적이고 유효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안나카레니나
6
지금까지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일시적인 장애물, 약간 희극적이고 가여운 인간으로만 여겨지던 배신당한 남편이 돌연 그녀 자신에 의해 소화되어 이쪽의 비열을 깨닫게 할 만큼 높은 곳에 올려졌고, 그 남편은 높은 곳에 오르자마자 더 이상 심술궂고 위선적인 우스꽝스러운 인간이 아닌 선량하고 솔직하고 위대한 인물이 돼버렸다. 브론스키는 느꼈다. 역할은 별안간 바뀌었다. 브론스키는 그의 고결과 자신의 비열을, 그의 올바름과 자신의 부정을 통감했다.
모비딕
6
폭풍이 오기 전에 그것을 예언할 따름인 깊은 정적이 어쩌면 태풍보다 더 무서운 법인데, 사실 정적은 폭풍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일 뿐이지만 겉보기에는 무해해 보이는 라이플총이 그 안에 치명적인 화약과 탄약과 폭발음을 담고 있듯이 정적도 그 안에 폭풍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용되기 전에 노잡이들 주변에서 고요히 뱀처럼 꼬여 있는 밧줄의 그 우아한 휴식ㅡ이것이야말로 이 위험한 물건의 다른 어떤 모습보다 더욱 진정한 공포를 맛보여준다.
안나카레니나
7
그는 문 쪽으로 다가가서 문을 잠갔다. 그러고 나서 눈을 부릅뜨고 이를 잔뜩 악물고 탁자 옆으로 다가가서 권총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본 다음, 총신을 돌리고 생각에 잠겼다. 한 이 분쯤 그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권총을 손에 든 채, 꼼짝도 않고 서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물론이다.' 그는 마치 논리적으로 연속성 있고 명료한 사고 과정이 자기를 의심의 여지없는 결론으로 이끌기라도 한 것처럼 혼잣말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확실하다고 여겨졌던 이 '물론'도, 사실은 한 시간 동안 벌 써 열 번이나 지나온 회상과 심상의 고리를 똑같이 되돌아온 결과일 뿐이었다. 영원히 잃어버린 행복에 대한 똑같은 회상, 장래의 일은 모두 무의미하다는 똑같은 심상, 또 자기 굴욕감이라는 똑같은 자각이었다. 게다가 그러한 심상과 감정은 순서마저 동일했다.
'물론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무엇에 홀린 듯 세 번째로 또다시 회상과 사고의 마술의 고리를 되돌아왔을 때 이렇게 되뇌었다. 그러고는 왼쪽 가슴에 권총을 대고, 마치 주먹 속에서 그것을 으스러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갑자기 온 손에 세차게 경련을 일으키면서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그는 총소리를 듣지 못했으나, 가슴에 울리는 세찬 타격이 그를 기우뚱거리게 했다. 그는 탁자 모서리를 붙들려다가 권총을 떨어뜨렸고, 비틀거리며 마룻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탁자의 구부러진 다리들이며 휴지통이며 호피 깔개 등을 밑에서 올려다보면서 일순간 자기 방을 알아보지 못했다. 객실을 통해 오고 있던 하인의 삐걱거리는 날랜 발소리에 그는 정신이 들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자기가 마룻바닥에 주저앉아있다는 것을 알았고, 호피 깔개와 자기 팔에 묻은 피를 보고 자기가 권총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았다.
모비딕
7
인간의 광기란 교활하고 고양이처럼 몹시 음흉할 때가 많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광기는 다만 보다 미묘한 형태로 모습을 바꾼데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에이해브의 넘치는 광기는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주름처럼 더욱 깊어져갔다. 그것은 저 고귀한 북유럽 바이킹 같은 허드슨강이 산악지방의 협곡을 지날 때 폭은 좁아지지만, 그 깊이는 가늠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예전의 위세를 그대로 유지해나가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좁게 흐르는 편집증의 강물 속에 에이해브의 광대한 광기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듯이, 에이해브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위대한 지성 또한 조금도 소멸되지 않은 채 그 광대한 광기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예전에는 강렬한 동인(動因)이었던 것이 이제는 강렬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다소 격렬한 비유를 들어 말해보자면, 그의 특별한 광기가 그의 평균적인 상태로서의 맨정신을 급습해 끌고간 다음, 그 대포의 포문을 자신의 미친 목표물을 향하도록 한데 집중시켜놓았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에이해브는 자신의 힘을 잃기는커녕, 이제 제정신으로 하나의 온당한 대상을 상대했을 때 끌어올렸던 것보다 천 배나 강한 잠재력으로 그 하나의 목표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
안나카레니나
8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저지른 잘못, 그가 아내를 만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그녀의 뉘우침이 진실한 것이고 그도 그녀를 용서했으나 그녀가 죽지 않을 경우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잘못은 그가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지 두달이 지나서야 그 앞에 온전한 의미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잘못은 단순히 이런 경우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빈사의 아내를 만난 그날까지 자신의 마음을 몰랐다는 것에도 기인했다.
모비딕
8
그중 제일 마지막 해역을 미끄러지듯 나아가던 어느 고요한 달밤, 파도는 죄다 은빛 두루마리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파도가 일으키는 소용돌이는 온 바다에 부드럽게 퍼져 고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은빛 침묵에 가까운 무언가를 만들어놓고 있을 때였다. 그처럼 고요하던 그날밤, 뱃머리에 이는 새하얀 물거품 앞 저 먼 곳에서 은빛 물기둥이 보였다. 달빛에 빛나는 그 물기둥은 천상의 것인 양 아름다웠고, 깃털을 단 반짝이는 바다로부터 솟아오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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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앓고 난 뒤 그녀에게 일어난 온갖 사건에 대한 회상ㅡ남편과의 화해, 결렬, 브론스키가 상처를 입었다는 소식, 그의 내방, 이혼 준비, 가출, 아들과의 이별 등ㅡ은 모두 그녀에게는 브론스키와 함께 외국에 와서야 비로서 깬 괴로운 꿈처럼 여겨졌다. 남편에게 입힌 재액(災厄)에 대한 회상은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에게 매달리는 것을 뿌리쳐버릴 때 경험하는 것 같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지긋지긋한 느낌을 그녀에게 불러일으켰다. 그 사람은 빠져 죽었다. 물론 그것은 나쁜 짓이지만, 자기가 구출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런 끔찍한 일은 자질구레하게 떠올리지 않는 것이 좋다.
모비딕
9
한때 고래의 눈이 있었던 자리도 보였다. 더없이 고결한 떡갈나무도 바닥에 쓰러지고 나면 그 옹이구멍에 이상하게 자라난 덩어리들이 뭉치듯, 한때 고래의 눈이 있던 곳에는 이제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안구만이 끔찍하고도 안쓰러운 모습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동정의 여지는 없었다. 나이도 많고 팔도 하나이고 눈도 멀었지만, 녀석은 인간들의 즐거운 결혼식과 또다른 떠들썩한 축제를 밝혀주기 위해, 또한 그 누구도 다른 누구에게 절대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고 설교하는 엄숙한 교회를 환히 비추기 위해 처형당하고 살해당해야만 했다.
안나카레니나
10
그것은 마치 동물의 어느 한 기관의 지나치게 빠른 발달이 동물 전반의 발달을 방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부가 전체적으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신용 대부며 교통기관이며 제조업의 발달이니 하는 것은ㅡ그것이 시기적으로 알맞은 유럽에서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필요한 것이지만ㅡ최우선으로 결정해야 할 농업의 정리 문제를 뒤로 돌려놓고 그저 해를 끼칠 뿐이었다.
모비딕
10
다들 의심을 품고 많은 이들이 부인하지만, 의심하거나 부인하는 자 가운데 직관력을 지닌 사람은 몇 안 되기 때문이다. 세속의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천상의 어떤 것에 대한 직관, 이 둘을 겸비한 사람은 신자도 불신자도 아니게 되며, 그러한 사람은 양쪽 모두를 공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안나카레니나
11
이 어린애의 동석은 브론스키의 마음에도 안나의 마음에도 일종의 감정, 즉 자기가 지금 굉장한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방향이 마땅히 가야할 방향과는 동떨어진 것임을 나침반에 의해 알고 있으면서도 진행을 멈출 힘이 없어 점점 더 멀어져가 마침내 이 동떨어짐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자인하고 마는, 말하자면 길을 잃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기에 이리는 항해사가 품는 것과도 흡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모비딕
11
눈 한 번 깜박하지 않는 일본의 강렬한 태양은 유리 같은 바다가 만들어낸 거대한 볼록렌즈의 초점에 모인 이글거리는 빛 같다. 하늘은 옻칠을 한 듯하고, 구름은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으며, 수평선은 그저 둥둥 떠다닌다. 변함없이 이어지는 노골적인 이 광채는 신의 옥좌에서 쏟아져나오는 견딜수 없는 광휘 같다.
안나카레니나
12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에게는 리디야 이바노브나며 그녀와 견해를 같이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상상력, 즉 상상에 의해 환기된 관념이 다른 관념이나 실재와의 조화를 요구할 만큼 현실성을 갖게 하는 정신적인 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그는 신앙을 갖지 않는자에게 존재하는 죽음이 자기에게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는 완전한 신앙을 갖고 있고 스스로 신앙을 판정할 권능이 있으므로 자신의 정신에는 이미 죄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자기는 이미 이 지상에서 완전한 구원을 경험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관념에 대해 어떠한 불가능이나 불합리를 인식하지 못했다.
모비딕
12
길게 드리워진 자연 그대로의 계곡, 그리고 온화하고 푸른 산비탈, 그 위로 침묵과 윙윙대는 소리가 살며시 찾아들면, 숲에서 꽃을 따는 계절인 찬란한 5월에 놀다 지친 아이들이 이 쓸쓸한 황야에 드러누워 잠든 것만 같다고 거의 확신하게 된다. 또한 이 모든 것이 더없이 신비로운 기분과 뒤섞이고, 그리하여 사실과 환상이 그 중간쯤 어딘가에 조우해 서로 완전히 스며들어 이음매 없는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안나카레니나
13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안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부르르 몸을 떨었지만, 이내 그의 얼굴에는 이 사건에 대한 완전한 무력함을 나타내는 죽음과도 같은 부동(不動)의 표정이 굳어졌다.
모비딕
13
세상의 반쪽인 그대 어둠이여, 그대는 더욱 어둡지만 더욱 의기양양한 신념으로 나를 뒤흔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대의 온갖 혼돈이 여기 내 발아래 떠 있다. 나는 한때 산 생명이었지만 공기처럼 증발해 지금은 물이 된 것들의 숨결에 의지해 물위에 떠 있다.
안나카레니나
14
그는 아홉 살, 아직 어린애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영혼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은 그에게 소중해서 그는 마치 눈꺼풀이 눈을 보호하듯이 그것을 지켰고, 사랑이라는 열쇠 없이는 아무도 자신의 영혼 속에 들여놓지 않았다. 아버지와 교사가 자신들의 물레방아를 돌리기 위해 기다리던 물은 이미 오래전에 새어나가 다른 수로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모비딕
14
나의 확고한 목적을 향해 가는 길에는 무쇠 선로가 깔려 있고, 내 영혼은 그 위를 달리며 바큇자국을 내고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협곡들 너머로, 겹겹이 쌓인 깊은 산들 사이로 급류가 흐르는 강바닥 아래로, 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진한다! 아무것도 철길의 앞길을 막아설 수 없으며, 그 무엇도 철길을 구부릴 수 없다.
안나카레니나
15
그가 지금 숲 가운데에서 다시 숲가로 나가면서 태양이 비껴드는 밝은 빛 속에 노란 옷을 입고 바구니를 손에 들고 경쾌한 걸음걸이로 자작나무 노목 옆을 걷고 있는 바렌카의 우아한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바렌카의 모습이 그 아름다움으로 그를 놀라게 한 찬란한 햇빛을 비스듬히 받은 노란 귀리밭의 광경과 아득히 파릇파릇한 지평선으로 녹아들고 있는 저멀리 노란빛으로 얼룩진 해묵은 숲의 광경과 하나로 융합된 그때에 그가 느낀 감정이야말로 바로 젊음이 아닐까? 그의 심장은 환희로 옥죄였다. 감격스러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결정됐음을 느꼈다. 바렌카는 버섯을 따려고 막 몸을 구부렸다가 가냘픈 몸짓으로 일어서서 뒤돌아봤다.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시가를 내던지고 결여한 걸음걸이로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모비딕
15
승강구에서 나와 천천히 갑판을 가로지르던 에이해브는 뱃전 너머로 몸을 구부리고는, 자신이 깊은 바닷속을 꿰뚫어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물위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도 점점 가라앉고 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도 황홀한 대기 중의 감미로운 향기가 마침내 그의 영혼 안에 웅크린 채로 그를 타락시키는 무언가를 한순간이나마 쫓아버린 듯 했다. 그 찬란하고 유쾌한 대기, 그 명량한 하늘이 마침내 그를 쓰다듬고 애무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잔인하게ㅡ무섭게ㅡ굴던 계모 같은 세상이 이제는 에이해브의 뻣뻣한 목에 다정한 팔을 두른 채 아무리 제멋대로 죄를 일삼는 아들일지라도 기꺼이 구원하고 축복해주겠다는 듯이 그를 껴안고 기쁜 마음에 흐느껴 우는 것 같았다. 푹 눌러쓴 에이해브의 모자 아래로 눈물이 한 방을 떨어져 바다로 섞여들었다. 넓디 넓은 태평양도 그 작은 눈물 한 방울보다 값진 것은 품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안나카레니나
16
우리의 권리가 우리에게 의무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그러한 의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모비딕
16
세계 모든 물질은 그 얼마나 비물질적인가! 헤아리기 힘든 사유 외에 실재하는게 또 뭐가 있단 말인가? 지금 이곳에서는 암울한 죽음의 무시무시한 상징이 단지 우연으로 인해 더없이 커다란 위험에 빠진 생명에 대한 도움과 희망의 표징이 되고 말았구나.
안나카레니나
17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성호를 긋는 이 익숙한 동작이 그녀의 마음에 처녀 시절과 어렸을 때의 일련의 추억을 온전하게 불러일으켰고, 갑자기 그녀를 위해 삼라만상을 뒤덮고 있던 어둠이 걷히고 한순간, 생이 그 모든 빛나는 과거의 환희와 더불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녀는 다가오는 두 번째 차량의 바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바퀴와 바퀴 사이의 한가운데가 그녀 앞까지 온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빨간 손주머니를 내던지고 두 어깨 사이에 머리를 틀어박고 두 손을 짚고 차대 밑으로 넘어지면서 그리고 곧 일어나려고 하는 듯한 가벼운 동작으로 무릎을 끓었다.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자기가 저지른 짓에 공포를 느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뛰어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 거대하고 무자비한 것이 그녀의 머리를 꽝하고 떠받고 그 등을 할퀴어 질질 끌고 갔다. '주여, 제 모든 것을 용서해주소서!' 그녀는 이미 저항하기엔 늦었음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한 농부가 뭐라고 웅얼거리면서 쇠붙이 위로 몸을 구부리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불안과 기만과 비애와 악으로 가득찬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었던 촛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확 타올라, 지금까지 어둠에 싸여 있던 모든 것을 그녀에게 비추어 보이고는 파지직 소리를 내고 어두워지다가 영원히 꺼져버렸다.
모비딕
17
나는 태양에게 등을 돌린다. 왜 그러나, 타시테고! 자네의 망치질 소리를 들려주게나. 오오! 굴복할 줄 모르는 나의 세 첨탑이여. 갈라지지 않는 용골이여. 오직 신만이 괴롭힐 수 있는 선체여. 굳건한 갑판, 오만한 키, 북극성을 향한 뱃머리ㅡ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배여! 너는 그렇게 나 없이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냐? 내게는 가장 보잘것없는 난파선 선장이 마지막으로 느끼는 허황된 자부심조차 허락되지 않는단 말인가? 오오, 고독한 삶이 맞이한 고독한 죽음! 오오, 이제 난 나의 가장 큰 위대함이 나의 가장 큰 슬픔 속에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어이, 거기! 송두리째 지나가버린 내 삶의 거센 파도여, 아득히 먼 대양의 끝에서 지금 이곳으로 밀려와 집채만한 파도와도 같은 나의 이 죽음을 더욱 높이 일게 해다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는 못하는 고래여, 너를 향해 나는 힘차게 나아간다. 최후의 순간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고, 지옥의 한복판에서 너를 찌를 것이다. 오로지 증오만이 가득한 내 마지막 숨결을 너에게 내뿜어주마.
안나카레니나
18
옥죄이는 것 같은 튼튼한 이의 아픔이 입안을 타액으로 가득 채워서 그는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입을 다물고 레일 위를 천천히 미끄러져 굴러오는 탄수차의 바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뜻밖에 전혀 다른 아픔이, 통증이 아니라 그의 존재 전반에 걸친 내적인 고통이 한순간 그에게 치통을 잊게 했다. 그 불행 이후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지인과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은데다 탄수차와 궤도를 본 순간 갑자기 그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즉 그가 미친 사람처럼 그 철도역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을 때 그녀가 남겨놓았던 것ㅡ사무실 탁자 위에 뭇사람이 훤히 보는 가운데 부끄러움도 없이 축 처져 있던 피투성이의, 방금 전까지도 생명이 통하던 몸뚱이, 무겁게 땋아 늘어져 있는 머리칼과 관자놀이 위에 소용돌이치는 고수머리가 엉킨 채로 뒤로 젖혀진, 조금도 다치지 않은 그녀의 머리, 빨간 입술을 반쯤 벌리고 있는 아름다운 얼굴에 굳게 웅결한 야릇한 표정, 수심에 찬 듯한 입가와 뜬 채로 있는 눈 언저리에서는 말다툼 때 그녀가 했던 그 무서운 말, 그가 후회하게 될 거라고 했던 그 말을 하고 있기라도 하는 듯한 무서운 표정, 이러한 것들이 갑자기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는 처음으로 역시 기차역에서 만났을 때의 그녀ㅡ신비롭고 아름다운, 행복을 사랑하고 희구하고 또한 가져다주었던 그녀, 최후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처럼 잔혹하고 복수심에 찬 모습이 아닌 그녀를 떠올리려고 애써보았다. 그녀와 함께한 행복했던 순간을 생각해내려고 애써보았지만, 그런 순간은 이제 영원히 독살당해버렸다. 그는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고 결코 씻어낼 수 없는 회환을 남겨놓은 그녀의 멋지게 성공한 위협만을 기억했다. 어느덧 그는 치통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대신에 흐느낌이 그의 얼굴을 을그러뜨렸다.
모비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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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살이 던져졌다. 작살을 맞은 고래는 앞으로 날 듯이 헤엄쳐 갔고, 밧줄은 불붙은 듯한 속도로 홈을 따라 풀려나가다 그만 엉키고 말았다. 에이해브는 엉킨 밧줄을 풀기 위해 몸을 구부렸다. 에이해브가 엉킨 밧줄을 풀긴 했지만, 한 바퀴 고리를 지은 밧줄이 날아와 그의 목에 감겼고, 그래서 그는 터키의 벙어리들이 희생자를 밧줄로 목 졸라 죽일 때처럼 소리 없이 보트 밖으로 내던져지고 말았다. 선원들이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제 조그만 새들이 여전히 아가리를 떡벌리고 있는 소용돌이 위를 시끄럽게 울며 날아다녔고, 시무룩한 흰 파도는 소용돌이의 가파른 측면을 때렸다. 그러고는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고, 거대한 수의(壽衣)같은 바다는 오천 년 전에 넘실거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 자리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안나카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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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모비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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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
독갤에서 본글중 갠적으로 제일 좋다
"Towards thee I roll, thou all-destroying but unconquering whale; to the last I grapple with thee; from hell's heart I stab at thee; for hate's sake I spit my last breath at thee."
모비딕 재미나게 읽었는데, 이렇게 문장 수집 해놓은 걸 보니 더더욱 좋네요 ㅎㅎ 새록새록 읽은 기억도 떠오르고!!
화려한 두 글은 시야차이. 톨이 인긴과 기독교세계관에 충실하다면 멜빌은 전지적 시야
근데 문장 화려함 뭐하노 줘도 못먹는 빡대갈인데 하.. 이해가 안가노 빡대갈아 줘도 못먹는 빡대갈이 대갈 좃빡색끼
와 모비딕 뭐냐 톨스토이 걍 압살해버리네 접신한거 아니냐?
글은 톨스토이가 더 잘쓴다고 생각함. 더 섬세하고 묘사에 있어서 마치 자연과 같음. 세밀하고 끊기지 않는 하나의 흐름이 물밀듯이 찬찬히 밀려오는 파도와 같다. 마치 자연 그대로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함. 방대하고 상세한 그의 세부적인 묘사들은 하나의 작품이 되고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하나되어 숨쉰다.
반대로 멜빌의 작품 구조는 문장들의 묘사가 하나로 이어지기 보단 의도적으로 여겨지는 듯한 끊김이 작품의 구성요소로써 존재한다. 각 문장들이 고유하게 지니는 가치들은 뛰어나지만, 그것들은 어느 쪽이 위고 어느 쪽이 아래인지도 모른채 항성 간 우주 공간에 떠있는 사람과 같다.
물론 그렇기에 멜빌의 작품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 각각의 요소들은 별개의 우주나 다름없으며, 그 안에서 다양한 사고가치들이 끝없이 뻗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채로 존재한다. 다만 하나의 작품으로 보았을때 유기적이고 전문성을 가진 작품은 안나카레니나임이 분명함.
빨간글씨 머고
대칭
글 준나 잘쓴다 증말
와 기가 막히게 좋네
안나 카레니나 문학동네판 모비딕 문학동네판 맞음??
아직 문장의 아름다움을 모르겠다. 진짜 아는만큼 보이는구나 - dc App
안카는 씨발 그냥 좆돼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