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베스트에도 간 이 글들의 후속작이며,
그 두 글을 이어주는 하나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2022년 9월 29일 옌롄커의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식 및 사인회 이전부터 옌롄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독서 갤러리에 나름대로 홍보도 하던 나는
당연하다면 당연히 옌롄커 소설을 많이 번역하신 김태성 선생님의 명성도 익히 들어왔다.
그리고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나는 류짜이푸 선생의 문학강의에 매우 깊은 감명을 얻었고,
따님이신 류졘메이 교수님을 통하여 번역 허가를 받았다.
(여러 사정 때문에 번역이 지지부진하다. 하나 이는 변명에 불과하니 추하기 그지 없다)
어느 날이었다.
독서 갤러리를 둘러보다가
한 이용자가 한겨레에서 김태성 번역가님을 인터뷰한 기사를 소개하였다.
제목은 <중문학 번역 후계자를 찾습니다.>
글을 읽으며 가슴에 뛰었다.
김태성 선생님께서 옌롄커의 작품을 알게 된 계기가
바로 류짜이푸 선생께서 건네 주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였다니.
어쩌면 세상에 이렇게 극본처럼 아귀가 잘 맞을 수 있을까?
한 번 뵙고 싶었다.
내가 번역한 글을 보여드리며 가르침을 얻고 싶었다.
아니, 말씀만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될 수 있다면 분에 넘칠지라도 그 "번역 후계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기자와 류졘메이 교수님에게 김태성 번역가 님의 연락처를 여쭤보았으나 얻지 못하였다.
그렇게 나는 그분에게 연락드리기를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독서 갤러리에서 옌롄커 사인회가 열린다는 게시물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작성자 분에게 신청방법을 여쭈었고, 그분은 친절하게도 알려주셨다. (그분에게 천 번의 거대한 감사를)
옌롄커의 문학상 수상이 있기 전,
나는 행사장 근처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가 저 멀찍이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옌롄커 선생님과 김태성 번역가님이셨다.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 중국어로 옌롄커 선생님에게 인사를 올렸지만,
옌롄커 선생님에게만 집중한 나머지 김태성 번역가님에게 인사는 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옌롄커의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 연설을 듣고,
그 다음 사인회로 가기 전에 김태성 번역가님에게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류짜이푸 선생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어떻게 문학을 읽는가>를 번역하고 있다고 나 자신을 소개드렸다.
사인회에서 맨 마지막 차례였던 내가 사인을 받을때,
김태성 번역가님께서는 내가 가져온 원서 일곱 권,
즉 향항성시대학교 출판부에서 낸 옌롄커 해외작품 선집 • 소설 권의 여섯 권과
대륙에서 출판된 <나의 현실 나의 주의>를
인상깊게 바라보시며 흥미롭다는 듯 구경하셨다.
그리고 나는 용기를 내어 그분의 명함을 얻었다.
10월 30일.
나는 그분에게 메일을 올렸다.
"실례와 민폐가 되지 않는다면,
번역가님을 직접 뵈어 담소를 나누며
더 깊은 가르침을 얻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고.
즉각 답이 왔다.
작업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뛸 듯이 기뻤다.
시간은 11월 5일 토요일 오후 3시로 정해졌다.
번역가님의 작업실은 어느 오피스텔에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책장이 보였다.
번역가님께서는 그 전날 벗님 분과 약주를 즐기셨다면서 내게 양해를 구하셨다.
바로 여기가 번역가 님의 작업실이었다.
번역가 님께서는 내게 향긋한 보이차와 달콤한 초코 과자를 대접해주셨다.
처음에는 긴장했다.
하지만 대화를 차차 해나가면서 긴장을 풀려갔고,
학문의 즐거움이 그 자리를 채웠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번역가님께서는 내 출신과 가정, 학업,
류짜이푸 선생과 류졘메이 교수를 알게 된 계기도 물어보셨다.
그리고 대화하면서 우리는 각자가 겪은 경험을 공유하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광기에 휩싸여 폭주하는 중국에 대하여 한마음으로 걱정하였다.
나는 내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내 의견을 제시하며 중국 유학생들에게 최대한 정중하게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달라."
"비루함이 비루한 자의 통행증이 되는 세계가 되지 않게 노력해달라"(이 대목에서 번역가님께서는 내가 베이다오의 시구를 인용했음을 바로 지적하셨다)
등 온건한 어조로 썼음에도 부착된 지 5 시간도 채 안되어 대자보가 넝마짝이 된 일을 말씀드렸다.
그것을 보고는 슬펐지만, 다음날 내 대자보 옆자리에 한국어는 없이
중국어와 영어로만 내 대자보를 반박하는 대자보가 붙어있었는데,
나를 향한 인신공격이 있었기에 그만 쌍욕을 내뱉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드렸다. (마침 아침이라 주변에 사람이 없었을 때였다는 것도!)
번역가님께서는 자기가 대학에서 강의를 할때
언젠가는 중국과 대만을 비교를 하면서
객관적으로 중국이 대만보다 무엇이 못한가를 말씀했다고 한다.
그러자 얼마 뒤 중국 유학생에게서 장문의 메일이 왔는데,
자기가 대학의 모든 중국 유학생과 중국인 교수를 대표하여
중국을 비방한 행위에 대해 항의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하셨다.
번역가님께서는
"네가 정말로 그들 전부를 대표한다는 그 대표성의 근거가 무엇이냐.
내가 없는 사실을 지어내서 비방한 것도 아니고 객관적 증거로 이야기를 한 것이고,
무엇보다 여기는 중국이 아니라 엄연히 한국이다.
네가 그런 태도로 나온다면 나도 너같은 학생은 수강거부를 하겠다"라고 맞받아치셨다고 하셨다.
번역가님께서는 중문학에 대한 소견도 솔직히 드러내주셨다.
중문학에 좋은 작가는 많지만,
옌롄커처럼 글을 쓰고 그와 같은 의식을 가진 작가가 없다고 하셨다.
중국은 작가 협회 등으로 작가들을 정부에서 통제하는 사회다. 그리고 옌롄커는 그의 행보 때문에 거의 대놓고 홀대를 받고, 또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하셨다.
실제로 어느 중국 유학생이 중국 당국에 계속 옌롄커를 고발하고 있었다고 하셨다...
쑤퉁과 아라이 등 정부가 밀어주는 작가들은 잘 나가지만,
중문학은 검열과 통제 때문에
계속 옛날 이야기에 황당하고 이상한 이야기만 쓴다고도 비판하셨다.
위화에 대해서는 "그는 <형제> 이후로 죽었다."라고 하셨다.
나도 동의했다. 선봉파였던 위화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 외에도 번역가님은 나에게 번역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상히 설명해주셨고,
또 대한민국 번역계, 특히 중문학 번역계의 현실에 대해 한탄하시면서 더 노력해야한다고 하셨다.
특히 오역에 대해서 한탄하셨다.
군대에서 쓰는 "차렷"인 立正!을 "바로 서라!"라고 번역한 것이라던가,
시신을 화장하는 "화장로"를 "용광로"로 오역했다던가...
나 역시 내가 존경하는 소설가인 가오싱젠 선생의 <영혼의 산> 한국어 번역이 얼마나 엉망인지 말씀드렸다.
영어나 프랑스어나 일본어 같은 경우는 번역 인력도 많고 독자층도 두꺼워 번역 비평이 가능하지만
중국어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하시며 중국 문학 번역 비평이 어서 자리잡아야한다고 설파하셨다.
여기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원서만 읽고 번역본을 안 읽고 어떻게 번역을 논한단 말인가...
또 여기에서는 차마 밝힐 수 없는 번역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이 풀어내주셨다.
그리고 나는 문인을 지향하는 자로서 목표가 있다고 번역가님에게 말씀드렸다.
나만의 뚜렷한 목표를 나름대로 어필한 것이었다.
번역가님께서도 인상 깊게 들어주셔서 참 감사했다.
이렇게 다른 편도 보여주셨다.
나는 여기서 내가 소장 중인 루쉰 전집도 알아보고 반가움을 느꼈다.
나도 이렇게 넓은 서재가 있었으면...
그리고 우리 둘을 이어주는 강력한 구심점인 류짜이푸 선생의 저작만 모아둔 서가도 구경했고...
광전총국에서 주는 상인 중화도서특수공헌상도 구경했다.
참고로 번역가님이 받은 해부터 상금의 액수가 기존의 세 배로 늘어났다고...
그래서 재정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다.
이렇게 시를 번역하신 것도 보여주셨고...
("문학을 위해 복무하라"가 재미있다)
홍콩 매체에서 번역가님을 소개한 기사,
중국 루쉰문학원의 정기간행물에 실린 자신도 보여주셨다.
번역가님은 내게 시를 좋아하냐고 물어보셨고,
내가 매우 좋아한다고 대답드리니,
자신이 번역한 시집을 선물로 주셨다.
사인도 해주셨다.
작품명 : 어느 번역가의 온화한 휴식
* 해당 사진은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촬영되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헤어질 시간이 왔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찍고...
문을 나섰다.
번역가 님께서는 열정이 있고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청년을 만나 즐거웠다고 하셨고,
나는 위대한 업적을 세우신 선진을 만나뵈어 영광이었다고 말씀드렸다. (번역가님께서는 겸연쩍게 웃으셨다)
그리고 내가 번역한 글의 견본을 보내드릴테니
엄격하게 평가해주시라고 부탁드렸다.
번역자님께서는 물론 그렇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으며,
다음에 또 만나자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가는 길로 떠났다.
번역은 재창조다.
그런 만큼 번역은 위대한 작업이며,
작가에 이어 번역가들도 관심과 경의를 받아야 마땅하다.
앞으로도 김태성 번역가님께서 항상 건강하시어
더 많은 책을 번역할 수 있으시기를 바란다.
- dc official App
글 너무 좋네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옌롄커 사인회 다녀온 그때 일화 인상 깊었고, 그 뒤로도 종종 생각나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또 소식 전해 주니 반갑기도 하고 내 일처럼 기쁘네!
아유 정말 감사합니다... - dc App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아무렴! 내 힘 닿는데까지 할게. 그런데 독갤에 그 글을 네가 썼다니...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마워. 네 덕분이야. - dc App
잘 읽었다. 위화는 안타깝네 막줄에 김성태→김태성
오타 지적 감사! - dc App
좋은 글인걸 잘 읽었음
압도적 감사...! - dc App
번역 일 하시는 역자셨구나...
나는 아니야... 그냥 시도를 해보고 있는 초짜. - dc App
배신감 느껴졌어... 사실 이미 비범한 능력자인건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이야! 하늘은 어찌 같은 하늘 아래 하찮은 독붕을 나으시고 동시에 기만자를 함께 두신건가! 이 얼마나 잔악무도한 현실인가!!
배신감이라니... 그리도 나는 능력자가 아니라니까. - dc App
좋은 글! 아아 중국어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정말 고마워요. 중국어 지금부터라도 시작해봐! - dc App
양질의 글 정독해서 잘 읽었당 ㅎㅎ 추천 백만개!
진짜 고마워!!! - dc App
제2의 김태성 셴세 되면 번역후기에 독갤 언급ㄱ
허허 농담두 - dc App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하하 여중생동무... 그렇게 칭찬해주니까 몸둘 바를 모르겠어. 나야 뭐 요즘 한국 문학계를 잘 모르니까 뭐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응원해줘서 고마워. 힘낼게. - dc App
고마워. 정말 고마워. 고마워... - dc App
실베갔대서 보고왔는데 실베가 아니라 초개념이네오... 근데 요즘 실베랑 비교하면 댓글 온도차 오지네
앗 제가 헷갈렸습니다. 용서해주시길. 확실히 그 초개념 간 글의 반응과 실베간 글의 반응이 너무 달라요. 저더러 빨갱이라고도 하더군요... - dc App
님 진짜 멋있네
그러는 네가 더 멋있고 귀한 사람. - dc App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 dc App
꼭 큰 사람이 되어 주세요. 당신 같은 사람이 많은 세상은 참 아름다울 겁니다.
따뜻한 말 건네줘서 고마워요. 저는 작고 하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힘낼게요. 고마워요. - dc App
http://m.blog.yes24.com/kimzuhyun
이거 당신 블로그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번역하시는 책 잘되고 꼭 읽어보고겠습니다
감사합니다 老大哥! - dc App
미래를 맡길 만한 젊은이로군
내가 그 정도일리가... 더 나은 사람이 많아. - dc App
정성들인 후기 잘 읽었습니다. 김태성 선생님에 대해 깊게 알게 되어 넘나 좋네요. 앞으로 하실 작업도 응원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노력할게요. - dc App
선생님~! 오랜만에 독갤 들어왔다가 좋은 소식 듣고 갑니다. 문학강의 번역에 대한 소식이 없어서 그만두셨나 했는데 계속 하고계셨군요. 항상 응원합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 dc App