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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는 2012년 출판된 이래 1000만부 이상이 판매된 히트작이다. 독갤에서도 대문에 박제될 정도였고 한국의 어느 장르소설작가도 "내청코...신간 나왔냐?" 에 대한 정보를 독서 갤러리에 문의한 바가 있을 정도니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아마 짐작컨데 그 소설가가 쓴 죽음 환상곡(Necro Fantasia)의 표제작에 등장하는 옛날 게임을 파는 기분나쁜 오타쿠도 이 소설의 등장인물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현재 대학원에 재직중인 작가분의 명예를 위해서 소설의 제목은 약간 변형했음을 양해해주길 바란다.)  그러니 이런 명작에 대한 리뷰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행위일 것이다.



이 소설의 주제의식은 라이트노벨치고는 상당히 난해하다. 공교육이라는 인공적인 공간 속에서 아직 성숙한 인격을 가지지 못한 청소년들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되어야하는가? 여기에 대한 주인공 히치가야 하치만의 정의는 잔혹하다. 청춘이라는 것인 일종의 거짓이며 악이라는 것이다. 하치만의 이러한 태도에는 이유가 있다. 사교성이 떨어져 주변과 동화되지 못한 그는 동급생과의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일방적으로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 덕분에 하치만은 대인관계를 가질 기회를 갖지 못했고 그 결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방법을 습득하지 못한 채로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의무교육이 끝나고 고등학교에 이르어서도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하치만의 태도는 일종의 합리화를 위한 자기비하라고 볼 수 있다. 



하치만의 이러한 태도가 '쿨찐'이라면서 비아냥거리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본인의 견해는 이에 반대한다. 1권에서 교사 히라츠카 시즈카가 이성친구는 있냐는 질문에 하치만은 '현재는' 없다 라고 대답한다. 또한 장래희망에 대해서는 예쁘고 공부잘하는 여성과 결혼해서 가정주부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혹시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에 진학한 뒤에 소설을 쓸 것인가요? 라는 질문이 들지만 그것은 허튼 소리다.  왜냐하면 하치만은 문과생이라서 끽해봐야 철학과가 한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치만에게는 동급생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이다.  단지 오랫동안 받아온 상처와 경험의 부족으로 인하여 관계를 맺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방어기제를 형성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작중에서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자꾸 지적하듯 하치만은 찐따는 둘째치고 '쿨'하고는 거리가 심하게 먼 케이스다. 



그리고 트로츠키, 아니 토츠카 사아카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에서 보이듯 하치만은 오히려 누군가와 교류하기를 갈망한다. 문제는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경험이 그것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자신이 먼저 호의를 내보내면 상대방이 그것을 짓밟거나 거부할 것이라고 믿는다. 일종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셈이다. (똑같은 이유로 그는 메인히로인 핑챙의 호의도 거부한다.) 하치만이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하는 자이모쿠자 요시테루를 경멸하면서도 끝내 도와주는 것은 아마 그러한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주제는 치유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치유의 주체가 독자가 아니라 등장인물이라는 점이  독특한 것이다. 



이러한 치유의 필요성은 모든 등장인물에게서 드러난다. 머리가 없는 메인히로인하고 여동생은 논외로 두고 서브히로인 유키노시타 유키노를 예시로 살펴보도록 하자. 그녀는 주변인물에게서 악의를 띈 공격을 받은 결과 교류를 멀리하고 혼자 있는 삶을 추구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타인은 잠재적인 침입자나 공격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작중 하치만이 자신을 따라하는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필자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두 종류밖에 없다. 자신보다 월등히 우월한 존재이거나 아니면 그 반대거나. 작중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은 후자고 그들은 자신을 어떻게든 배척시킬것이다. 이런 그녀에 대한 보호와 치유를 위해 교사 히라츠카 시즈카가 만들어낸 것이 '봉사부'고 그 곳에 하치만이 가입하는 것이 이 작품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도는 성공적이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평가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처참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 하치만의 경우 의뢰에 대한 방침은 명쾌하다. 4권에서 말하기를 "해결은 못하겠지만 해소는 할 수 있겠지."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온다면 보통은 폭력을 없애는 방법(해결)을 생각하지만 하치만은 학교를 없애는 방법(해소)를 대책이라고 내놓기 때문이다. (혹시 농담이라고 생각할까봐 첨언하는데 이게 진짜 4권의 메인 소재다.) 이러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하치만은 당사자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작중 주인공이 내뱉는 최고의 기만이자 악이다. 하치만이 그러는 진짜 이유는 그들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영사했기 때문이다. 즉 하치만은 철저하게 자신을 위하여 참여한 것이고(사실 말만하고 실행은 다른 사람이 해버리는 통에 참여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쿨'을 연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키노는 어떨까? 그녀는 부분적으로 하치만보다 더 중증이다. 그녀는 언듯보기에 완벽주의자지만 혼자서 경험하지 못한 것에 취약하다. 예를 들어서 전시장에서 하치만이 길을 못 찾는 것을 지적하자 (2권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키노는 할복이라도 할 듯이 부끄러워한다. 하긴 집안이 좋은 완벽주의자 새끼들은 원래 할복을 좋아했다. 이름부터 "군대 안 간 그 새끼"를 연상케하지 않은가. 물론 이것은 농담이고 그녀는 약점을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 타인은 언제나 잠재적인 적이다. 그들에게 헛점을 보인다면 그들은 그걸 빌미삼아 상처를 쑤시고 말리라. 그것을 막기 위한 방법은 처음부터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완벽함은 장점이 아니라 살아남기위한 편집증의 일종인 셈이다. 



마지막 희망은 메인히로인 유이가하마 유이인데 얘는 혼자 중학교 2학년 시절에 정신도 육체도 성장이 멈춘게 아닐까 의심될정도로 허당인 인물이다. 설정상 명문고등학교라는 모교에 어떻게 합격했는지 설명이 딱히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특별히 사건도 벌어지지 않아서 할 말도 없다. 솔직히 얘를 없애고 토츠카 사아카를 넣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보았다. 하지만 하렘물이 아니면 판매량이 안나오잖아? 어림없는 소리다. (그건 그렇고 히로인들 네이밍 센스가 왜 이따위임? 자기 이름 아니라고 막 짓는거 아닙니까 작가님?) 혹시 막판에 유키노하고 하치만이 싸우는데 둘을 어떻게든 화해시키는 장면에서 비중 높아지고 그딴 스토리면 작가는 폭팔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 중 본격적인 성장을 한 인물은 없다. 



따라서 내 소감은 간단하다. 이 소설은 사기작이다. 언듯보기에 아싸를 대변하는듯하지만 결국 그것은 일종의 양념에 불과하다. 작중에 등장하는 아싸스러움은 결국 완전해지지 못한 인싸들이 조금 더 자신들의 과거를 미화시키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중산층 이상이고 공부 잘하는 명문고 출신이고 이것저것 특기나 관심사로 엮인 존재들이다. 도데체 작가가 이런 소설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1권에서 하치만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글을 써야만 말하고싶은 것이 있다. 독자가 그것을 읽어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작가는 쓴다는 욕구를 느낀다."



말이야 뭔듯 못하겠는가. 이런 작가의 사악한 기만과 사기극에 대해서 본인이 인용할 말은 하나 뿐이다.










글을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꿈을 꾸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말하지 않으면 배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마찬가지지요. 연극은 진실하지 못해요. 차라리 투우가 진실하죠. 그러나 소설은 진실한게 아녜요. 차라리 과대망상증이 진실하죠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연세대 철학과 졸업생 하치만 폭발해라... 그 옆에 추천한 사람들 모두 손잡고 다같이 11월 5일 가이 포크스 데이에 폭발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